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 농기구
풀무질로 달구어진 시뻘건 화덕속에
농부의 땀과 한숨이 섞여 있는
깨지거나 부러진 농기구를 넣으면
뭉쳤던 것들이 녹는다
비겁하거나 힘들었던 시간들도 녹고
다르게 살아온 것들도 함께 녹는다
철커덕 철커덕 뚝 뚝
쓱싹 쓱싹 쓱쓱 싹싹
맘대로 다룰 수 있게 녹은 쇳덩이들이
맞고 터지고 주물러지면서
앞으로 큰 일을 할 수도 있는
날카로운 연장으로 얼굴을 내민다
과거를 녹여 저렇게 될 수만 있다면
한계를 초월한 고통이 따른다 해도
얼만큼 닳고 흠집난 나의 지난 삶을
저 불구덩이 속에다 집어넣고 싶다
솜씨 좋은 대장장이의
숫돌에 갈리고 메질로 벼리어져서
쳐다보고 또 쳐다봐도 질리지 않는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
자연과 더불어 사랑을 먹으면서
제대로 밭을 갈고 싶다
(사진은 사진작가 말러 임성환님의 작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