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도움받으며 사는 세상

헤스톤 2020. 12. 18. 12:37

아무래도 한정식집에서 먹은 점심이 잘못된 모양이다.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코로나 2단계 이전으로 어머니의 구순을 축하하려고 직계가족들이 모였던 어느 일요일의 일이다. 장남인 나의 주도하에 5남매와 그 자식들이 동학사 근처의 음식집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내가 먹은 음식 중 무엇이 잘못된 모양이다. 모임이 끝난 후 어머니를 大田(대전) 집에 모셔 드린 후 집사람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특별한 것을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배가 아파서 참기 힘들었다. 운전을 하기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배에서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어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 갔다.

 

점심에 먹은 것을 생각해보니 굴을 먹은 것이 원인이다. 사실 많이 먹지도 않고 2개를 초장에 찍어 먹었을 뿐인데, 아무래도 그게 문제를 일으켰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수 개월 전에도 굴을 먹고 크게 고생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체질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변하는 모양이다. 1년 전만 해도 굴 알레르기 증상이 전혀 없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굴만 먹으면 탈이 난다. 

 

휴게소의 화장실에서 설사를 하였다. 그래도 계속 배가 불편하다. 이때 좀 더 시간을 두고 신호가 올 때마다 화장실을 더 들락거리며 배를 충분히 가라앉힌 후 출발했다면 그 事端(사단)이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운전대를 집사람에게 넘기고 그냥 올라오면서 괴로움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고속도로 정체가 엄청 힘들게 하였다. 일요일 오후답게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도로는 거북이걸음보다도 못한 지렁이 걸음이었다.   

"아~ 여보~ 너무 힘들어. 눈앞이 깜깜하고, 배가 완전 뒤틀리는군."

"참기 힘들어? 어지간해서는 아프다는 표시도 하지 않는 당신인데!" 

내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흐른다. 조수석에 앉은 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막 비비 꼬고 있으니 집사람의 걱정 지수가 높아진다. 차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속 10Km도 되지 않는 것 같다. 다음 휴게소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 졸음쉼터까지 남은 거리도 6Km가 넘는다. 꽉 막힌 차들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배에서는 난리가 났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이때 오래전 금융연수원에서 연수받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당시 의학전문기자로 유명한 H씨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언젠가 집사람에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야기는 오랜 세월을 M방송에서 유명 앵커로 활동한 L씨의 사망과 관련된 것이다. 부부 모두 누구에게 신세를 지거나 부탁을 하는 성격이 아닌 탓으로 골든타임을 놓친 어느 봄날의 가슴 아픈 이야기이었다.

이름만 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아는 L씨 부부가 양수리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군밤을 한 봉지 샀고, 운전하는 부인 옆자리에서 군밤을 먹었다고 한다. 평소 간이 좋지 않았던 그는 딱딱한 군밤을 먹은 후 목에 군밤이 걸려 힘들어하더니 피를 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토요일 오후라 길이 막혀 오랜 시간을 지체하고 어렵게 병원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어렵게 병원에 왔지만, 설상가상으로 그날따라 병원장의 퇴임식으로 전문의는 모두 행사장으로 떠나고 위급 상황에도 대처할 길이 없는 상태로 오래 있다가, 늦은 밤 전문의의 치료를 받을 수가 있었지만 그때는 안타깝게도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이야기이다.

간염을 오래 앓아온 사람에게는 목안에 혹이 생길 수 있으며 수시로 확인하면 쉽게 발견되고 수술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인데, L씨는 딱딱한 군밤을 먹고 식도 정맥류 파열로 과다 출혈하게 됨에 따라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드는 생각은 치료를 너무 늦게 받아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럴 때의 시간이야말로 정말 금보다 더 소중한 것인데, 치료할 시간을 놓쳐버린 것이다. 위급상황에서도 남에게 불편을 주는 것을 힘들어하는 성격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참고 기다리는 것이 때에 따라선 안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며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나도 법규만 잘 지키다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순간이었다. 무슨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집사람은 운전대를 꺾었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갓길로 달렸다. 갓길을 달리는 차는 우리 차외에는 없었다. 간혹 갓길 운전을 방해하는 차가 보이면 집사람은 클락션을 누르며 지금 내 남편이 급하니 비키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고속도로 순찰대나 경찰이 내 차를 발견해주길 원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보호하에 더 빨리 병원이나 화장실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 모든 것이 그렇듯이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약 6Km를 그렇게 달려서 어렵게 졸음쉼터에 도착했다. 하지만 또 문제가 생겼다. 어렵게 도착했지만,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늘어선 줄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배를 움켜쥔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앞에 서 있는 7~8명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급해서 그러니 양보를 구했고, 그들의 도움으로 화장실을 먼저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희한하게 배에서 독이 어느 정도 빠져나갔는지, 조금은 안정을 찾았다. 그날 많은 사람들의 도움에 감사하며, 특히 집사람의 선택에도 박수를 보낸다. 물론 다음 휴게소에 들러 다시 화장실을 이용했고, 구급약을 복용한 후에는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살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하겠지만, 또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날 느낀 것으로 첫째는 먹어서 즐거웠던 옛날의 추억만 생각하고, 아무 것이나 먹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맛있었다는 옛날의 기억만 생각하고 몸에서 받지 않는 것을 먹으면 탈이 난다. 둘째는 자주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도움을 청할 일이 있으면 주저 없이 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어차피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며 사는 곳이다. 운전도 양보를 하고, 양보를 받지 않으면 목적지에 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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