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코로나 횡설수설

헤스톤 2021. 1. 10. 14:15

 

솔직히 지겹다. 코로나로 불편을 겪으며 1년이 지났다. 평생교육원이나 자치회관에 다니며 배우던 서예나 문인화 등의 수업을 못 받은 지 거의 1년이다. 물론 중간에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다닌 적은 있지만, 너무 짧은 시간이라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사실 코로나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작년 봄만 해도 날씨가 더워지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는 무더웠던 여름에도 지칠 줄 모르더니 결국 사계절을 휘젓고 다니다가 한해를 넘겼다.

여하튼 이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재미도 없고 답답하다. 더구나 일주일에 며칠이라도 다니던 회사마저 몇 개월 전부터는 다니지 않게 됨에 따라 더 답답함을 느꼈는지 모른다. 

 

 

코로나라는 역병으로 경자년은 세계 모두가 힘겹게 기억될 그런 해가 되고 말았다. 경자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게 그렇게 보내고, 신축년을 맞이하였다. 아직도 물러서지 않는 코로나로 우울한 마음이지만, 새해를 맞이하여 西山大師(서산대사)의 독파능엄을 써 보았다. 

 

風靜花猶落(풍정화유락) 鳥鳴山更幽(조명산갱유)

天共白雲曉(천공백운효) 水和明月流(수화면월류)

 

이 글을 직역하면, 

"바람이 자도 꽃은 오히려 지고,

새가 울어도 산은 더욱 고요해지네.

하늘과 더불어 흰 구름 밝아오고,

물은 달과 함께 흘러가네."라는 글로

 

이 글을 의역한다면,

"마음이 고요해지니 깨달음 마땅히 이루어지고,

새가 울어도 참선자의 마음은 더욱 고요해지네.

타고난 천성으로 밝은 지혜 맞아들여 깨달았으니,

남은 세월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리라."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시를 쓰면서 비록 능엄경을 읽지도 못했고 깨달은 바도 없지만, 그동안의 배움을 바탕으로 고요함을 유지하며 밝게 살아가리라고 다짐해본다. 

 

 

코로나로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 어쩌면 이제 시대를 BC(Before Coronavirus)와 AC(After Coronavirus)로 구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막상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치다 보니 안보이던 여러 가지가 보이기도 하였다.

 

우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이 그렇게 대단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 나라들도 그냥 그렇고 그런 인간들이 사는 나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대응능력이나 국민성에서 보면 우리보다 못한 면도 많다. 특히 미국은 코로나로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다. 확진자의 증가나 사망자 숫자에서 보면 왜 그렇게 대응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 나라에는 방역당국의 말을  안 듣는 인간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정말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름답고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켜야 할 민주 시민의 기본인 공중도덕을 지키는 측면에서도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않게 되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것들도 다시 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내로남불이나 아전인수 같은 것들이다. 확진자가 증가할 때마다 당국의 입장에서 고충이 있었겠지만, 속죄양을 찾아서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 같아 보기 불편했다. 과거보다는 국민들의 수준이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사고의 차이에 따른 대립과 갈등은 더 심해진 듯하다. 

TV의 각종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참가자들끼리 평행선만 그리는 것도 여전하다. 여러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진보정권이 깨끗하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지만, 보수정권과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의, 공정, 평등과도 거리가 멀다. 차이가 있다면 보수는 자신이 더럽다고 하면서 더럽고, 진보는 깨끗하다고 하면서 더럽다는 차이 정도이다.

보수의 부패에 대하여는 말할 필요가 없고, 진보는 왜 그렇게 남 탓하기 바쁜지 모르겠다. 때로는 불의를 정의라고 강변하기도 하고, 도출된 결론이 마음에 안 들면 언론이나 검찰, 사법부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물론 나의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종편 채널에서 보여주는 시사토론 프로그램들을 자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여하튼 코로나로 제약이 많다. 우선 이동의 제약이 많다. 해외에 나가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고 있으며, 관광지나 고향에도 되도록이면 가지 말라는 정부의 권고가 자주 발생하여 그대로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집에만 있는 것은 참으로 답답하다. 사람을 만나는 것에 제약이 있다 보니 답답함을 느끼며 그야말로 시간만 죽이고 있다.

 

물론 코로나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각종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이러저러한 자격증도 많이 취득하였다. 노인심리 상담사나 다문화복지 상담사 자격증 등을 비롯하여 무려 5개의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런데 솔직히 내가 취득한 자격증이라는 것들이 따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지금 와서 생각하니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다 부질없는 일이다. 쓸데없이 시간과 돈만 낭비했다는 생각도 든다.  

 

 

   

 

긍정적인 것을 더 꼽는다면 거의 매일 약 1시간 정도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과 서예와 더불어 무궁화 등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간혹 호랑이도 그리고, 나비나 벌도 그려 넣으면서 여유를 부려본다. 따라서 코로나19가 나의 삶에 악역만 담당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것이지만, 모든 것에는 양과 음이 있다. 긍정의 눈으로 보면 때로는 나쁜 것에서도 장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동굴이 아닌 터널로 여기자. 어떤 목적지에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편해진다. 비록 당초 목적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어떤 곳에 더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평범했던 일상이 그리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행복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일상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어쩌면 이렇게라도 숨 쉬고, 밥 먹고, 잠 자고, 책 읽고, 핸드폰 쳐다보고 하는 지금의 이것들도 엄청난 행복인지 모른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뿐이고,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간다. 자꾸만 늙어 간다는 사실이 슬픈데, 누가 카톡으로 보내준 문자가 입꼬리를 올라가게 한다.

예쁘다고 흔들고 다녀도 60 넘으면 봐 줄 사람 없고,

돈 많다고 자랑하고 다녀도 70 넘으면 들어줄 사람 없고,

건강하다고 자랑해도 80 넘으면 아무 소용없다.

 

따라서 베풀 수 있을 때 베풀고, 즐길 수 있을 때 즐기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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