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의자를 보낸 후

헤스톤 2021. 2. 25. 10:30

이사는 단순히 집을 옮기는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러저러한 사물들과도 헤어짐을 강요받는다.

최근 이사를 앞두고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안마의자를 떠나보낸 후 왜 이렇게 허전한지 모르겠다. 그동안 많은 물건들과 만나고 헤어졌지만, 지금처럼 허전함을 느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들이 약 5년 전 나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거금(?)을 들여 사준 것으로 아무래도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당시 그 의자가 들어올 때는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 우선 집에 어울리지 않게 그 크기가 너무 커서 좁은 우리 집에 놓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의자가 왔을 당시 나는 많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집사람은 그게 아니었다. 아들이 하는 짓(?)은 무조건 좋게 보는 습관 탓인지, 나의 반응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물이라고 보낸 아들의 성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거실을 통하여 보이는 바깥 풍경을 일부 희생하는 불편한 마음 등을 접고 들여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집을 옮기게 되면서 처분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우선 그 의자가 들어갈 만한 마땅한 공간을 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았으면 좋겠다고 집사람에게 말했더니 집사람은 또 신경질을 낸다. 

 

 

중고 물품 시장에 워낙 싼 가격으로 내놓은 탓인지 의자는 금방 팔렸다. 의자를 팔면서도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사겠다는 사람이 너무 적극적으로 매달려 가격을 일부 절충하여 매매계약을 하였다.

그런데 정말 세상엔 별 사람이 다 있다. 이 사람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안된다. 매매 합의 이후 대금까지 다 지불하고 나서는 어느 부분이 어떠하니 가격을 다시 조정해 달라는 등의 문자를 보내곤 한다. 솔직히 팔면서도 그렇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기에 산 것을 후회한다면 매매대금 전부를 돌려주겠다고 하니, 갑자기 말을 바꿔 잘 쓰겠다며 수그러든다.

그러더니 며칠이 지난 후 또 물건 인도전에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쳐줬으면 좋겠다는 등의 문자를 보내곤 한다. 그래서 다른 말 필요 없고, 그냥 없던 일로 하자고 했더니 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잘 쓰겠다는 답신이 온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운반을 담당하는 의자업체에 의해 인도가 되었다. 여하튼 집사람의 못 마땅함과 겹쳐 심란한 일을 겪었다. 만약, 팔리지 않으면 많이 비좁더라도 그냥 가지고 가려고 했다. 아들의 성의 등을 생각해서 불편을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런 기분 탓인지 의자를 보내고 난 이후 찜찜하고 허전하다. 이별은 여러 가지로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처음 그 의자가 왔을 때는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겼었지만, 차츰 정이 들더니 그동안 정말 많이 사용하였다. 수시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물러 주던 의자이다. 허리와 등을 쿡쿡 눌러줄 때는 희열도 느끼고, 나른하여 의자 위에서 잠도 자주 들곤 하였는데, 이별을 하고 나니 시원함에 앞서 슬픔이 더 크게 자리를 잡는다. 

 

 

에어컨도 마찬가지다. 우리집에 있는 에어컨은 내가 IBK 여의도 지점장을 할 때 산 것이니, 벌써 19년이 흘렀다. 1년에 사용하는 날도 많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처분하려고 했더니, 중고가전제품 시장에서는 그냥 줘도 가져가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야 할 모양이다. 전자제품은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푸대접을 받는다. 무상수거도 안되고, 돈을 붙여야 한다. 하긴 어디 물건뿐이겠는가. 골동품처럼 오래될수록 좋은 것을 빼고는 모두가 오래되면 고장이 나거나 쓸모가 없게 된다.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고 평소 다니는 산에 올랐다. 봄이 오기 전의 겨울산은 꾸밈이 없어 좋다. 정직이라는 글자를 이마에 써 붙인 듯하다. 속이 다 들여다 보인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솔직함이 나를 닮은 듯하여 애잔하면서도 정이 간다. 바람이 불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산에 오르니 새가 울어댄다. 작년에 울던 그 새는 아니겠지만, 새소리는 똑같다. 산에 있는 모든 것이 옛날과 다를 바 없는데, 다음 달에는 이 산과도 멀어진다고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온다. 약 10년 이상 이 산과 붙어살았는데, 이제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물론 멀리서나마 볼 수 있는 곳으로 간다고 하지만, 내 정원처럼 드나들던 곳이기에 산을 오르면서도 섭섭함이 앞을 가린다. 이별이란 것은 정말 생각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비어 간다.   

쌓였던 눈들이 녹으면서 이제 겨울과도 이별이다. 거실에 있었던 안마의자가 자꾸만 어른거리며, 왜 이렇게 우울한지 모르겠다. 헤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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