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용하고 있는 고지혈증 약으로 아스피린성분이 있음)
약 2주 전부터 코피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간해서는 코피가 나지 않았다. 어쩌다 큰 충격이나 누적된 피로 등으로 코피가 나더라도 살짝 비치는 정도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약간 흐르다가도 금방 멈추곤 했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살면서 코피를 흘린 경우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무슨 이유인지 자꾸만 코피를 쏟는다. 게다가 흘리는 양도 상당하다. 고지혈증 약으로 먹는 아스피린과 같은 약이 코피를 더 흘리게 했을 것으로 본다. 여하튼 솔직히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지병인 고혈압이 그 원인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더 큰 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우울할 수밖에 없었다.
시작은 약 2주 전,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세면을 하는데 코피가 나는 것이었다. 멈췄다가 나고, 멈췄다가 또 나는 것을 반복한다. 즉, 지속적이라기보다는 간헐적으로 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혈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 때는 피를 많이 쏟지만, 휴지로 코를 막고 있으면 오래지 않아 지혈은 된다.
사실 처음엔 코피가 나도 금방 멎을 것이라는 생각에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고 여기고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일째 되는 날도 서예원의 사람들과 점심 식사를 하는데, 또 주르륵 흐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틀 이상을 몇 번 코피가 나니 솔직히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단 코를 막고 가까운 이비인후과로 갔다. 이리저리 조사를 해보더니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코 중앙의 비중격이 약간 휘어져 있어 한쪽의 코로 드나드는 것이 집중되어 코피가 자주 나는 이유일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며 지혈제만 처방해 주는 것이었다. 그 후 다행스럽게 코피 없이 약 이틀이 지나갔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잠을 푹 자지 못한다. 2~ 4시간 정도 자면 꼭 눈이 떠진다. 그리고는 금방 잠이 오지 않아 책상머리에 앉아 2~3 시간 있다가 다시 잠이 든다. 또 3~4시간 정도 다시 잔다. 이렇게 생활한 지 꽤 된 것 같다. 즉, 밤에 자다가 1~2번 정도 깨어 오줌을 누는 버릇으로 생활한 지가 적어도 3년은 된 것 같다.
코피를 흘리지 않고 이틀이 지나간 이후도 그냥 피곤하다는 느낌이었다. 밤에 자다가 역시 1시쯤 깨어서 2시간 정도 책상머리에 앉아 영화 리뷰 동영상 등을 보다가 다시 자기 전에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는데, 코피가 또 왈칵 쏟아진다. 한참만에 지혈이 되었다, 지혈이라기보다 그냥 화장지로 코를 틀어막고 있으니 10분 후쯤 코피가 멈추는 것이었다. 처방해 준 지혈제를 먹었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무슨 큰 병은 아닌지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아침이 되어 화장실에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데, 샤워 도중 또 코피가 흐르는 것이었다. 불안지수가 크게 올라갔다.

이 모습을 본 마누라도 걱정이 되었는지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자고 한다. 집에서 가까운 한일병원으로 갈까 하다가 서울대학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차를 운전하기 겁이 났는지 콜택시를 불렀다. 출근시간이 살짝 지났음에도 도로는 왜 이렇게 막혀있는지 가는 시간이 여삼추다. 마누라는 119를 부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서울대학 병원 응급실로 갔다. 접수 후 약 7분 정도 기다리니 이름을 부른다. 코피는 멎어 있었다. 응급실 문에 있는 남자 간호사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 간호사는 코피가 멈추지 않고 지금도 계속 나고 있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곳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절차를 밟아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받아야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혈 방법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리고 휴지로 이렇게 코를 막지 말고, 거즈로 막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 가지고 있는 거즈 한통을 내민다. 사실 서울대학 병원에 이비인후과 예약을 하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른다. 언제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기약을 할 수가 없다. 마누라는 그냥 동네의 이비인후과로 가면 되냐고 물으니 그렇게 하시라고 한다.
집 근처의 이비인후과로 급히 갔다. 겨울철 건조 등으로 코 점막이 손상되고 작은 혈관이 터져서 그렇다고 하며 나름대로의 조치를 해준다. 그리고 지혈제를 처방받았다. 그로부터 또 이틀은 코피 없이 지냈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또 터져서 피가 줄줄 흐르는 것이었다. 다시 이비인후과로 갔다. 의사는 안심시키려는 듯 그래도 좀 가라앉았다고 하면서 조치를 한 다음 4일 분의 지혈제를 처방해 주었다. 큰 병원에 가서 전기 치료 혹은 다른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냐고 물으니, 그럴 필요 없다고 하면서 큰 병원에 가도 이곳에서의 치료와 별 다른 것이 없다고 한다. 또 코피 없이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코피가 났는데, 이번엔 약간 흐르는 정도로 그쳤다. 그냥 집안의 건조함만 신경 쓰고 코를 풀지 않기만 해도 괜찮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별문제 없이 지내고 있다.
지금은 코피를 흘리지 않고 있지만, 아직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마누라는 약국에서 약사가 추천해 주었다고 하면서 '셀메드'라는 것을 사 가지고 왔다. 어떤 치료약처럼 이것을 바르면 그냥 심리적으로 조금 안심이 된다.
이번 사건으로 난 습관을 고치게 될 것 같다. 평소에 코를 세게 푸는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이번 기회로 나는 코를 청결하게 한다고 자주 코를 풀었던 것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코털을 깎을 때도 조심하여 다듬을 것이다. 무엇보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붓을 잡고 글씨를 쓰거나 그림 그리는 것를 자제하려고 한다. 늦은 밤에는 억지로라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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