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011.8. 17) 하루종일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어머니 전화 받고 끄적거려본 잡문
비오는 여름날 엄마 생각 (제남 박 형 순)
빠알간 자두가 왔다
후덥지근한 여름날 자두가 왔다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커녕
변변한 부채 하나 없는
대입 수험생시절의 무더운 여름날
보기에도 일등품인 자두가 왔었다
뒷 터에 있는 커다란 자두나무에서
최고로 좋은 것만 고르고 골라온 것으로
엄마의 정성이 듬뿍 담긴 빠알간 사랑이었다
비가 온다 비가 온다
줄기차게 오고 또 오다보니
날씨에 대한 감각도 희미하고
여름이 어디쯤 있는 지 흐릿하다
아무리 비가 오고 풀벌레 울음소리 깊어가도
무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데
엄마는 언제나 부엌 아궁이앞 그 자리에
머리수건 동여매고 불 꽃을 피우고 또 피웠으니
말없이 고랑따라 흐르던 그 것은
빗물인지 땀방울인지 눈물이었는지
다람쥐 쳇바퀴가 따로 없다고
아침일찍 일어나 신문보고 밥 먹고
출퇴근하고 잠자면서 생활하다 보니
어느덧 인생의 하산길은 분명한 데
어디 쯤에 와 있는 지
젊은 그대 부르짖던 시절은
이미 가 버린지 까마득하고
새로운 세기가 왔다고
만세 부르고 박수친 지도 오래되었는 데
옛날 젖 물리던 엄마가 아직도
그 엄마인 줄 알고 있다
한강에 쏟아진 빗물보다 더 많이 받은 사랑은
기억의 귀퉁이로 저 만큼 밀어놓고
용돈의 다과소리라도 들리면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라고 우기면서
비를 뚫고 달려왔던 자두사랑은
어디로 출장 보냈냐고 투덜거리며
발 길을 멀리하였다
이제는 세월도 사랑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시원한 바람 한필 끊어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고 또 먹었으면서도
실행 언저리만 빙빙 돌며 차일피일 미루다
말복지나 처서가 코 앞이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이건 직장이건 뜻대로 안되는 심란함에도
엄마생각하면 짠 한데
비까지 툭툭 떨어지는 반주맞춰
전화선타고 들려오는 그 목소리로
가슴이 먹먹하다
휴가는 아직도 못 받았냐
밥은 먹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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