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을이 가고 있다

헤스톤 2012. 11. 6. 21:11

 

가을이 가고 있다. 지난 여름만 해도 젊음의 계절이 계속될 줄 알았더니 몇 번의 가을비와 찬 바람으로 고운 모습의 단풍들이 여기저기 떨어졌다. 머지않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낼 것이다. 왠지 이 계절이 나를 닮은 것 같아 쓸쓸하다. 나뭇잎들이 절반은 땅에 깔려 있다. 내 마음도 반은 땅에 떨어진 것 같다.

 

지난 토요일 구매부문 직원들과 수락산에 다녀왔다. 작년 3월 이 회사에 들어와서 회식은 여러번 가졌지만 등산은 처음이다. 산에서 만나는 직원들의 모습은 사무실과 비교할 때 사뭇 다르다. 예상외로 산을 잘 타는 직원도 있고 생기가 돋는 직원도 있으며 타인을 잘 배려하는 직원도 있다.

 

 

도시와 인접한 대부분의 산들이 그렇듯이 약간의 땀이 배일 정도로 올라가면 운동기구들이 있다. 대략 산의 약 1/5높이에서 1/3높이 사이로 체육시설이 있는 것 같다. 수락산도 조금 오르면 위의 사진처럼 체육시설이 있다. 우리 직원중 지팡이를 짚은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직원들 대부분이 오래간만에 등산을 하게된 탓인 지 속도가 나질 않는다. 선두는 후미가 올 때까지 가다 쉬고 가다 쉬고를 반복하다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많은 등산객들로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고 혹시 낙오자가 발생할 지도 몰라 깔딱고개까지만 가게 되었다. 깔딱고개를 오를 때는 이름 그대로 깔딱거리며 올랐다. 아래 사진에서 정상까지는 0.7Km라고 쓰여 있는 데 수락산역 1번출구에서 이 곳까지 약 2시간이 걸렸다.

 

 

 

하산길은 쉬웠다. 모든 것이 그런 것 같다. 학생이 학교성적을 올리는 것은 어려워도 내려오는 것은 쉽다. 회사의 매출실적을 올리는 것은 힘들어도 떨어뜨리는 것은 쉽다. 사랑을 쌓아 올리는 것은 어려워도 무너뜨리는 것은 금방이다.

 

 

중학교 1학년때 작은아버지가 붓글씨로 써준 글이 생각난다.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그때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소년이 쉽게 늙는 다는 말부터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때만 해도 나는 계속 소년으로 있을 줄 알았고 이렇게 쉽게 시간이 갈 줄 몰랐다.

 

宋(송)나라 朱子(주자)의 勸學文(권학문)에 나오는 시의 첫구절이다.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일촌광음불가경)

未覺池塘春草夢(미각지당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계전오엽이추성)

 

소년은 쉽게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순간의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연못가의 봄풀이 채 꿈도 깨기전에

계단앞 오동나뭇잎이 가을을 알린다

 

학문은 커녕 이렇다 하게 이룬 것 없이 나는 어느덧 가을이 되었다. 그리고 가을이 가고 있다. 발밑에 떨어진 낙엽속에 내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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