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메일로 본 낙조(落照)
천 부회장의 약속은 또 이루어지지 않았다. 직원들의 급여 지급이 또 미루어졌다. 직원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면 경영자인 부회장이 우선 사과라도 해야 되는데, 그에게서 사과의 말을 듣는 것은 맑은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만큼 힘들었다. 그에겐 급여보다 자재수급이 언제나 우선이었다. 물론 계속적인 생산을 통한 제품 판매로 위기를 타개하려는 그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한정된 돈을 어디에 먼저 지급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직원들의 생각과 너무 달랐다.
계속되는 자금 경색으로 급여는 말할 것도 없고, 협력업체들에 대한 대금 미지급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지하를 파고들었다. 매일 대금지급 독촉을 하던 협력업체 중 일부는 채권추심업체에 위임을 한 곳도 있었다. 오제원 상무는 구매부문장으로 채권추심업체를 상대하곤 했는데, 이들로부터 때로는 협박성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사표를 제출한 상태이었기에 천 부회장으로 창구 변화를 유도하면서 회피하곤 했다. 스스로 비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책임있는 답변을 할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 부회장은 다른 임원들과 달리 경영자의 입장에서 손을 놓을 입장이 아니었기에 최선을 다하자고 스스로 다짐하며 PC앞에 앉았다. 우선 생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재가 없어서 가동을 못한다는 생산 현장의 말에 답답함을 풀 곳이 없는 그는 해외에 있는 각 법인과 부장급 이상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금일 전사 상황이 자재수급이 되질 않아 생산라인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선결제를 해야 자재공급을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각 법인은 가용자금 모두를 본사로 송급해 주시기 바랍니다.
각 법인 필히 최우선으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필리핀 R은행과 미팅예정이고, 내일 R은행 임원위원회 개최 후 대출기표 예정입니다.
상해법인은 다음 주까지 계획된 자금확보를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각 부서장께서는 이러한 회사사정을 팀원들에게 잘 설명하여 이 위기를 벗어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각 법인은 현 상황을 인식하시고 가용 자금을 파악하여 빨리 회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본사는 금일 수입 통관비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본사 자금부장은 빨리 집계하여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4월이기에 여름은 시작도 안 했는데 왜 이리 더운지 모르겠다. 천 부회장은 하루하루가 초조하다. 연신 담배를 물었다. 회사에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꼭대기라고 할 수 있는 부회장 대표이사의 자리에 까지 올라왔건만, 대표이사가 된 이후 암초뿐이었다.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매일이 힘든 날이었다. 필리핀에 급하게 다녀온 이후 그는 다시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다들 수고 많습니다.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어제 필리핀 R은행과 미팅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결국 이곳도 본사의 2년 연속 매출하락과 적자시현, 그리고 자금유동성의 저조한 평가로 대출금액 감액(25백만 불)과 대출시기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다른 원인으로는 우리나라와 다른 그 나라의 느긋한 현지시스템도 크게 한몫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은행 이사회가 있는 5월 3일에 최종승인이 나고, 5월 8일 대출실행이 최상의 시나리오입니다.
대출실행에 필요한 서류는 모두 준비가 된 상태이며, 은행의 대출 승인과 동시에 빨리 진행하는 것으로 협의하였기에 상기 일정대로 진행되리라고 봅니다.
현재로서는 당장 5.8. 까지 가용할 재원이 시급하며, 상해와 필리핀 자금이 확보되더라도 전사의 자금집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따라서 전 법인은 6월 자금계획을 내일까지 필히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법인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수준으로 최소한의 지출계획을 입안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힘들게 고군분투히는 부분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슬기롭게 헤쳐 나갑시다.
그렇지만 5. 8.에 나온다는 대출은 나오지 않았다. 5월 중순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고객사에게 납품을해야 하는데 기계를 돌릴 필수 자재가 없다. 그 와중에 대금을 못 받은 주자재 업체 중 가장 큰 업체인 C주식회사로부터 내용증명 우편을 받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함에 대한 경고 내지는 법적절차 착수통지이다. 급한 마음에 천태운 부회장은 그쪽 회사 창구인 이해준 상무에게 구걸하는 메일을 발송하였다.
이해준 상무님!
(주)하나케이시의 천태운입니다.
보내주신 내용증명은 잘 받았습니다.
우선 5월 미팅 시 약속한 부분을 이행하지 못해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저도 빨리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만, 필리핀 은행의 계속된 약속 번복에 엄청난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지난주에 저희 L 고객사의 구매부장과 당사의 유동성문제로 미팅을 가졌습니다.
귀사에 대한 자재대금 지불을 빨리 정리하라는 경고를 받았고, 저희의 향후 계획을 제출하였습니다.
이 상무님!
필리핀 R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즉시 자재대금을 지불할 것이며, 해외법인들을 활용하여 재무유동성을 해결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추진 중에 있으니 조금만 더 도와주십시오.
늦어도 6. 22. 까지는 일부 송금 가능합니다.
그동안 S사 납품용 자재 일부만이라도 출고를 부탁드립니다.
이번 주부터 상해 법인 메인설비 가동이 중단되었고 금주중 자재투입이 되지 않을 때에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S사에 대한 물품공급이 중단되게 됩니다.
최악의 상황은 피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염치없는 메일을 송부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와주십시오.
천태운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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