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절

그 맛이 아니다.

헤스톤 2012. 10. 29. 20:40

 

 

 

 

 

나의 어머니는 물고기와 관련된 요리를 잘 하신다. 그 이유는 식구들이 잘 먹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좋아했고 우리 형제자매들 모두 잘 먹는다. 따라서 지금도 대전에 계신 어머니한테 가면 꼭 추어탕이나 물고기(주로 민물고기로 모래무지, 쏘가리, 꺽지, 준치, 피라미 등) 조린 음식을 내놓곤 한다. 자식들 먹이려고 5일장 같은 곳에서 사온 것이다. 물론 맛있게 먹는다. 추어탕도 일반음식점에서 사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예 풍기는 냄새부터 맛 자체가 다르다. 양념재료가 다르고 무엇보다 정성을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어렸을 때의 그 맛이 아니다. 입맛이 변한 탓도 있겠지만 우선 물고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시골 강가나 냇가에서 금방 잡아 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 년전의 모래무지나 쏘가리는 영 아니었다. 아마 양식이었던가 보다. 옛날 어머니가 끓인 어죽은 일품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나의 동네사람들 모두가 그 쪽으로 한 가락 했던 것 같다. 

 

 

 

나의 고향은 인삼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면소재지로 볼 때는 어죽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어죽을 파는 식당들이 고향의 천내리, 용화리 등에 걸쳐 수십집이 있지만, 나 어렸을 때 그 곳에서 어죽을 파는 곳은 없었다. 강가에서 여러 명이 솥단지 걸어넣고 고추장과 온갖 양념을 넣어 끓여먹곤 하였다. 그 당시 맛으로 볼 때는 모두가 일류요리사이었다. 원골이라고 하는 곳 근처가 유명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원골부근에 어죽집이 몰려 있다. 지난 주 토요일에는 가장 오래된 원골식당에 갔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맛이 아니다. 물론 맛있게는 먹었지만 왠지 어렸을 때의 그 맛은 아니다. 주변의 강과 산도 옛날모습이긴 하지만 주변의 풍경이 많이 변했다. 느껴지는 감정도 어렸을 때와는 완전 다르다.

 

가을이 깊어가니 곱게 물든 단풍들이 바람에 살랑인다. 이 나뭇잎들이 얼마 전 여름날 싱싱하게 푸르던 그 나뭇잎 이었던가. 그 나뭇잎이 이 나뭇잎 이었던가. 나뭇잎에서 풍기는 맛도 어렸을 때의 그 맛이 아니다. 이제 찬 바람 불고 서리 내리면 이 나뭇잎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갑자기 할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할머니가 요즘의 어죽 맛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이건 어죽도 아니라고 할 것 같다. 어렸을 적 내가 할머니에게 엄청 잘한 다고 동네에 소문이 돌고 돌았지만, 할머니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이 있었다. 좀 더 마음 편하게 해 드리지 못한 것들이 후회된다. 돌아가신 지 이제 40년이 훌쩍 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디쯤에 계실까.

 

-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회갑때 모습(조부모는 동갑으로 내가 6살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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