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의 사촌형 기무라노리오

헤스톤 2011. 3. 20. 12:22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했다. 쓰나미가 있었다. 우리나라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정도외는 별 생각이 없었는 데, 대전에 사시는 작은고모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노리오"는 아무 일 없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수년이 지나도록 연락없이 지내는 사이 인데..

 

   일본 도쿄에는 나의 사촌이 살고 있다. 이름은 木村紀夫(기무라 노리오)로 나보다 2살위인 형이다. 東京(도쿄) 足立區(아다치구) 防災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이고 아다치구에서 거주하고 있다. 

  

   조선시대 말기 고조부가 정3품 벼슬을 하여 괜찮게 살았을 것이나, 일제시대가 지속되면서 풍비박산이 된 우리 집안이다. 작은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으로 옥고도 치루었고, 정말 너무 힘들어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나의 백부(큰아버지)는 1930년대초 10대의 나이로 일본에 갔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게 되어 입이라도 하나 더는 심정 내지는 장남으로 무엇인가 보탬이 될 것을 기약하고 떠났을 것이다..그러나 그 이후 나의 조부모와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나는 어렸을 때 큰 아들을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눈물을 여러번 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다 돌아가신 후 한국에는 2번 오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큰아버지도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다.

   큰 아버지는 일본인과 결혼하였고 일본으로 귀화하여 일본 공무원 생활을 하였다. 죽었는 지 살았는 지 모르고 지내다 60년대이후 가끔 연락을 하며 지냈다. 한국과는 멀어졌지만 일본에서 뿌리를 잘 내려 朴(박)이라는 성을 木村(기무라)로 바꾸고 살다 돌아가셨다. 그래도 원래 뿌리는 한국이다. 아무리 귀화했어도 분명 한국인이다. 3남2녀인 그 형제자매중 다 돌아가시고 이젠 대전에 사시는 작은고모밖에 없다. 고모가 그래도 사촌인 나보다 1촌 가깝다고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일본에 사는 조카의 안부가 걱정되었나 보다.

 

   기무라노리오는 3번 한국에 왔다. 따라서 나는 그를 3번 봤다. 대학교 2학년때 처음 보았는 데, 그땐 영어로 대화하였다. 두번째는 20대 후반시절이었고 세번째는 2007년 10월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이다. 그래도 피를 나눴다고 멀리서나마 응원하는 사이이다. 3. 15일 도쿄에 있는 노리오 집전화로 여러번 걸었다. 통화가 안된다. 회사로 걸었다. 통화가 안된다. 살짝 불안해진다. 옛날 수첩을 뒤적거려 핸드폰으로 걸었다. 모시모시~ 노리오이다. 반가웠다. 예전엔 영어로 대화했지만 지금은 일본어로 한다. 노리오가 한국어를 배웠다고는 하나 영어보다도 서툴어 나의 일본어 실력이 났다. 걱정이 돼서 전화했다고 하였다. 아무 일 없다고 하였다. 가족들도 모두 무사하다고 하였다. 연신 고맙다(아리가또우~)라고 한다.. 다음에 한번 보자고 하였다. 그리고 고모에게 알려 주었다. 고모의 안도하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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