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草書(초서)에 빠져있다.
내가 초서를 쓰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 매력에 흠뻑 젖어 있다. 처음 서예를 시작할 때, 당시 강사가 楷書(해서)부터 배워야 된다고 하여 줄 긋기 등의 입문절차를 걸친 후 약 4년 이상을 해서만 썼었다. 楷書의 楷자는 본보기나 모범, 바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표준으로 삼을만한 서체라는 의미에서 대개 많은 이들이 해서, 행서, 초서, 전서, 예서의 5체 중 가장 먼저 배우기 시작한다. 시중에 나와있는 해서와 관련된 책도 수십 가지가 넘는데, 나는 육조체로 해서를 익혔다. 육조체는 날카롭고 힘이 있다. 육조체는 唐楷(당해 : 중국 당대의 해서)가 아름답고 여성스러움에 반하여 씩씩하고 굳세어 남성스럽다고 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張猛龍碑(장맹룡비)로 배웠다. 사실 약 4년 이상을 해서에 매달렸다고 하지만, 동사무소의 자치회관에서 1주일에 한 번 수업받는 것에 불과하고, 체본도 8자를 받는 것에 그쳤기 때문에 서예를 익힌 강도로 본다면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만약 서예학원 등에서 집중적으로 배웠다면 1년도 걸리지 않을 것을 약 4년 이상 걸린 셈이다. 그 후 史晨碑(사신비)로 예서체를 배웠고, 행서는 행서체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왕희지의 集字聖敎書(집자성교서)로 배웠다.
그리고 그 후 추사체를 배웠고, 약 6개월 전부터는 초서에 매달리고 있다. 초서란 자체를 간략하고 빠르게 흘려 쓴 글씨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글자는 정말 너무 간결하다. 그리고 흘려 쓴 탓으로 나 자신 한자를 웬만큼 알고 있음에도 잘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이 많다. 그런 탓으로 초서가 나를 더 빠져들게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초서의 역사적 배경 등을 비롯하여 그와 관련된 글들도 해서나 행서처럼 많이 있으나, 백과사전에 있는 글을 참조하여 적어 보고자 한다.
초서의 발생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행서(行書)가 출현한 뒤 이를 쓰기에 편리하고 속사(速寫)할 수 있도록 짜임새와 필획을 간략하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록상으로 볼 때, 전서(篆書)를 사용하였던 중국 전국시대에 이미 초고(草藁)라 하여 속사를 위한 초체(草體)가 있어 정체(正體)와 구별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넓은 뜻에서의 초서는 모종의 자체(字體)를 초략(草略)한 서체 모두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또한, 서체사(書體史)에서 말하는 고정된 의미의 초서도 예서(隷書)를 사용하였던 한초(漢初)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그 변천과정에 따라 장초(章草)가 선행하며 이후 금초(今草)와 광초(狂草)의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장초는 예서를 간략하게 속사한 것으로 서한(전한) 원제(元帝) 때, 사유(史游)가 창안하였다고 전하며, 후세인들이 그가 쓴 "급취장(急就章)"으로 인하여 이를 장초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두도(杜度)가 만든 것으로 동한(후한) 장제(章帝)가 이를 애호하여 장초라 하였다고도 전하나 모두 믿을 수는 없다.
이 밖에 당(唐) 장회관(張懷瓘)은 한 장제와 위(魏) 문제(文帝)가 초서로 장주(章奏)하라 하였으므로 장초라 이름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후 송(宋)의 황정견(黃庭堅), 미불(米巿) 등의 명서가와 대부분의 소학가(小學家)들이 이 설을 따르고 있다.
장초는 예초(隷草), 급취(急就)라고도 하는데, 예서 필획의 특징인 파책(波磔)이 남아 있으며 글자가 서로 이어지지 않는다.
근래에 출토된 한대의 목간(木簡)은 초기의 장초로서 아직 일정한 규범은 정하여지지 않고 있으나, 동한의 장지(張芝)에 이르러 점차 정리되며 위진시대에 이르면 더욱 정비되어 장초의 규범이 이루어진다.
금초는 오늘날 흔히 사용되는 초서로, 장지가 장초에서 파책을 제거하고 글자 상하의 혈맥(血脈)을 이어 창안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동진시대 왕희지(王羲之), 헌지(獻之) 부자에 의하여 금초는 극치를 이루어 후대의 표준이 되었다. 금초의 법첩으로는 장지로부터 왕희지, 헌지에 이르는 명서가들이 모두 초서에 뛰어나 "순화각첩" 등의 집첩(集帖)에 많이 실려 있으며, 독첩(獨帖)으로 왕희지의 "십칠첩 十七帖" 등과, 쌍구본(雙鉤本)으로 왕희지의 "상란첩 喪亂帖", 왕헌지의 "지황탕첩 地黃湯帖" 등이 전한다.
그 뒤 진수대(陳隋代) 지영(智永)의 "천자문 千字文", 당 손과정(孫過庭)의 "서보 書譜"가 유명하다. 이 밖에 당의 장욱(張旭), 안진경(顔眞卿)과 송의 황정견, 미불 그리고 원(元)의 조맹부(趙孟頫), 명(明)의 동기창(董其昌)과 미만종(米萬鍾) 등 역대의 명서가들 중에 금초에 뛰어난 인물이 많았다.
글을 쓰다 보니 길어지게 되면서 서예의 전문용어들을 계속 나열할 수밖에 없는 관계로 글이 딱딱해져, 일단 여기서 한번 끊고 글을 上, 中, 下로 구분하여 다음에 이어가고자 한다. 사실 장초, 금초, 광초나 파책 등 전문용어가 등장하게 되면 관심 있는 분들은 열심히 읽겠지만, 용어 자체가 생소한 사람들은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더음엔 조금 더 부드럽게 글을 전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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