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들어간 낙엽
제 남 박 형 순
뿌리도 아니고 줄기도 아니기에 오래오래 나뭇잎이고 싶었지만
마알간 모습의 푸른 잎을 시간은 허락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뽐내던 날은 잠시이고 해가 서산으로 기우는 날
추억보다는 쓸쓸함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말았으니
세상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는 것부터 쉽지만은 않았으나
꺾어지거나 추위에 떨고있는 앙상한 가지가 위안을 주어
비슷한 처지가 되어버린 군상들과 무한자유를 만끽하던 중
바람을 희롱하여 경험하지 못한 분위기와 어울리기 무섭게
밟히고 찢기며 본래 모습마저 상실해가고 있었으니
어느 곳에서도 반기는 이 없어 눈치보며 자세를 낮추었을 망정
낙오자가 아니라는 자부심으로 비굴하진 않았는 데
어느 덧 빗질에서 도망치고 청소차량 피하는 도망자신세 되어
이기지 못할 계절을 탓하는 상처투성이의 낙엽으로 불린다
하늘에서 송이송이 쏟아져 쌓이기 전까지는 정말 낙엽이었고
불꽃놀이에 가지 못한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정착지를 찾았는데
겨우내 녹을 수 없는 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서러운 운명이지만
하이얀 이불속에 누워 한 세월 보내는 것도 평화라고 여겨본다
어쩌면 이것이 성실하게 살아 온 과거의 보답이라 여기며
성숙한 마음으로 염불 외우고 묵주기도 열심히 올리다 보면
새 봄이 오는 날 알맞게 썩은 거름으로 희망을 곱게 심어
새순이란 이름으로 뽀오얀 얼굴 내밀어 세상구경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