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문을 나서는데 왼쪽 무릎이 힘없이 푹 꺾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집사람이 깜짝 놀라 나를 부축하여 병원으로 다시 들어갔다. 상황을 말하니 의사가 뛰쳐
나오는데, 의사를 바라보는 집사람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 의사는 2시간 정도 있으면 괜찮아질 것
이라고 하지만, 한번 내려간 믿음을 끌어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잠도 안오는데 회복실 침대에서
계속 누워 있으려니 답답하다. 약 20분 정도 흐른 다음 침대에서 내려와 서 보았다. 몇 걸음을 떼지
못하고 다시 풀썩 무릎이 꺾인다. 이대로 병신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괜히 병원에 왔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두 발로 걸어서 병원에 왔다가 불구가 되거나 송장으로 나간
사례가 많다고 하더니 그와 비슷한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의료사고와 관련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오래전 은사님 한분은
60대 중반에 어렵지 않은 심장관련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영영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또, 멀지
않은 친척 한분도 웃으면서 자기 발로 병원에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후 그들이 어떤 보상을 받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일반환자가 병원을
상대로 의료사고에 대한 소송을 진행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의학지식이나 정보는 물론이고,
인과관계를 입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혼 시절 지하철로 출퇴근시 집과 멀지않은 곳에 개업한지 얼마 안되는 산부인과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앞에서 수개월 동안 시위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산모가 의료사고로 사망하였다고 가족들이 돌아
가면서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그 산부인과는 개점휴업 상태로 있다가 문을 닫고
말았다. 그나저나 이대로 다리 병신이 되거나 더 잘못된 상황이 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짜증 내지 않기, 베풀면서 살기, 유머감각을 잃지 않기 등의 다짐들은 나의
몸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만약 원래의 상태로 갈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번 약해진 마음은 평정심에서
자꾸만 멀어진다. 세상 일이란 것이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특히 사람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언제 어떤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만약을 생각해서 유서라도 미리 써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일어서 보았다.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다시 풀썩 주저앉는다. 천장이 노랗다.
이 병원에 오게 된 사유는 오늘 새벽 대문앞에 놓인 신문을 가지고 들어오면서 부터다. 신문지 속에서
전단지 하나가 쑥 빠졌다. 병원개업을 알리는 광고문이었다. 통증치료 전문병원이라고 하는데 오래전
부터 허리에 통증이 있었던 터라 전단지의 내용이 나의 눈길을 한참 붙들었다. 우리집에서 얼마 떨어
지지 않은 곳으로 어제 개업을 하였다는 내용을 알리고 있었다.
전단지를 꼼꼼하게 보면서 오늘 내가 이 병원에 가보겠다고 집사람에게 말하였더니 평소같으면 그냥
잘 다녀오라고 할텐데, 집사람은 무슨 감이 있었는지 나를 따라왔다. 병원에 와보니 무엇보다 전단지
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규모가 작은 병원이었다. 인테리어를 새로 한 것은 좋은데, 혈압기나 의자
등이 다른 곳에서 쓰던 물건들이었다. 개업한 병원치고 사람이 너무 없다. 의사와 면담하면서 왼쪽
다리의 불편함을 말하였다. 나의 분석으로는 골프 운동시 왼쪽 다리에 힘이 많이 가해지는 것과 요추
4,5번의 '미만성 팽윤'이 원인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 의사는 왼쪽 다리의 여기저기를 눌러 보더니
허리때문이 아니라고 단정해 버린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에 신뢰지수가 떨어지지만 나는 의사가 아니다.
옷을 갈아입고 통증이 있는 이곳저곳에 주사를 맞았다. 많이 아프다. 그리고는 접수대에서 개업기념
타올도 받고 얼마동안 음료수를 마시면서 이러저러한 말을 나누다가 일어섰다. 그리고 병원문을 나오
는데 갑자기 왼쪽 다리에서 힘이 쭉 빠져 나가며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일어설 수가 없었다.
내가 왼쪽 다리에 약간의 불편을 겪기 시작한 것은 약 6~7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골프를 치는
나의 자세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제일 큰 원인으로 어느날부터 양반다리가 잘 되지 않고, 똑바로 누우면
다리가 당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때 여기저기의 병원에도 다녔보았지만 나아지지는 않았다.
어느 병원의 치료를 받을 때는 좋아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나빠졌다. 그렇다고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불편하지는 않은 상태이기에 그럭저럭 지내왔는데, 오늘 이런 상황을 겪게된 것
이었다.
침대에 누워 꽤 긴 시간이 지난 후 내려와 걸어보았다. 조금 불편하지만 그런대로 걸을 만하다.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니었는데, 의연하지 못한 생각을 하며 반나절을 보낸 내가 우습다. 주저앉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생각하며 병원 문을 나서는데,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핸드폰에서
'윤태규'의 '마이웨이'가 들린다.
누구나 한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
이제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
내가 가야하는 이 길에
지쳐 쓰러지는 날까지
일어나 한번 더 부딪쳐 보는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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