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세동이

헤스톤 2017. 3. 31. 18:01

 

 

 

세동이를 처음 본 사람은 앙칼지게 짖어대는 녀석의 모습에 정이 뚝 떨어진다. 귀엽다고 쓰다듬어 주려고

다가서면 더 사납게 달려든다. 잘 못 만지다가는 녀석한테 물리기 십상이다. 회사에 손님으로 온 사람

들은 물론이고 직원들도 녀석한테 다가섰다가 많이 물렸다. 나도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 대단하였다.

마치 잡아 먹을듯이 달려들었다. 당시 목줄이 없었다면 봉변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사나워졌을까?

이 녀석이 이렇게 사납게된 이유를 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회사의 서열로 따지면 1번과 2번

이라고 할 수 있는 회장과 전(前) 사장이 이 녀석을 엄청 예뻐하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1번인 회장탓이 더

크다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이 녀석이 다른 사람을 물거나 다른 개를 물어뜯고 오면 녀석을 꾸짖는

것이 아니고 마치 상이라도 줄 것처럼 쓰다듬어 주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러하니 이 녀석은 자기가 이 회사

에서 넘버 3쯤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넘버 2로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회사내에서는 이 놈을 "부회장"이라고 비꼬는 투로 말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이미 짐작은 하였겠지만 "세동"이는 회사에서 키우는 개 이름이다. 이름을 듣는 순간 누구나 5공시절의

그 사람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충성"이라는 말을 저절로 떠올리게 한다. 그 사람이 자기 주군을

위해 충성을 하였듯이 회장의 입장에서 직원들의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라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개의 이름에 그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 웃긴다.

개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개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치고 입가를 치켜 올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 더군다나 숫놈도 아니고 암놈의 개에게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 더 웃긴다.

여하튼 직원뿐만 아니고 협력업체에서 물건을 싣고 온 직원이나 택배 기사가 이 녀석한테 다가섰다가

봉변을 당한 경우가 여러번이다. 그래서 치료비를 물어준 경우도 많다. 그런데 왜 회사는 이 녀석의 행태를

바꾸려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에게도 기 죽지 않고 집을 잘 지킨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료비를 수시로 물어주는 한이 있어도 잘했다고 칭찬하였으니 녀석이 기고만장

하게된 것이다. 개 주인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에게는 앙칼지게 대하고 자기한테만 꼬리를 흔들며 온 몸으로

반기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흐뭇하였을까.

 

그런데 이 녀석이 최근 힘이 많이 빠졌다. 기운도 없다. 회사가 힘든 것을 이 녀석도 아는 가 보다. 회사의

사세가 완전히 기울어 외부에서 오는 사람도 많이 없고, 약 230명이었던 직원도 이제 약 20여명으로 줄다

보니 예전처럼 수시로 앙칼지게 짖어댈 이유도 없어진 것이다. 이젠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고, 이 녀석의

기를 살려주던 전(前) 사장은 회사를 그만둔지 이미 오래되었다. 무엇보다 이 녀석을 무척 예뻐하던 회장이

매일 출근하지도 않을 뿐더러 출근을 해도 잘 돌보지 않는 이유도 있다. 물론 지금도 회장이 어쩌다 다가

서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환장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직원의 입장에서는 만감이 교차한다. 겨울만 되면

회장은 이 녀석이 추울까봐 총무 직원을 닦달하여 전기장판도 넣어주고 두꺼운 이불도 깔아주었다. 매월

사료비도 꽤 들어간다. 그래도 이젠 이 녀석의 상태가 예전같지 않다. 늙은 탓도 있지만 눈에 힘도 없어

졌다. 그렇게 악랄하던 모습도 이젠 볼 수가 없고 많이 겸손해진 것 같다.

 

늙으면 개도 힘이 빠지나 보다. 그래서 요즘엔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엔 짖는 소리를 들은지도 오래

되었다. 세동이와 함께 세동이의 딸도 덩달아 힘이 빠졌다. 딸의 이름은 "세순"이다. 세순이는 원래부터 좀

모자란 듯 하였다. 제 어미가 짖으면 같이 짖고, 꼬리를 흔들면 같이 흔든다. 

이 녀석들 눈도 옛날같지 않다. 간혹 보면 멍 때리는 표정으로 있다. 회사의 현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이 녀석들이 있는 앞을 지날 때 보면 아무 표정이 없다. 그래서 요즘은 지나가면서

이 녀석들을 향해 이름을 한번씩 불러준다. "세동이~ 세순이~ 밥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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