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악역은 괴롭다

헤스톤 2012. 11. 22. 20:58

 

 

 

사람이 그런 것 같다. 좋은 일만 하면서 살기도 바쁜 데 간혹 악역도 해야한다. 어쩜 악역을 잘 해야 삶이 더 편하게 되는 것인 지도 모른다. 그 보다도 악역을 해야 살 수 있는 것인 지도 모른다. 간혹 드라마를 보면 악역이 제 역할을 잘 해야 드라마가 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살면서 얼마나 악역을 해야 하는 것일까? 

 

구매업무를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협력업체와의 관계에서 비슷한 품질이라면 가격을 깎고 또 깎아야 내 일을 잘 하는 것이 된다. 상대가 아무리 힘들다고 하소연 하더라도 내가 소속한 회사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근거없이 후려치기만 하면 상대업체가 주저 앉거나 거래가 끊어질 수 있다. 따라서 최소한의 이익은 보장해 주어야 한다. 어느 기업이든 판매가가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은 접는 것이 원칙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창출에 있기 때문이다. 공급업체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사에게 최대한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자주 가격갖고 실랑이를 할 수 밖에 없다. 

 

최근 주변의 경제상황이나 업계상황이 악화되면서 모두들 죽느냐 사느냐다. 잘 되느냐 좀 못되느냐의 문제라면 이렇게까지 악역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오늘도 어느업체의 원가분석을 하면서 심란하다. 업체는 죽는 소리를 할 것이다. 그래도 내년도 단가협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협력업체들도 원가절감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자동화로 인원감축을 한다거나 단순 노무직에는 값싼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하는 등 살기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그저께는 많이 심란하였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지만 나쁜 소식을 전할 때는 곤혹스럽다. 요즘은 날씨마저 전형적인 11월의 을씨년스런 날들이다. 차가운 늦가을 비가 내린 뒤 맑고 파란 가을하늘이지만 따뜻한 기운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여기저기 젖은 낙엽들이 흩어져 있다. 어느 것은 반 쯤 얼음속에 있고 반은 너덜거린다.

 

세계적인 경제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경영상황이 악화되었다. 여러가지 경영개선 방안중 하나로 구조조정을 하게 되었고 대상으로 선정된 부하직원에게 통보를 해야했다. 자질이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작금의 상황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도 많이 줄었다.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마음이 아프고 우울해진다. 악역은 괴로운 것이다.

 

나쁜 소식을 전하는 내가 이리 심란한 데 통보를 받은 직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별 생각이 다 들 것이다. 내가 누구한테 밉 보였나? 업무처리가 맘에 안 들었나? 요즘 잠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어젯밤 꿈을 잘 못 꾸었나? 억울할 수도 있다. 하소연을 하고도 싶을 것이다. 내가 왜 대상이냐고 화풀이를 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어차피 결정된 사항이라면 그냥 좋은 뒷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밖에 없다. 떠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며 멋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여운이라도 오래 남을 수 있을 것이다.

 

 

 

從善不如惡(종선불여악)이란 말이 있다. 그저 착하기만 한 것은 악함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천사같은 역할만 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 도움주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때로는 도움도 받고 사는 것이 인생인 모양이다. 마찬가지로 천사의 역할도 하고 때로는 악역도 해야 하는 것이 삶인 것 같다. 비굴을 맛보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무슨 역할을 담당하더라도 좀 더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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