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비교라는 놈

헤스톤 2015. 2. 23. 12:11

 

 

"부적절한 관계는 아니신 것 같은데 나이차는 많이 나시죠? 능력이 좋으신가 봅니다."

"젊은 부인하고 살아서 좋으시겠습니다. 재혼은 아니시죠? 부럽습니다."

어느 날 집사람이 다니는 골프연습장의 월례회에 갔다가 일부 회원들의 이런 말을 듣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지 않는다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남들의 눈에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집사람과 나이차가 많이 나지도 않을 뿐더러 능력은 무슨 개뿔이다.

남녀회원들이 몇 시간을 함께 하면서 좀 가까워졌다고 여긴 탓으로 농반진반으로 하는 말들이겠지만,

듣는 나로서는 기분이 별로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나도 나지만 집사람도 좋은 표정이 아니다.

"나는 내 남편이 나이보다 젊게 보이는데 그렇게 보이시나요?"

집사람은 나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기분이 상한지 좀 가까이 지내는 친구에게는 이렇게 쏘아붙인다.

"네 남편보다 다섯살은 더 젊어 보이는데 뭘?"

여하튼 나는 기분이 언짢아지면서 나의 단점을 살펴본다. 우선 나의 이마가 넓은 편이고 머리숱이 적은 탓이

제일 큰 것 같다. 그 날 저녁 집사람에게 말했다.

"오늘 나 당신하고 나이차가 많이 난다는 말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머리때문인 것 같아!

가발이라도 하나 써야 될 것 같아!"

 

그런 일이 있은지 며칠 지난 어느 날 집사람이 스크린 골프에서 홀인원을 하였다고 한다.

필드에서는 한 번도 하지 못했지만 스크린에서는 약 열 번 넘게 한 것 같다. 그리고 할 때마다 얼마 받는 상금

이상으로 돈을 쓰고 왔기에 그냥 그런 가 보다 하였다. 어느 때는 상금받은 것의 2배 이상을 쓰고 왔다기에

이제 제발 그런 것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매번 그랬듯이 축하한다는 말은 해주었다. 어찌보면 실력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기에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축하의 말도 안해주면 밴댕이 소갈머리로 보이고 무엇보다 분위기가 안 좋아진다.  

골프 연습장 자체 상금 약 20여만원은 이미 다 쓴 것 같고 보험금으로 30만원을 탈 예정이라고 한다.

신이 난 집사람은 PC앞에 앉아서 무엇을 열심히 검색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가발과 관련된 곳을 여기저기 검색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발값이 생각보다 싸지는 않지만 집사람은 공짜돈이라고 생각되는 보험금에 돈을 보태서

나를 조금이라도 젊게 하여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천호동에 있는 모 헤어샵으로 가발을 맞추러 갔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골라 견본으로 걸쳐 보았다. 부분가발

이라고 앞부분만 살짝 가렸는데 내가 나를 봐도 젊은 모습이다. 희한하다. 머리숱이 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

이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다시 가발을 벗고 보니 갑자기 늙어진 기분이다. 비교가 된다. 너무 차이가 난다. 

도대체 비교라는 놈은 어떤 놈일까? 

어렸을 때는 이러저러한 사람들로부터 남들과 수많은 비교를 당하며 살아왔고, 나이를 먹으면서는 과거 나와

비슷한 수준에 있었던 동창이나 친구들과 비교를 하기도 하였지만, 나의 모습을 조금 전의 나와 비교하여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예전에 누구의 글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나도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불행하게 하는 놈을 하나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비교라는 놈을 꼽을 것이다. 만약 비교라는 놈만 없다면 세상 불행의 절반 이상은 없어지리라고 본다.

도대체 비교라는 놈의 정체는 무엇일까?

불행의 대부분은 비교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때로는 친구나 이웃을 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늘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평론가인 알랭(1868~1951)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보다 나은 점에서 행복을 구한다면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남보다

한 두가지 나은 점은 있어도 전부가 뛰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남과 비교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는 데서 얻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비교하고 또 비교하며 불행의 쓴 맛을 찾아가곤

한다. 부부싸움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비교라는 놈이 끼면 큰 싸움이 된다.

예를 들어 돈도 많이 벌어오지 못하면서 매일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여보, 당신 나이와 건강을 생각해서 술 좀 줄였으면 좋겠어.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 애들도 건강하게 잘 키우고

함께 오래오래 살고싶어!" 이런식으로 말을 하면 싸움이 될리가 없다.

이런 말을 듣는 대개의 남편은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남과 비교하여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될까?

"내 동창 순이 남편은 매달 생활비 팔백만원에 따로 용돈도 주고 외제차도 사주는데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옆집 철이 아빠는 매일 일찍 들어와서 애들과 놀아주고 설거지도 해 준다는 데 도대체 당신은 돈도

어 오는 주제에 매일 술이나 쳐 먹고.."

이렇게 되면 싸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여자의 부족한 점을 누구와 비교하면서

게 되면 결국 큰 싸움이 되고 이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도 있고,

아내는 친구 남편이 승진하는 날엔 어김없이 바가지를 긁어댄다는 말도 있다.

자녀와의 대화에서도 그렇다. "옆집 누구는 아빠 어깨도 매일 주물러 주고 공부도 일등한다는데 너는 왜

이 모양이냐"라거나 "친구 딸은 모 방송국 아나운서로 들어가서 매일 TV에 얼굴을 비추고 부모에게 용돈도

준다는데 너는 아직 취직도 못하고 손이나 벌리고 있느냐"라고 하면서 비교를 하면 그 자녀는 무엇보다 자존심

상하게 된다. 

법정스님의 법문에서 인제선사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고,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피면

된다. 남과 비교하면 불행해진다"라고 하였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본다.

재산이나 지위 등을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좀 더 편한 마음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비교라는 놈이 아무 쓸모가 없는 놈은 아니다. 헤밍웨이가 말하길 "타인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고귀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한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고귀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할 때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즉, 비교라는 놈은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비교할 때만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세월이 가면서 머리숱도 줄어들고 늙는 것은 어쩔 수 없기에

가발을 써서 젊게 보이는 외모도 필요하겠지만 어제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발전하는

삶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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