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문장

갱생가능 없음

헤스톤 2013. 5. 3. 08:41

 

 

 

 

 

봄비가 끈질기게 내리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속에서 바라본 그 곳은 아름다운 꽃이 피고 연둣빛 어린 잎들이 고개를 내미는 계절과 정 반대의 모습이었다. 봄이라고 모든 사람, 모든 곳이 아름다운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래전 회사정리절차(법정관리)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였다. 법원으로부터 J공단에 있는 모업체의 법정관리 개시여부에 대한 동의여부 의견조회가 왔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기에 평소 하던대로 서류확인후 그 업체의 실태파악을 위해 그 곳에 갔다.

 

우선 넓은 대지위의 오래된 건물이 힘들어 보였다. 식당옆에 커다란 인공연못이 있었다. 아니 연못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악취만 풍기고 있었다. 당연히 물고기도 모두 출장을 보냈는 지 한마리도 없었다. 식당은 수용소를 연상시켰다. 원망과 체념의 눈초리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때 잘 나가던 회사이었는 지 몰라도 예상보다 훨씬 엉망이었다. 화장실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었다. 관련자들은 부실의 원인으로 외부환경이나 남 탓으로 침을 튀겼다. 특히 몇 몇 사람은 왕년의 이야기에 열중하며 권력자 누구와 무슨 관계이고 당시 꽤 힘이 있었던 누구는 자기가 키우다시피한 사람이라는 등 목에 힘만 잔뜩 주고 있었다. 그런다고 내가 눈이나 깜짝할 사람인가.(조금 깜짝거리기는 했겠지만..)

 

무엇보다 갱생의지는 한톨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갱생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빨리 문닫고 새로운 주인을 찾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만 높아졌다. 결론은 "갱생가능 없음"이다. 

업체에만 갱생가능여부가 있는 것이 아니고 어쩜 사람간의 관계도 이런 것이 있을 지 모르겠다. 앞이 캄캄하다는 것은 완전 다른 새벽을 기다리는 것이리라.

 

 

 

 

 

    갱생가능 없음

 

                               제남  박 형 순

 

 

 

밥 때가 되었다고 우르르르

기둥이 썩고 대들보가 무너져도

지붕이 날라가고 바닥이 갈라져도

어둠을 먹고사는 술병처럼 우르르르

그래도 밥을 먹는다

오늘도 허겁지겁 죄를 씹고 있다

죄를 다 삼키고 입가심물 들이키면

다시 연못에 꽃 피려나

 

반찬이 맛 없다고 투덜투덜

배고픈 각설이 노래부르듯이

상갓집에서 밤 샌 바지뒤 주름처럼

찌그러진 식판들고 투덜투덜 

작업복에서 땟국물이 흐른다

오늘도 죄를 나누고 있다

남은 죄 다 내보내고 맨손 털면

다시 연못에 배 뜨려나

 

비가 주구장창 내리는 봄날

건질 것 없는 빈 껍데기속에서

사공들만 득실거리고

못찾겠다 속죄양 만들기 급급하며

비난과 핀잔이 춤을 춘다

잘났다고 우겨대는 잡초만 무성하여

밤이 아니어도 캄캄한데

이 어둠 죽고나면 다시 해 솟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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