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조상의 비석들을 보며

헤스톤 2021. 2. 17. 15:32

辛丑年(신축년) 설날을 맞이하여 아들 부부와 조상님들 산소에 갔다 왔다.

나의 조상님들 산소에는 크고 작은 비석들이 있다. 

세상에 알려진 대단한 집안은 아니지만, 뿌리있는 집안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인지 종손인 큰집 아저씨가 생전에 고조부모와 증조부모의 비석을 세우는데 힘썼다. 후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명절이 되면 제일 먼저 찾아뵙는 고조부모의 산소부터 들렀다.

고조부인 錦士(금사) 朴恒來(박항래) 공은 자랑스러운 선조이다. 

여러 문헌을 보면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다.  

 

비석엔 "가선대부 박공 위 항래지묘"라고 쓰여있다. 가선대부는 종 2품 벼슬이다. 그 옆에는 "배 정부인 인동장씨 부우"라고 되어 있다. 종2품 의 부인은 정부인이라고 부른다. 나의 고조모는 인동 장 씨이다. 

紙榜(지방)도 그렇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 남자를 왼쪽에, 여자를 오른쪽에 쓰는 것이 다른 집들의 일반적인 풍습인데, 우리 집안은 반대이다. 보는 사람을 기준으로 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이다. 

따라서 위 비석에서 보는 것처럼 무덤도 오른쪽에 고조부가, 왼쪽에 고조모가 있다. 따라서 고조모를 "부좌"가 아니라 "부우"라고 쓰여 있다.

 

위 사진은 비석 옆면 모습이다. 이 비석은 1974년에 세워진 것으로 내 이름 炯淳(형순)도 오른쪽에서 둘째 줄 제일 밑에서 세 번째부터 쓰여있다. 玄孫(현손)으로 장손인 큰집 형이 내 이름 위에 쓰여 있다. 

 

다음으로 증조부모의 산소에 갔다. 사실 증조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부친 묘는 금산군 제원면 동곡리 한 곳에 있다.

증조부는 비석에서 보는 것처럼 군수를 하셨다. 비석엔 "진해 군수 밀양 박공 위 노원지묘"라고 되어 있다. 숙부인은 정삼품 당상관의 아내에게 주어지던 봉작이다. 증조모는 평택 임 씨이다.

이 비석에서는 우리 집안의 남과 여에 대한 좌우의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즉, 보는 사람 입장에서 남자가 왼쪽이고, 여자가 오른쪽이다. 그래서 증조모를 "부우"가 아니라 "부좌"라고 했다.

왜 이렇게 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 어느 누군가의 강력한 주장에 의거 다른 집들의 풍습과 같이 했을 것으로 보인다. 

 

위 비석의 증조부모가 나의 친 증조부모는 맞지만, 명절에 내가 차례를 지내는 증조부모는 위 할아버지의 동생 되시는 분이다. 동생되시는 분에게 자식이 없어서 나의 조부가 양자를 갔기 때문이다.

그분은 젊어서 일찍 돌아가셨고, 통사랑(정 8품)이라는 벼슬을 했다. 지금은 무덤을 화장하여 고향의 산에 뿌렸고, 증조모도 유언에 따라 사후 즉시 화장하여 천내리의 강물에 뿌려졌다고 한다. 증조모는 "함열 남궁"씨이다. 무덤도 없고 비석도 없기에 아버지가 생전에 쓰신 지방 사진을 올려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비석은 크기가 아담하다. 2001년에 세웠다.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할머니는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으니 벌써 50년 이상이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하늘나라에서는 편안하신 거죠~" 

할머니는 경주 이 씨이고, 이름은 "채봉"이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애잔하다.

 

아버지도 돌아가신 지 14년째가 되었다. 화장을 하였기 때문에 묘가 있지는 않다. 

돌아가시기 약 6년 전에 아버지는 자신의 비석을 미리 세웠다. 

어머니는 옥천 육씨로 아직 생존해 계신다.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91세가 되었다.

 

조상들의 산소를 둘러본 다음 고향인 금산군 제원면 입구로 왔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엔 아래와 같은 나의 고조부 유허비가 있다. "가선대부 금사 박 선생 항래 유허비"라고 쓰여 있다.

그 옆에는 약력 등이  표지판에 있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을 많이 하셨기에 이런 비석이 세워졌다. 

 

 

유허비 옆에 있는 아래의 "직도문화로"라는 비석도 고조부와 관련된 것이다.

고조부의 직도정신을 익히고 전하라는 의미이다. 

어렸을 때 동네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고조부와 같은 훌륭한 사람의 숨결이 있는 곳이라 자랑스럽다고. 그러면서 후손 중에 인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그런데 솔직히 그렇다. 살면서 나쁜 짓 안 하고 이름 석자 더럽히지 않고 살면 된다고 본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일상의 삶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한편 "이런 비석들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도 들며,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고, 좋은 삶인가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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