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25

헤스톤 2024. 10. 6. 17:40

 

 

지난 7월 24회까지 쓰다가 중단한 소설을 이어서 씁니다.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독자들의 마음을 이끄는 창작은 쉽지 않기에 자꾸만 중단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팩트가 아닌 픽션이기에 창작의 고통이 배가될 수밖에 없고, 여기에 다른 일들이 겹치면서 게으름과 가까워진 탓입니다. 아무래도 소설보다 쉽게 쓸 수 있는 잡문을 우선시하게 되면서 소설은 자꾸만 뒤로 미뤄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픽션이라곤 하지만, 어느 정도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전개에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또한 처음부터 시간 설정을 너무 앞으로 잡은 탓인지 과거를 회상하고, 또다시 돌아가 회상하는 식으로 하다 보니, 내용을 전개하면서 시간의 순서가 자주 왔다 갔다 하는 듯하여 독자들이 혼란을 겪을까 염려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간 느슨한 감이 있는 듯하여 과거 회상의 사건들은 빠른 속도로 달려볼까 합니다.  

 

 

25. 파워 이동

 

세 개의 솥발로 유지되던 세 파 중에서 손천식 전무파가 결국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선 손 전무가 고문으로 물러나게 되면서 그 세력은 크게 약화되고 말았다. 세 파 중에서 가장 인원수도 많고 회사에 대한 공신들도 많던 손 전무파는 신대홍 사장파와 천태운 상무파의 연합작전에 회사의 아웃사이더로 밀려났다. 물론 여기엔 일인자인 허방진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탓이 컸다. 자신이 새로 영입해 온 신 사장에게 허 회장이 힘을 실어주게 됨에 따라 결국 손 전무는 뒷방으로 물러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회사 창업 후 2년이 지난 시점부터 약 20년 이상을 울고 웃으며 가깝게 지내온 손 전무를 허 회장이 밀어낸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약 10년 이상 회사가 급격하게 성장하는데,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손 전무를 내친 것이다. 당시 허 회장의 논리는 이런 것이었다. 회사가 소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아니고 거의 대기업에 육박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만큼, 구멍가게 수준에 맞았던 과거의 사고방식으로는 더 이상 회사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성장한 회사 규모는 손 전무가 가지고 있는 그릇과는 너무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H대학 출신이면서 국내 대기업의 영업 상무를 하던 신대홍을 사장으로 영입하였고, 그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더 크게 성장하길 기대하였던 것이다. 신대홍은 자신이 과거 근무했던 기업에서 학벌이 좋은 인재들을 스카우트하여 데려오면서 자기 세력을 확대하였고, 손 전무파를 몰락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만약 손 전무파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회사가 급격하게 내리막길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거꾸로 손 전무파가 권력을 잡았다면 회사는 더 크게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술과 성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밋빛 기획이나 서류로만 무엇을 하려는 신 사장파나 임기응변과 권모술수가 바탕인 천 상무파를 손 전무파가 견디어 냈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이는 가정이다. 다만 회사 입장에서 아쉬움이 남는 다툼의 결과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외부 전문기관의 컨설팅을 걸친 조직문화 개선 보고서에 의해 손 전무를 고문으로 물러나게 한 것이지만, 명분을 만들기 위한 조작에 불과했다. 손 전무파를 몰아내기 위해 고액의 컨설팅료를 지불한 것으로 비효율의 표본이었다. 여하튼 이로 인해 일단 힘을 받은 신대홍 사장은 대거 자기 사람들을 영입하여 주요 자리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신 사장이 회사의 큰 기둥이 되었다. 그리고 천 상무가 다른 기둥이 되어 굴러가는 형국이 약 1년 정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 체제 또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신 대홍 사장 체제에서 회사의 실적은 후퇴를 거듭했다. 이를 빌미로 거의 매일 회장 옆에서 비위를 맞추는 천 상무가 작전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수시로 곁에서 흠이 아닌 것도 흠으로 포장했고, 사소한 흠집은 크게 부풀렸다. 신대홍 사장이 영입해 온 인재들의 기여도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영업, 생산, 품질뿐만 아니고 총무, 지금, 인사 등에 있어서 삐걱거리는 소리만 요란해졌을 뿐이었다. 역시 중견기업이라곤 하지만, 아직 중소규모의 기업을 대기업 수준의 문화에 맞춘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비용이 배로 늘어나면서 이익 규모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결국 허 회장도 등을 돌리면서 신대홍 사장은 밀려나게 되었다.

허 회장이 스카우트하여 손 전무를 물러나게 하면서까지 많은 권리를 주었지만, 기존 직원들과의 불화와 더불어 저조한 실적이 이어지면서 결국 근무 2년이 조금 지날 무렵에는 힘이 빠지게 되었다. 특히 이미 밝힌 것처럼 신 사장의 여자 문제까지 겹치면서 결국에는 쫓겨나고 말았다. 그렇게 됨으로써 신대홍 사장보다 약 1년 늦게 입사한 오제원 이사가 근무한 지 약 1.5년이 지날 무렵에는 천 상무가 모든 권력을 움켜쥐게 되었다.

 

천태운 상무는 그 후 전무로 승진했다가 부회장 겸 사장으로 승진을 하게 되었고, 허 회장의 위임에 따라 실질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는 한동안 허방진 회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직원들 인사도 좌지우지하면서 나름 회사를 성장시키려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직원들에게 보여줬다.

사장이라는 자리가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카리스마도 있고 추진력도 있었기 때문에 따르는 직원도 많았다. 그러나 그의 성격상 과거 신대홍 사장이나 손천식 전무와 가까웠던 사람들까지 포용하지는 못했다. 그는 그럴 생각도 없었고, 인재를 중시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구멍가게나 영세규모가 아닌 중견기업 경영자로써의 능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CFO까지 겸하면서 그가 맡은 업무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이었다. 그가 많은 권력을 쥐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열성 당원처럼 무조건 그와 한편이 되려는 직원들이 회사의 주요 자리를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회사의 2인자 자리를 놓고 싸운 다툼이 일단락됨으로써 솥발처럼 유지되던 3인의 관계를 돌아본다. 그들이 가진 생각이나 다짐들이 결과에 미친 것은 없지만, 기류를 파악해 볼 수는 있기 때문이다. 우선 손천식과 천태운은 오래전부터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손천식의 입장에서 천태운이라는 인물은 인간성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처럼 기업에서도 '상도의'라는 것이 있는데, 천태운은 그것과 너무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그를 나무라거나 무시하는 언행을 자주 했었고, 천태운은 이를 마음의 상처로 깊게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입사 시부터 전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손천식과 달리 천태운이 대리나 과장이었던 시절 손천식으로부터 꾸중도 많이 받았던 것이 상처로 깊게 자리 잡았던 모양이다. 그런 이유 등으로 신대홍과 손잡고 손천식을 몰아냈던 것이다. 

다음 손천식 입장에서 나이로보나 근무경력, 회사에 대한 기여도 등을 감안 시, 허방진이 사장 자리를 물려준다면 자신에게 물려줄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젊은 신대홍을 사장으로 영입한 것이 손천식은 못마땅했다. 일단 직위가 사장과 전무는 이사와 부장의 차이보다 배 이상 크다. 그로 인해 간혹 부딪칠 때마다 손천식은 신대홍한테 면박을 당하곤 했다.

그래서 손천식이 오제원 이사와 차담을 나눌 때 천태운에 대하여도 안 좋게 말을 하지만, 신대홍에 대하여는 입에 거품을 문다. 신대홍의 여자문제에 대하여 들려준 이야기도 대부분 사실이겠지만, 약간의 과장이나 미화도 있었다고 본다. 

 

그나저나 오제원 이사는 권력다툼이 일단락된 이후 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의 앞날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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