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느 묵 묘
오래전에는 분명
벌초를 한 흔적도 있었던 곳이었는데
잔디는 다 어디로 가고
봉긋했던 높이마저 없어지고 말았으니
혼령이 머물렀던 곳인지 아닌지
깨져서 뒹굴고 있는 석주마저 없었다면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갔으리라
양지바른 곳으로 보아
목소리 높이며 살다 갔을지도 모르고
자손들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섞어
달구질로 단단하게 다졌을 이곳인데
무슨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지 부르르 떨고 있다
풍우에 깎이고 무너져서
주변 흙들과 허물없는 사이가 된 것은
잊혀지기 위함이었을까
잘난 사람이었건 못난 사람이었건
사라지기는 마찬가지
세월이 흐르고
또 한참 더 흐르다 보면
이 세상에 왔었다는 사실조차 모를테니
하늘에서 눈물 뿌려
주변에 꽃 몇 송이라도 피운다면
더이상 미련도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