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사를 하고나서

헤스톤 2021. 4. 2. 20:59

 

이사를 하였다. 나이를 먹으면 함부로 집을 옮기는 것이 아닌데, 어찌하다 보니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를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중개소의 회유도 있었고,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는 집사람의 성격 등이 한몫했다. 물론 집을 매각함에 있어서 나의 묵시적 동의도 있었다. 나의 묵시적 동의엔 타로점이 약간의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작년에 여러 개의 자격증을 취득하였는데, 그중 타로 심리상담사 자격증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타로점을 보았더니,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좋다는 점괘가 나왔다. 

무엇보다 부동산중개소 입장에서는 계속 우리 집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파트 가격 상승의 주범은 부동산중개소가 아닌가 한다. 자기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높게 형성되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내부수리가 잘 된 우리 집을 타깃으로 잡은 것이라고 본다. 사실 약 5년 전부터 사는 동네에 대하여 탐탁지 않게 여겨온 나의 불만에 대하여 인근 중개소는 집사람을 통하여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시세보다 높은 금액으로 우리 집을 매물로 내놓고 매수자를 구한 것 같다.

나는 별로 관여하지도 않았고 관여하고 싶지도 않았다. 남자는 원래 "세계평화"나 "인류발전"같은 큰일이 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다는 원칙(?)에 의해 그냥 집사람의 결정에 어떠한 토도 달지 않았다.

 

사실 거래되었던 적이 없는 높은 금액으로 내놓았기 때문에 은근히 팔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예상 밖으로 쉽게 매매가 이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집을 막상 팔고 보니 갈만한 곳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사람과 함께 정말 여러 동네를 다녔다. 가지고 있는 돈이 많지 않다 보니 한강 주변의 아파트나 강남으로 갈 생각은 할 수도 없고, 개천이라도 보이는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한 집은 북한산의 숲길과 접한 아파트가 되고 말았다.

처음엔 지대가 높은 곳이라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차츰 주변을 돌아다니다보니 그런대로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우선 거실에서 앞을 보면 탁 트인 전경이 들어온다. 왼쪽으로는 수락산도 보이고, 불암산도 보인다. 날씨가 좋을 때는 오른쪽으로 검단산이나 예봉산도 보인다.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베란다에 있는 식탁에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면 마치 스카이라운지에서 먹는 기분이다. 시내의 경관을 내려다보는 기분도 괜찮다. 야경도 일품이다. 여하튼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였다.

 

집사람은 요즘 신이 났다. 전에 살던 아파트의 매도금액과 매수금액의 차액으로 각종 가전제품을 교체한다고 신났다. 우선 내가 밥을 할 때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집사람이 하면 이상하게 밥이 되거나 덮개가 열리지 않는 밥솥부터 바꿨다. 에어컨도 바꾸고, 냉장고, 세탁기 등도 다 신품으로 교체하였다. 집안 인테리어는 별로 손볼 곳이 없는데도 자꾸만 교체한다. 화장실의 변기도 바꾸고, 수전시설도 바꿨다. 식탁도 새로 들여놓았고, 바텐더 의자도 새로 샀다. 가스레인지도 인덕션으로 바꿨다. 이러다 나까지 바꾸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집사람은 물건들을 새 것으로 교체하고, 이곳저곳이 깨끗해지는 것을 보면서 어떤 희열을 맛보는 것 같다. 

 

(우리 집 거실에서 바라본 풍경은 위의 사진 순서대로 왼쪽, 중앙, 오른쪽 모습이다. 야경은 아래와 같다.)

 

여하튼 집사람이 즐거워하니 내 눈에도 자꾸만 장점들이 보인다. 요즘은 날씨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바깥 경치를 보며 사소한 행복을 느낀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전철 역이 바로 집 앞에 있고, 마을버스 등의 이용 방법을 알고 나니 그런대로 편리하다는 생각이다.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생각하기 나름이다. 아직은 주변 환경에 익숙하지 않아 좀 어색하지만, 이곳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다보면 또 다른 살 맛이 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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