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43

헤스톤 2025. 5. 22. 10:02

오랜 기간에 걸쳐 쓴 장편소설 悲慾(비욕)은 이번 43회를 끝으로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AI가 많은 것을 대신해 주는 시대가 되다 보니, 학교 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시인이나 소설가도 그 존재가치가 줄어든 사회가 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변화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공의 인물들로 이 장편소설을 썼습니다. 추후에는 이 글을 잘 다독거리고, 독자들이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나름대로 흥미를 섞어 책으로 완성품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43. 새로운 시작

 

오제원 상무는 하나케이시(주)와 작별을 앞두고 허 회장에게 겸손을 말씀드렸다. 오 상무는 과거 자신의 오만으로 실패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느님과의 대화는 감사이지만, 인간과의 대화는 겸손이라는 것을 허 회장에게 말하면서 회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대표이사실에 들러 천태운 부회장에게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또한 불공정이나 불의가 회사의 이익보다 앞설 수 없다는 말을 자신의 비겁함에 빗대어 말하였다. 오 상무가 떠나면서 한 말인 탓인지 그들은 새겨듣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 상무는 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설사 그들이 오 상무의 말을 듣는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것이다. 여름이 다 지난 후에 씨 뿌리고 거름주며 정성을 쏟는다고 농작물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씨는 봄에 뿌렸어야 한다. 낙엽 떨어지는 가을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씨를 뿌려봐야 소용없다. 사람도 다 때가 있듯이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인데, 이미 판매나 구매 거래처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신뢰를 잃으면 재기할 수도 없다. 신뢰란 것은 잃기는 쉬워도 다시 구축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따라서 진작부터 거래처와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어야 했다.      

 

오제원 상무는 자주 가던 회사의 큰 연못가로 갔다. 언제 보아도 사계절이 다 아름다운 곳이다. 맑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지난 약 6.5년의 시간들이 구름이 되어 떠돈 듯하다. 하나케이시(주)에 입사하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힘들고 괴로웠지만, 개인적으론 큰 경험이었고 추억으로 남는 시간들이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정말 인생은 뜻대로 안 된다. 어쩜 뜻대로 된다면 인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이 그렇듯이 기업의 운명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오제원 상무는 발길을 돌렸다. 

 

 

 

하나케이시(주)에 들어오기 전 약 30년의 은행생활에서 오제원이라고 욕심이 없었겠는가. 오 상무가 지점장이 될때까지는 동기들 중에서 거의 선두그룹에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췄다. 오 상무라고 은행에서 임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지점장이 된 이후 고통스러운 여러 악재가 겹쳤다. 당시 지점장의 운명은 '운칠기삼(運七技三)', 혹은 더 나아가 '운구기일'이라고 하면서 운이 따라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에겐 정말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손금 탓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쏟아지던 장애물들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도 마지막 점포에서 허방진 회장을 만나 하나케이시(주)에 입사하게 된 것은 참으로 좋은 인연이었다. 은행이라는 곳에서 지점장 위로 승진 못했던 것을 다 보상받게 해 주었다. 좀 더 미화하면 전화위복이었다. 회사에 이사대우로 입사하여 2년 후 대우자를 떼고 이사가 되었다가 다시 2년 후 상무로 승진하였으니, 은행에서 못한 승진을 다한 셈도 된다. 회사는 힘들어졌어도 개인적으론 참으로 열심히 일한 시간이었다. 오 상무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 모두가 어느 누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탓이라는 것을 안다. 오 상무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결과이다. 그리고 앞으로 살게 될 날들도 결국 모두 오 상무 자신의 탓이 될 것이다. 

 

오제원이 퇴직한 지 4개월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약 4개월 동안 오 상무는 별일이 없었지만, 하나케이시(주)는 예상대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장 특기할만한 일은 천태운 부회장이 결국 허방진 회장과 크게 싸운 후 퇴사를 했다는 것이다. 천 부회장이 나간 후 회사는 개점휴업 상태로 고사(枯死)상태라고 하였다. 오 상무에게 전화가 왔다.

오 상무가 모르는 번호이다. 오 상무는 070으로 오는 전화는 90% 이상이 판매 혹은 광고 전화이기 때문에 받지 않은지 오래됐다. 그런데 010 전화이다. 010 전화도 골프나 콘도 회원 관련 전화를 많이 받은 터라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그런데 벨 소리가 받으라는 식으로 계속 울려댄다. 오 상무는 마지못해 받았다.

"여보세요."

"오제남 상무님 이신가요?"

"예~ 오제남입니다만 누구신지요?"

"예~ 상무님~ 안녕하세요. 저 허방진 회장의 아들 허태룡입니다."

"아니, 지금 미국에 계신 것 아닙니까. MS그룹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바쁘신 분이 어쩐 일이신지요?"

"오 상무님~ 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업종은 유사하지만, 하나케이시(주)가 아닌 새로운 회사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일단 한번 뵙고 싶습니다."

"만나는 것은 좋지만, 제가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오 상무님 댁 근처에 있는  S커피숍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허태룡은 오 상무에게 하나케이시(주)는 법정관리로 남기고, 새롭게 회사를 신설하여 재건하려고 하니 CFO를 맡아달라고 하였다. 직위는 전무이사로 총무 및 전략 부문도 총괄해달라며 간청을 하였다. 오제원은 입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늦가을의 긴 밤을 뜬 눈으로 보냈다.  끝.

 

 

 

동이 튼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큼성큼 무대가 등장하며

삼바의 휘스크처럼

붉은빛들이 휘젓고 있지만

왜 이렇게 고요한 것일까

구름도 길을 멈추고

새들도 조용하고

향기도 숨을 죽인다

 

예술과는 거리가 멀지만

예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사자관체의 글씨처럼

강직을 넘어 자연스럽건만

왜 이렇게 소름이 돋는 것일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바꾸려 해도 바꿔질 수 없는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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