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모텔과 죽음 그리고 바퀴

헤스톤 2014. 11. 17. 12:25

 

 

희한한 일이다. 

궁전처럼 꾸민 모텔들이 들어선 이후 그 앞 큰 도로에는 거의 매일 피가 흐른다.

모텔 안에서도 죽는다고 소리칠지 모르겠지만 도로에서는 차원이 다른 죽음들이

널브러져 있다.

거리의 청소부인 까마귀들이 바쁘다.

모텔과 죽음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어떤 함수로 풀 수 있는 것일까?

모텔과 까마귀의 상관관계 분석을 하라고 하면 더 어려운 것일까?

 

도로폭이 넓다고 하지만 차량의 통행이 많고 모텔로 들어가는 차들도 많다.

으리으리하고 휘황찬란하여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확 들게 만들어 놓았다.

지나 갈 때마다 정말 들어 가 보고 싶다.

그 곳을 누구는 창피해서 빨리 가고 누구는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간다.

관계 분석을 위해 함수나 방정식을 따지기에 앞서 시선을 빼앗는 모텔들...

 

너구리 영감이나 개같은 짐승들은 저 안에서 재미를 보고 있는지 몰라도

진짜 너구리나 작은 짐승은 큰 길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다.

차들이 줄지어 달린다. 너덜거려서 흩어진다.

동물들의 혼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

지나가는 차마다 나름대로 피해서 가보려고 애를 쓰지만 바퀴에 피를 묻힌다.

짓이겨진 사체의 일부라도 묻히지 않고는 지나가기 힘든 길이 되고 말았다.

 

도로 주변의 전봇대나 나무위에서 모텔쪽을 노려보고 있는 까마귀들을 처음

보았을 때는 무슨 큰 범죄자라잡으려고 새까만 특공대를 동원한 줄 알았다.

까마귀 입장에서 볼 때 먹으려고 함부로 다가서다간 자기의 목숨이 날아갈 것

같고, 그대로 보고 있자니 양식이 자꾸만 없어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먹느냐.. 그냥 포기하고 굶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남들이 만든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위험이 따르는 것일까?

그것보다 남의 것을 먹을 때는 얼만큼의 위험이 있을까? 

누구한테 물어 볼 수도 없고 수학적으로 해결 될 문제도 아니다.

참다 못한 까마귀가 모텔 안으로 들어간다.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바퀴에 살점을 묻히고 들어 온 각양각색의 차들이 

피를 흘리면서 까마귀한테 사열을 받고 있을 것이다.

까마귀한테 말이다.

 

나름대로 피해 다닌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밟으면서 다닐 수 밖에 없는 길..

직접 사고를 저지른 적은 없다고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이 도로를 다니면서 얼마나 바퀴에 묻혔을까? 

 

자동차 바퀴는 그렇다 치고 인생 바퀴에는 얼마나 묻혔을까?

깨끗한 길만 걸어 왔다고 스스로 위안을 주기도 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지금까지 저런 길을 얼마나 다녔을까?

살면서 본의 아니게 더러운 것을 묻혔으리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의 피와 살도 묻혔으리라.

씻으면서 살아야 한다. 까마귀한테 사열받기 전에 수시로 씻어내야 한다.

늙을수록 자주 씻어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조금만 묻혀도 냄새가 난다.

그리고 자기관리를 더 열심히 하면서 살아야 한다.

심신(心身)의 세정(洗淨)을 게을리하면 안된다.

 

 

삶의 바퀴가 굴러간다

달려가는 길마다

고약한 것을 피해서 가보려고 애를 쓰지만

간혹 묻히지 않고는 지나가기 힘든 길

피와 살점도 짓이기며 달려 온 바퀴

앞을 잘 보고 조심스럽게 간다고 하지만

계속 묻히면서 굴러 갈 수 밖에 없는 바퀴

까마귀들이 오기 전에

수시로 씻으면서 살리라

 

(사진은 글 내용과 관계없음)

 

지난 여름 우리 부부는 어느 커플과 골프 조인이 되었다.

남자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60대 중반이거나 후반으로 착하게 생긴 동네 아저씨이지만,

여자는 아무리 많게 잡아도 30대 중반이거나 후반으로 늘씬한 키에 서구적인 미모이다.

부부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어딘지 어색하다.

이쯤 되면 이들 관계는 척하면 삼천리이고 툭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이다.

그런데 순진하고 눈치없는 나는 집사람이 손짓하는데도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함께 운동하는 것도 인연인데 기념으로 사진 한장 찍을까요?"

남자는 알듯 모를듯 그냥 웃고만 있는데, 여자는 기겁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고 싶어서 본 것이 아니다.

주차장에서 골프클럽을 실을 때 보았던 그의 승용차가 내앞에서 가고 있었다.

술 먹은 것처럼 가는 것으로 보아 안에서 애정행각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좀 참았다가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서 하지 왜 저럴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깜짝 놀랐지만..로드킬 당한 사체를 덜컹 넘으면서 모텔 쪽으로 들어간다.

아직 공략해야 할 홀이 더 남았던 모양이다.

 

못나게도 이상한 상상을 하며 앞차에만 신경쓰다가 나도 밟고 지나갔다.

차 바퀴는 세차장에서 씻어 낸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삶의 바퀴에 어떤 것을 묻히며 살았을까.. 

본의 아니게 묻혔을 바퀴는 무엇으로 씻어내나..

산위에서 부는 바람으로 씻어낼까.. 계곡을 흐르는 물로 씻어낼까..

기도, 명상, 음악, 그림, 꽃, 독서, 산책, 하늘, 바다... 여러가지가 막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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