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향동네 이름

헤스톤 2009. 5. 5. 10:38

 








   내가 태어난 곳은 충남 금산 제원이다. 조그만 동네이고 산골이다. 논이 별로 없는 곳이다. 쌀의 자급

자족이 힘든 곳이다. 어렸을 적 기억으로 논 10마지기이상 가진 집은 몇 가구가 안되었다.  기와집도 몇

집 있었지만 대부분 초가집이었고 가난하였다. 그래도 즐거웠다. 행복지수는 높았던 것 같다. 개구리 잡

고 물장구 치며 신나게 놀던 곳이었다. 많은 집들이 경사가 낮은 산을 일궈 밭으로 사용하였고, 특히 인

삼농사를  많이 지었다.  우리집은 가난하여 논 3마지기 정도 있었고, 밭이 몇 백평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나마 아버지가 공무원 생활을 하셨기에 평균보다  조금 나은 생활을 한 것 같다.  당시 어느 시골이나

비슷하겠지만  초등학교 동창 중 절반이상이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머리좋고 학업성

적이 우수하였던 많은 아이들이 제적 사정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농사일에 매달리는 경우

가 많았다.   

 

   고향동네 이름에 대하여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 말하고자 한다. 잘 못알고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되도

록이면 글자 그대로 풀어보려고 한다.  나의 고향은 금산의 濟原(제원)面이다.  건널 제 언덕 원이다. 언

덕을 건너서 있는 곳이다. 서울을 기준으로 볼 때 언덕을 넘어서 있지 아니한 동네는 없을 것이다. 무슨

특색이 없는 탓인 지 모르겠지만  동네 이름은 언덕을 건너서 있는 곳이다. 읍내에서 갈 때 언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슨 큰 언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근원 원으로 보아 큰 뿌리의 근원으로 보는 것이 합

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 제원면의  동네이름 중 몇 곳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鳴巖里가 제원리옆에 있다. 울 명

바위 암이다. 바위가 울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왜 바위가 울었는 지는 모른다. 내가 어렸을 때

명암리라는 지명보다는 울빠우라고 불렀다. 누구누구는 울빠우에 산다고 말하곤 하였다.

   明谷里라고 하는 곳이 있다.  밝을 명 골 곡이다. 밝은 골짜기라는 뜻으로 바르실이라고 불렀다. 밝은

동네이다. 동네가 동향이며  뒷편으로 산이 있고 아침에 해가 뜨면 그렇게 밝을 수가 없다.

   大山里라고 하는 곳도 있다.  클 대  묏 산이다. 큰 산이 있다는 뜻인 데  뒷 쪽으로 제법 큰 산이 있다.

제원면중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살은 것 같다.  초등학교 동창생 숫자가 50명 가까이나 된다. 제원리의 동

생 숫자와 비슷하다. 동창생중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九億里도 있다. 아홉 구도 큰 숫자인데   억은

큰 숫자이다. 궝말이라고 부르곤 하였다.   

   桐谷里라고 하는 곳이 있다.  동골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동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알고 있었는 데  한

자가 아니다.  오동나무가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의 먼 친척들이 많이 살았다. 조상들의 산소가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그 윗쪽으로 吉谷리가 있다. 길한 동네인 지 그러한 염원을 담은  명칭인 지는 몰라도

예전에는 그 곳에도 초등학교가 있었다. 질골이라고 부르곤 하였다. 더 골짜기로 들어가면 身安里가 있

다. 신안사라는 사찰이 있는 곳이다. 글자 그대로 하면 몸이 편안한 동네이다. 어느 임금(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그 곳에서 잠을 잤는 데  몸이 매우 편안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 데 자세한 유래

는 신안사에 기록되어 있다.

  

   水塘1,2,3里로 불리는 사담, 토성리, 주탱이 등이 있는 데, 물이 흐르는 개천이나  금강과 연관지어 주

변 모래나 흙 등과 관계지어 붙여진 이름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갯들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개

티라고 불려지는 곳도 있고 川內라고 불리는 곳도 있다.

   그 외 金姓里도 있다. 김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씨족사회가 아닌 가 한다. 陸씨 성을 가진 씨족마을도

있다. 龍化2里이다. 나의 외갓집이 있었던 마을인 데 가막골이라고 부르곤 하였다. 까마득하게 먼 골짜

기라고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때 고모는 용화로 시집을 갔었는 데 용화보다는 가

막골에 자주 갔었던 것 같다. 그 외 저곡리라고 불리는 곳도 있다. 대체로 산골이라 곡자가 많이 붙여진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옛날에 부르거나 듣던 이름들을 생각해 보니 정감이 어린다.  쫀득쫀득한 맛이 우러나는 것 같다.  자

주 가보지 못하는 곳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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