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마음이 살아나고 반가움으로 들떠 있었는 데...
실 망 (박 형 순)
이십여년만에 만난 옛 친구
카탈로그도 참 많다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등등
반가움이 줄어 든다
그리움을 달래준 값으로
신사임당을 슬며시 넣어주며
날씨 풀리면 보자고 하였다
주머니속을 만지작거리며
옛날의 그 몸짓이 아니다
당장 계약하지 않으면
지구라도 멸망할 것 같은
찌그러지고 슬픈 얼굴이다
연락이 왔을 땐 들떠 있었는 데
과거의 기억은 아름다웠는 데
다시 만나면 좋은 인연으로
함께 하고 싶었는 데
제대로 작별인사도 없이
어둠이 짙게 깔린다
달도 없고 별도 없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우산도 없이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어도
심란한 마음이
씻겨 내려가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