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문장

폼 잡지마

헤스톤 2014. 1. 15. 09:30

 

 

 

작년 12월 최우수신인상 수상 이후에 스트레스가 하나 더 쌓였다. 매월 시 2편을 의무적으로 송부해야 하는 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는 쉽게 쓰는 지 몰라도 나 같은 둔재는 솔직히 벅차다.

작년에는 몇 번 예전에 써 놓았던 미발표작을 보내기도 했지만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새로 밥을 해서 밥상을

차리는 것이 아니고 밥통에 있었던 밥을 꺼내 놓는 것 같아 내 성격과는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매일 시 쓰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또 대충 갈겨서 보낸다는 것은 나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나 다른 장르의 글도 쓰고 싶은데 여유가 없다.

괜히 잘난 체하고 등단했다가 망신 당할 것 같은 기분만 든다. 좀 더 겸손하고 폼 잡지 말아야 할텐데..

 

 

 

         폼   잡 지 마

 

                                                박  형  순

 

 

그린피내기에서 마지막홀을 남겨두고 두점 뒤진 상황

두 번째 샷이 그린에 한참 못 미쳐 실망하고 있는데

상대는 오비내고 왔다리 갔다리

어쩌다 운좋게 세 번째 샷이 핀에 붙어 한점차 역전

상대방 마음이야 알 것 없고 기분 째진다

장갑 벗을 때까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쓰리고에 피박당하며 형편없는 십구홀 초반 상황

복구는 커녕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어지고 있는데

상대의 낙장 실수와 무리한 고가 이어지면서

판을 거둘 때는 주머니가 따뜻해졌으니

상대방 마음이야 알 것 없고 기분 째진다

신발 벗을 때까지 모르는게 인생이라더니

 

오늘의 운세에 동으로 가면 귀인을 만난다고 했던가

누가 귀인인지는 몰라도 금전운은 있는 듯

인생이란 이렇게 짜릿한 역전도 가능한 것이라며 

어깨에 힘 주면서 있는 폼 없는 폼 잡았건만

이 모든 것이 상대방의 단수높은 배려라니

 

오늘따라 보스턴백이 무겁다고 중얼거리는데

엘리베이터안의 "기대지 마세요" 표지판에 쓰여있는

누군가의 괴발개발 글자가 어깨를 짓누른다

"폼 잡지마"

 

 

 

 

'나의 시 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려움 단상  (0) 2014.02.20
그냥 하얀 눈  (0) 2014.02.06
그해 겨울이 있기에  (0) 2014.01.06
더미필름의 한마디  (0) 2013.12.27
누가 내몰았습니까  (0) 2013.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