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착각에서 돌아온 기쁨

헤스톤 2018. 6. 9. 11:01



아침부터 안경을 찾는다. 어젯밤 어디에 두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언제나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습관이

있는 나는 제자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찾지 못한다. 책상위에 없다. 머리가 하얗게 된다. 집사람이 함부로

나의 안경을 건드렸다고 신경질을 부린다. 식탁위에도 없고 화장실에도 없다. 그러다가 어제 붓글씨를 쓰다가

용지가 부족하여 용지를 꺼낸 후 반으로 자를 때 근시인 탓으로 안경을 벗어야 잘 보이기에 안경을 그 옆에 둔

생각이 난다. 역시 그곳에 얌전히 있다. 잠시 출장나간 기억이 돌아왔다고 좋아한다. 


내가 업무관계로 여의도를 들락거릴 때이었다. 오찬 모임이 있어 당시 전경련회관에 가서 주차를 하고 1층

으로 올라갔다. 주차를 먼 곳에 한 탓으로 갈아타야할 엘리베이터가 반대편에 있어서 그쪽으로 걸어 갔다. 

그때 저 멀리에서 아는 아줌마가 내 쪽으로 걸어온다. 많이 본 사람으로 낯이 익은 아줌마이다. 그런데 어디서

본 사람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답답하다. 나의 기억세포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아는 사람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동창도 아니고 직장관계로 아는 사람도 아니다.

골프 라운딩을 함께 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일까? 성당에서 만난 사람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매우 세련된 아줌마인데 "도대체 어디서 본 것일까?" 국회 사무처나 의원회관에서 

만난 사람도 아니다. 거리는 점점 가까워 오는데 "아는 체를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지나칠까?" 그러면서 

나 자신을 안심시켰다. 

나는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 저 사람은 나를 알아볼 것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쁜 짓 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며 살았다는 자신감 내지는 오만

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이 작용했다. 따라서 그냥 모른체하며 지나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눈인사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그러면 저 아줌마는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며 "여기는 어떻게 오셨냐?"고 할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온다.

나는 부드럽게 눈인사를 했다. 그런데 나에게 슬쩍 미소만 보내고는 휙 지나간다. 아는체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린다. 아니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아줌마는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눌줄 알았는데, 실망이다. 

"그나저나 저 아줌마는 도내체 어디서 본 누구일까?"

 

 

모임을 하기로 한 식당이 꼭대기 층에 있었기 때문에 고층으로 가기위한 엘리베이터를 탔다. 공교롭게 나이

드신 아줌마들 3명과 함께 탔다. 그 사람들은 간혹 방송이나 신문에서 보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아무리 유명인사라도 아줌마는 아줌마다. 세명이 만났으니 조용할리가 없다.

그 아줌마들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어제 '장동건' 만났다면서? 어땠어? 좋았어?"

"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야. 정말 잘 생겼더라. 너무 멋있어. 어쩌면 얼굴이 그렇게 주먹만 하냐!"

"아~ '장동건'하고 데이트나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

"그를 보고 있으면 그냥 빠져들어. 언제 밥이나 같이 먹어 봤으면 좋겠다."

그녀들의 대화는 탈렌트 '장동건'을 주제로 엘리베이터가 도착할 때까지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하면서

이어졌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엘리베이터가 빨리 올라기기만 기다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까 그 아줌마가 생각났다. 그 아줌마는 주로 조연급으로 자주 나왔던 탈렌트 P이었다.

착한 품성의 역할을 자주 맡던 사람이었다. 나하고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말을 섞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왜 "나는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한마디로 착각이었다. 당연히 그 아줌마가

나를 보고 반갑게 다가올 것이라는 것도 착각이었다. 그래도 답답했던 것이 풀리니 시원해졌다. 잠시나마

"도대체 누굴까?" 하면서 스스로 답답한 것을 만들어 놓고 풀렸다고 좋아했다.   

 

(사진은 지난 5월말 2박3일로 태안 현대솔라고CC에 갔을 때의 모습)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당하게 살기  (0) 2018.07.03
표현에 대한 단견  (0) 2018.06.19
기억 속의 향기  (0) 2018.05.27
넘버 쓰리  (0) 2018.05.13
남산 둘레길에서  (0) 2018.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