비오는 날의 허탕
박 형 순
헝클어진 머리사이로 원망이 뚝뚝 떨어지고
진득거리는 와이셔츠가 서글프다
올올이 박혀 있는 분노의 눈썹을 찡그리며
폭탄이라도 터트릴 것 처럼
땀에 절은 가방을 만지작거리지만
乙이 된 죄로 비굴을 왔다갔다 한다
법의 잣대를 흔들어 보기도 하고
읍소하며 매달려도 보지만
甲은 수금을 못하고 있는 누구의 乙이 되어
빈손으로 허공만 바라본다
구름이 몰려와서 천둥치면 풀린다더니
장마가 시작되면 흠뻑 적시게 해준다더니
돈가뭄이란 말만 주절거리는 甲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 주고 싶지만
언제나 저자세로 고개 숙이며
납품하고 사정하는 乙이다 보니
오늘도 어제처럼 우산 드는 것도 잊은 채
쏟아지는 빗속으로 터덜터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