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명순이 아버지 8

헤스톤 2019. 4. 15. 20:49



 

8. 남가지몽


명순이의 소리가 짜증스럽게 들렸다. 지금 동네 사람들이 거의 다 나와서 자신을 환영하고 있고, 동네

아줌마들과 처녀들이 자기에게 뽀뽀세례를 퍼붓고 있는 이 마당에 집으로 빨리 오라는 명순이의 소리는

기분을 상하게 했다. 짜증이 났다.

"아버지! 엄마가 빨리 오시래요."

"아버지! 진지 잡수세요. 아버지! 아버지~""

명순이는 계속 아버지를 불렀다. 별쭝이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못들은 체 했다.

"아버지! 아버지! 진지 잡수세요."

명순이가 또 재촉하자 별쭝이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명순이에게 발길질을 했다. 발을 들어 힘껏 찼다. 

여러번 찼다. 


"뿌지직~~ 빠직~ 뿌지직~~ 빠직~ 뿌지직~ 빠지직~"

박들이 깨졌다. 나무에 걸어 놓아 바짝 마른 박들이 여기저기 깨졌다.

바가지 깨지는 소리에 별쭝이는 눈을 떴다. 꿈이었다. 아~ 이 모든 게 꿈이었다.


술에 취해 박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는데,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어디서부터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별쭝이의 얼굴위로 낙엽들이 떨어져 있다. 별쭝이는 중얼거렸다. 

"그럼 방금 전 나에게 뽀뽀세례를 한 것들은 동네 아줌마나 처녀들이 아니고 모두 이 나뭇잎들이란

말인가!"

바가지를 팔러 읍내 장날에 나간 것부터가 꿈인 것도 같고, 병아리를 산 것 까지는 상상인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바뀔 수 없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

 

황량(黃粱)이 따로 없다. 중국 고대에 노생(盧生)이란 사람이 한단(邯鄲)이란 도시에서 목침을 베고

기장밥 한 솥 짓기만한 잠깐 동안 낮잠 자는 사이에 일생 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었다고 하더니 별쭝이의

꿈이 그랬다. 남가지몽(南柯之夢)과 다를 게 없다.

 

 

 

별쭝이는 꿈을 꾼 이후 사는 것이 허망하였다. 그래도 처음엔 꿈처럼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꿈이 아니었다. 그가 사는 모습은 별 변화가 없었다. 맨 정신으로 있는 날보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날이 많았다. 현실은 시작부터 달랐다.  

잘 말린 바가지 중에서 깨진 것을 제외하고 성한 것들을 팔아서 병아리를 산 것 까지는 꿈과 비슷했다. 

병아리 20마리를 샀다. 그런데 읍내에서 마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병아리를 담은 바구니를 안고 신작로를 따라 걸었다. 걸어오는 도중에 잠시 쉬면서 병아리들을 보니

3마리가 죽어 있었고 5마리가 비실거렸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20마리 중 결국 12마리만 남았다.

그리고 병아리에 무슨 전염병이 있었던 것인지 일주일도 안돼 또 4마리가 죽고, 보름쯤 지났을 때는

3마리밖에 안 남았다. 병아리가 중닭쯤 되었을 때 별쭝이가 안주로 잡아먹었는지 닭장에는 1마리만

보일 뿐이었다.

현실은 별쭝이에게 가혹했다. 꿈이나 상상대로라면 닭들이 잘 자라서 달걀도 많이 낳고, 달걀에서 병아리

들이 부화되어 수백마리의 닭들을 키워야 하는데, 1마리만 남고 모두 사라졌다. 그렇게 그해 겨울이 지나

갔다.

봄이 되었을 때 별쭝이는 꿈속에서 자신을 부자의 길로 들어서게 해 주었던 돼지를 키우기로 했다.

명순이 엄마를 달달 볶았다. 명순이 엄마가 빚낸 돈으로 새끼 돼지 2마리를 샀다. 별쭝이는 자기 나름

대로 열심히 키운다고 키웠던 것 같다. 정미소에서 등겨를 얻어 가려고 애쓰는 모습도 가끔 보였다.

그렇다고 사람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술에 취한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렇게 계절이 몇 번 바뀌고

다시 가을이 왔다. 빚도 갚을 겸 돼지를 팔았다. 그런데 돼지키우는 집이 많았던 탓인지 값이 폭락하여

돼지값은  형편없었다. 결국 명순이 엄마가 진 빚도 갚지 못했다.    

명순이네의 형편은 더 힘들어졌다. 무엇보다 부부싸움이 자주 있었다. 별쭝이의 불평불만은 기하급수적

으로 올라갔고, 처와 자식들을 볶아댔다. 특히 명순이가 불쌍했다. 명순이에게 술 외상 심부름을 자주

시켰다. 명순이가 나와 놀 때는 밝은 모습이었지만, 자기 집에서는 언제나 울상이었다.

특히 날씨가 궂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그 집에서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명순이 아버지가 술을 많이

먹는 날인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명순이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명순이 눈물

 

내가 어렸을 때

앞집에 살던 명순이

코스모스 피어있는 신작로를 지나

나와 함께 산으로 들로 냇가로 

돌아다녔던 동창 명순이

맑은 날 깔깔거리던 명순이가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빗속에 있었다

명순이 아버지는 왜 비가 내리면 

명순이를 고샅으로 쫓아냈을까

하늘에서 눈물이 내렸다


비오는 날 자식들 다 팽개치고 

명순이 엄마는 어디로 도망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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