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큰 사고를 냈다.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맞은 편에서 오는 오토바이와 크게 부딪쳤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진행방향으로 약 10m 정도 날아서 널브러져 있다. 좌회전 신호는 이미 끊어진 상태이었기 때문에
내가 신호위반을 한 것이다. 시간은 오후 7시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캄캄한 밤으로 마주오는 차량 불빛이
없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크게 부딪치고 보니 앞이 깜깜하였다.
그 당시를 돌이켜 볼 때 깨달은 것이 있다. 잘 보이지 않는 사물을 내 마음대로 상상하지 말라는 것과 세상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히 마주오는 차량이 없다고 확신하고 좌회전을 했지만
오토바이는 크게 속력을 내면서 왔던 것 같다. 나의 차는 완전 찌그러지고 오토바이도 많이 파손되었다.
사고를 일으키고 보니 무엇보다 사람이 걱정되었다. 당황한 탓인지 119 전화도 잘 걸리지 않는다. 핸드폰
에서는 숫자판이 안 뜨고 자꾸만 이상한 것이 뜬다. 주위의 주유소에 있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면서
빨리 구급차를 불러 달라고 요청하였다. 쭉 뻗은 오토바이 운전자는 꼼짝을 않는다. 가슴을 몇 번 누르면서
괜찮냐고 물으니 아무 대답도 없다. 그러더니 눈을 뜬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잘 못 알아 듣겠다. 횡설수설
하는 것으로 보아 크게 다친 것 같다. 겁도 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피해자는 한참을 누워 있더니 일어
나려고 하길래 구급차를 불렀으니 조금만 더 누워 있으라고 해도 자꾸만 일어나려고 한다. 몇 번을 일어
나려고 하다가 넘어지곤 한다. 왜 자꾸만 일어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가만히 좀 있으라고 달랬다.
내 말을 잘 못 알아 듣는 것 같다. 구급차가 오기 직전에 알게된 것이지만 그는 필리핀인이었다. 무슨 이유
인지 그는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만 하는 것 같았다. 서툰 한국어로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다. 그래서 일단
앉게 하고 어디가 제일 아프냐고 물으니 물을 찾는다. 내 차에 있던 물을 먹게 하였다.
언제 왔는지 렉카차들이 벌써 몇 대 와 있다. 조금 있으니 경찰이 와서 수신호로 교통을 정리한다. 렉카차
운전자도 마찬가지이지만 경찰도 교통 정리보다 우선 피해자에게 와서 어떤 조치를 취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들은 그들 할 일이 따로 있는 가 보다. 나는 계속 정신이 없다. 무엇보다 이 사람이 어떻게 될까 봐
조마조마하다. 구급차는 왜 이렇게 안 오는지 모르겠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답답해 죽겠는데
흘러나오는 음성메시지가 야속하다. 피해자는 자꾸만 엎어지면서도 일어나려고 하고 구급차는 여전히 안
보인다. 갑자기 마누라가 생각난다. 왜 이럴 때 마누라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전화를 하였다. 안 받는다.
받을 리가 없다. 내가 필요할 때 받아본 적이 없다. 내가 전화 받기 곤란할 때 전화벨이 울려서 보면 여지
없이 마누라이지만 내가 필요할 때 전화를 걸어서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제일 생각나는 사람은
마누라다. 회사의 총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전화를 하여 이쪽으로 올 수 있겠냐고 하니 금방 오겠다고
한다. 그 뒤 이 직원이 현장의 뒷수습은 처리하였다고 한다.
나는 피해자와 함께 앰뷸런스를 탔다. 어느 병원으로 가기를 원하느냐고 하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는다.
그래서 내가 구급대원에게 이 근처에서 제일 큰 병원으로 가 달라고 요청하였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구급
대원이 여기저기 누르면서 아픈 곳을 물어 본다. 다행인지 팔 다리는 성한 것 같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고
접수를 기다리는 동안 경찰 2명이 와서 피해자 신원조회를 한다. 피해자는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인지 얼이
완전 빠져 있는 것인지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나대로 사고 경위서를 작성하였다. 관할 경찰서에서
전화가 올 것이고 다시 조서를 작성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피해자가 응급실로 들어간 이후 보험사
직원은 다 끝났으니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서 편하게 지내라고 하지만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오~ 신이시여!
마누라가 나를 모시러(?) 왔다. 밤 늦게 밥상을 차려 주었지만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아침 보험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재 피해자가 중환자실에 있어서 면회도 못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걱정지수가 다시 올라간다. 오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게 지내다가 점심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병원으로 갔다. 조금 전에 일반병실로 옮겼다고 한다. 조금 안심이 된다. 음료수 한 박스를 사
들고 병실로 갔다. 아주 곤하게 잠을 자고 있다. 보호자도 없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살짝 깨웠더니 미소
짓는다. 아픈 곳이 없느냐고 물으니 서툰 말로 아프지 않다고 한다. 다행이다.
"어제 오른쪽 팔꿈치가 아프다고 했는데 괜찮아요?"
"나~ 안 아퍼요. 괜찮아요."
"아무도 없는데 보호자 없어요?"
"동생이 저녁때 와요. 외삼촌하고 사모님도 왔어요."
"사모님이라니 누구 말하는건가요?"
"우리 사모님요. 내 사모님도 왔다 갔어요."
아마 고용주의 와이프를 말하는 것 같다. 사고를 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몸조리를 부탁하며 병실문을
나섰다. 나의 잘못으로 내가 벌을 받는 것은 상관없지만, 만약 사람이 죽었거나 크게 다쳤다면 나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살아야 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액땜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더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위한
것이라고 위로한다. 다시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안전 운전을 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각종 법률이나 규칙을 위반하면서 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일부로 마중하러 나가지 않아도 나이의 숫자는 바뀐다. 앞으로는 눈 똑바로 뜨고 서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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