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절

김밥을 보면 생각나는 슬픔

헤스톤 2011. 10. 31. 19:25

 

 

 

 

 

 

   김밥을 보면 생각나는 슬픔이 있다. 김밥을 먹을 때 난 고통과 슬픔도 먹는다. 그리고 아무리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다. 난 김밥을 좋아한다. 언제부터인지 적어도 집에서 밥 먹을 땐 김을 반찬으로 꼭 챙긴다. 어떤 보상심리가 작용한 탓이리라.

 

   중,고교시절 소풍갈 때 김밥을 싸 가본적이 없다. 김밥은 커녕 소풍가는 날은 굶는 날이었다. 중학교때는 멸치반찬이라도 가져갔지만,고등학교때는 굶은 기억밖에 없다. 나의 학창시절 소풍은 그 자체가 슬픔이고 고통이었다. 그런 탓으로 김밥을 보면 과거가 막 달려온다.

   초등학교 6학년때 대전으로 전학오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하였고, 중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까지는 작은 집에서 지냈다. 그리고 그 이후는 누나, 동생과 생활을 하였는데 봄이나 가을소풍시 김밥을 가져가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아픈 기억만 한 가득 안고 있다.

  

   특히 오래도록 힘들게하는 기억은 고1때이다. 내가 소풍간다고 하니 누나는 귀찮아하였다. 수년동안 밥을 해준 누나가 고마운 것은 사실이지만, 누나는 평소에 점심도시락 싸는 것도 별로였으니 좋아할 리가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싸지 말라고 하였다.

    당시 교련복을 입고 빈 몸으로 갔다. 어느 산으로 행군하여 갔다. 대충 공식행사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니 학생들은 삼삼오오 떼를 이뤄 대부분 즐겁게 싸온 김밥을 먹었다. 깔깔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나는 산위로 걸어 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시간을 때울 요량이었다. 적당히 높은 곳에 올라 마른 나뭇가지를 꺾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곳까지 올라온 녀석들이 있었다. 경치좋은 곳을 찾아 밥 먹으러 몇 놈이 올라왔다. 혼자있는 나를 발견하고  밥 안먹냐고 한다. 얼굴이 빨개졌다. 괜찮다고 얼버무리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바위있는 곳까지 갔다. 그런데 그 곳에도 여러놈이 있었다. 김밥을 먹다말고 의아한 눈초리 내지는 불쌍한 눈초리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여러개의 눈초리에 꽂힌 나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 땀에 전기가 왔다. 창피하였다. 진땀이 났다. 그냥 바위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배에서는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났다.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면서도 몇 명을 더 만났다. 이리저리 후들거리며 다니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가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어쩌다 누구를 마주치면 당황하면서 이리저리 피해다녔다. 요즘같으면 김밥 한줄 1,500원이면 되는 데...창피, 창피, 그런 창피가 없다.

 

   누나도 싫고 자식에 무심한 부모도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일주일후 동생이 소풍을 간다고 하니 누나는 김밥을 싸주었다. 신경질이 났다. 그렇다고 화를 내면 내가 아니다. 속으로 삭일 뿐이다. 나는 쓰러져간 이 집안의 경제를 생각하는 장남으로 나의 창피함이나 불편을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보처럼 말이다. 교복도 중학교때 맞춘 교복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입었다. 궁상도 이런 궁상이 없다. 물빠진 옛날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은 전교에서 2명밖에 없었다. 한참 키도 크고 잘 먹어야할 때 너무 못 먹은 탓으로 체력장 시간에 기절한 적도 있고 코피도 몇 번 쏟았다. 자살도 심각하게 고려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이렇게 보냈다.

   김밥을 보면 그 시절이 생각난다. 김밥한줄이 간절했던 소풍이 보인다. 그런 탓으로 집에서 밥 먹을 때는 김을 빠트리지 않는다. 구운 김 보다는 김밥 김을 선호한다. 김밥용 김으로 밥을 싸서 간장을 찍어먹던가 김치를 넣어 먹는다. 아마 평생을 먹어도 보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지난 토요일(2011. 10. 29.) 서해 십리포 해수욕장과 시흥 옥구공원에서 아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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