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진 것이 없다고?

헤스톤 2009. 4. 6. 17:57

 


 

   인생은 느끼면서 살면 비극이고 생각하면서 살면 희극이라고 한다. 생각에 따라서는 기쁘거나 즐거운

일도 있을 법 한데 전반적으로 고달프거나 슬픈 일만 계속되는 기분이니 아무래도  난 감성이 앞서는 사

람인 가 보다. 생각을 좀 바꿔보자.

   가진 것이 없고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안 풀리느냐고 자꾸 푸념을 늘어 놓지만 생각해 보면 가진 것이

너무 많다. 푸른 하늘과 신선한 공기, 따뜻한 태양, 가족의 건강, 친구들의 사랑 등등.  꿈과 희망을 가지

지 않을 수 없다.

 

   가진 것이 너무 없어 마음 껏 누릴 수 없다고 투덜거리지 말자.  이 직장이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고 툴툴거리지 말자. 그래봐야 나만 손해다.  나의 앞길에 고춧가루를  뿌린 인간들을  욕하고 저주해 봐

야 내 가슴만 아프다.  나를 짓 밟아 버린 인간들을  원망해 봐야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 가. 이 직

장에서  나의 아이디어나 플랜을 펼칠 수 있는 자리에 가지 못한 것도 어쩜 나의 운명이다.  그냥 그렇게

받아 들이자. 다만 꿈과 희망을 잃지 말고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실력을 갈고 닦도록 하자. 

  

   오늘  지인이 보내준  아래 글을 읽으며 차분한 마음을 가져 본다. 중국 옛 지도자들의 삶으로 이런 삶

도 있음을 바탕에 깔아본다.

 

 

 

 < 중국 옛 지도자들의 삶 >

 

1) 운도 지지리도 없는 놈이라고 하늘의 무심함을 탓하지 말라!

내가 수십 년간 낚시를 벗하며 때를 기다리는 동안 조강지처마저 나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고서야 문왕 서백을 만나 은나라 주왕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나는 숱한 세월을 낚으며 늙은이가 되었지만 결코 하늘을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그 인내의 결실이었던 단 한 번의 기회로도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 주나라 태공망 강태공(姜太公) -


2) 용모가 볼 품 없어서 되는 일이 없다고 푸념하지 말라!

나는 어렸을 때 보잘 것 없는 외모 때문에 불량배의 다리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는 치욕을 당했고, 빨래터 노파의 밥을 빌어먹기도 했다.

초패왕 항우는 나의 볼품없는 용모를 업신여겨 범증의 천거를 번번이

거부하며 십 년간이나 말단 벼슬아치 ‘집극랑’ 자리를 맴돌게 했다..

항우에게 실망하고 유방 밑으로 들어갔으나 연전연승하며 ‘해하’에서

항우를 완전히 섬멸하고 천하를 유방에게 안겨 줄 때까지 갖은 수모를

견디어내야 했다.

나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몰골 뒤로 천하웅비의 뜻을 감추고 뭇사람들의

갖은 야유와 모욕을 참아내며 기어코 전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 되었다.

- 한나라 회음 후 한신(韓信) -


3) 한 때 자존심과 명예를 짓밟힌 치욕을 당했다고 삶을 포기하지 말라!

나는 벗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무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생식기가

잘리는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도 목숨을 부지하였다.

당시 궁형의 수치를 못 참고 자살하는 자가 많았으나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못다 이룬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나는 거세된 남자가 모진 생명을 질기게 끌고 간다는 온갖 조롱을 참아내며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여 마침내 <사기>를 완성한 불세출의 역사가가

되었다.

- 史記 작가 사마천(司馬遷) -


4) 집안배경이 나빠서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다고 변명하지 말라!

나는 오랑캐의 나라 “원” 말기 안휘성의 빈농 한족 집안에서 태어나

17살에 고아가 되어 탁발승으로서 가뭄과 기근에 찌든 험악한 세상과

맞서야 했고, 전란 통에 비적 무리의 일개 졸개가 되었을 때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 후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공으로 반란군의 2인자가 되어 원나라 몽골군을

중원에서 몰아낸 후에도 양반사대부 집안의 멸시와 견제 속에서 시달려야

했다.

나는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었던 빈농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고아가 되었을

때조차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으며 결국 몽골 오랑캐를 몰아내고 한족(漢族)

천하를 회복한 명나라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朱元璋)


5) 잘 나가다 넘어지고 재기했다 다시 쓰러진다고 괴로워하지 말라!

나는 문화대혁명 때 ‘반모 주자 파’로 몰려 홍위병으로부터 공개비판을

당했고 잠시 일어났지만 추방당하여 강서 성의 한 공장에서 4년간을

육체노동자로 버텨야했다.

주은래 총리의 도움으로 복권되어 국무원 부총리로 재기했다가 4인방의

농간에 또 다시 실각하고 가택연금까지 당해야 했지만 모택동 사후

정국수습용으로 재기용된 후 화국봉과의 5년 권력투쟁 끝에 최고실권을

장악했다.

나는 세 번 쓰러지고 네 번 일어난 역전의 용사로서 마지막 정치적

위기였던 천안문사태의 시련을 견뎌내고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 개혁개방의 총설계사가 되었다.

-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등소평(鄧小平)

- 좋은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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