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침 맞는 남편

헤스톤 2012. 6. 4. 21:01

 

  

 

 

 

   양말을 벗고 바지를 허벅지까지 올린다. 그리고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소매를 걷어 올린다. 침 맞는 기본자세이다. 하도 많이 맞다보니 앉으면서 기본자세부터 갖춘다. 한방병원이나 한의원 모두 비슷하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침 놓는 자리는 다르다. 비슷한 곳은 있었어도 같지는 않다. 환자가 이것저것 따질 것은 아니기에 놓는 대로 맞는다. 어느 곳에서는 몇 개만 놓기도 하지만 대략 팔 다리와 얼굴에 약 20여군데 맞는다. 이제 매일 맞는 것은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따끔거려 슬슬 맞기가 싫어진다. 특히 얼굴의 인중이나 입술아래쪽은 더 아프다. 긴 침이 쑥 들어오면 깜짝 놀란다. 집사람은 내가 침 맞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아프다고 한다.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면서 눈물짓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어제(일요일) 오후에는 오래간만에 집사람과 앞산에 올랐다. 책도 몇 페이지 읽다보니 몸이 근질거리고 하루종일 TV나 껴안고 있으려니 무력해지는 나의 모습이 싫었다. 당초계획은 이웃동에 사는 지인부부와 스크린골프를 하기로 했었는데 그 사람들이 약속을 엿 사먹고 어디 지방 농장에 가 있단다. 간혹 밥을 얻어먹어 게임후 내가 저녁 사기로 했는 데, 모든 것이 그렇듯이 계획대로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더 많다. 저녁값 대신 탈렌트라고 하는 그의 둘째딸이 잘 풀리라고 화살기도나 해 주었다.

   아파트에서 개울을 건너면 산이다. 아파트 담벼락에 장미가 아름답게 피어 있다. 장미는 역시 장미다. 꽃중의 꽃이다. "꽃이 더 이뻐.. 내가 더 이뻐.."라고 묻는 집사람에게 손가락을 적당히 가르켰다. 산을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이 배고 헐떡거린다. 확실히 운동부족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아진다. 무엇보다 나무들이 반겨준다. 초록의 잎들이 미소짓는다. 얼굴에 침을 꽂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침 맞는 남편보다는 산을 오르는 남편이 나은 지 신났다. 산을 다녀온 탓인 지 아파트 안의 길도 멋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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