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비오는 여름날 엄마 생각

헤스톤 2011. 8. 18. 17:15

 

       어제(2011.8. 17) 하루종일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어머니 전화 받고 끄적거려본 잡문

 

 

 

           

                     비오는 여름날 엄마 생각   (제남 박 형 순)

 

 

빠알간 자두가 왔다

후덥지근한 여름날 자두가 왔다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커녕

변변한 부채 하나 없는

대입 수험생시절의 무더운 여름날

보기에도 일등품인 자두가 왔었다

뒷 터에 있는 커다란 자두나무에서

최고로 좋은 것만 고르고 골라온 것으로

엄마의 정성이 듬뿍 담긴 빠알간 사랑이었다

 

비가 온다 비가 온다

줄기차게 오고 또 오다보니

날씨에 대한 감각도 희미하고

여름이 어디쯤 있는 지 흐릿하다

 

아무리 비가 오고 풀벌레 울음소리 깊어가도

무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데

엄마는 언제나 부엌 아궁이앞 그 자리에

머리수건 동여매고 불 꽃을 피우고 또 피웠으니

말없이 고랑따라 흐르던 그 것은

빗물인지 땀방울인지 눈물이었는지

 

다람쥐 쳇바퀴가 따로 없다고

아침일찍 일어나 신문보고 밥 먹고

출퇴근하고 잠자면서 생활하다 보니

어느덧 인생의 하산길은 분명한 데

어디 쯤에 와 있는 지 

 

젊은 그대 부르짖던 시절은

이미 가 버린지 까마득하고

새로운 세기가 왔다고

만세 부르고 박수친 지도 오래되었는 데

옛날 젖 물리던 엄마가 아직도

그 엄마인 줄 알고 있다

 

한강에 쏟아진 빗물보다 더 많이 받은 사랑은

기억의 귀퉁이로 저 만큼 밀어놓고

용돈의 다과소리라도 들리면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라고 우기면서

비를 뚫고 달려왔던 자두사랑은

어디로 출장 보냈냐고 투덜거리며

 발 길을 멀리하였다

 

이제는 세월도 사랑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시원한 바람 한필 끊어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고 또 먹었으면서도

실행 언저리만 빙빙 돌며 차일피일 미루다

 말복지나 처서가 코 앞이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이건 직장이건 뜻대로 안되는 심란함에도

엄마생각하면 짠 한데

비까지 툭툭 떨어지는 반주맞춰

 전화선타고 들려오는 그 목소리로

 가슴이 먹먹하다

 

휴가는 아직도 못 받았냐

밥은 먹었냐

 

 

 

 

 

 

 

'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풀면서 살자  (0) 2012.08.08
아들이 선택한 길  (0) 2012.04.27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0) 2011.12.26
이거 해야 돼? 말아야 돼?  (0) 2011.11.28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0) 2011.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