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문장

덕릉로 123길

헤스톤 2016. 5. 25. 09:38

 

 

 

덕릉로 123길

 

버스 종점옆을 지나

덕릉로 123길에 들어서면

사십여 년 전의 냄새가 풍긴다

시골 냄새와는 거리가 한참 멀지만

도시 냄새라고 하기도 그런 것이

친척 눈치를 보며 살던

어린 시절로 나를 끌고 간다

학교에 늦지 않으려고

가방을 옆에 끼고 내달렸던 골목길

뒷간에서 나오는 고단함을

달리면서 쫓아냈었는데

이곳에선 언제나 바람이 분다

옆으로는 지하철이 들락거리며

잡탕으로 섞인 바람이 분다

 

언제부터인지 단골처럼 

주변만 맴도는 늙은 바람속에서 

계절지난 옷이나 홍삼파는 집들이

훗날의 보상을 겨냥하며

삐뚤어진 모습으로 서 있고

빨갛고 하얀 무당 깃발들이

고민을 다 풀어줄 것처럼 펄럭인다

문만 열면 속을 다 드러내는

낮은 키의 낡은 가옥들이

세월을 이기지 못해 기우뚱거리고

먼지들이 막춤을 추는 사이로

天이나 神이 들어간 글자들이

아무 감정없이 지나가는 이를

맞이하고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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