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재능의 차이

헤스톤 2020. 8. 18. 15:00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물을 내리는데,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 수조 덮개를 열고 안을 살피니, '레버 구슬 마개 줄'이 떨어져 있다. 일단 손으로 마개를 올려 물을 내리긴 하였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줄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모르겠다. 괜히 신경질이 나고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간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변기에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런 고장이 난 것이다. 괜히 집사람을 원망하게 된다. 분명 집사람이 무엇을 잘 못 건드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당신 이거 고장 냈지"라고 하면서 감정 섞인 말을 내뱉으면 티격태격하게 될 것 같아 참았다. 대개 모든 싸움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 혼자 고쳐보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아무래도 업체에 연락해서 수리공이 올 때까지는 불편을 감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거실로 나와 TV에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조금 있으니 집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온다.

"변기에 물 내려가는 것, 고장 나지 않았어?"

"줄이 끊어져 있던데."

"아무래도 수리할 때까지는 좀 불편하겠군."

"수리는 무슨.. 끊어진 부분 떼어내고 홈에 끼워서 연결했어."

"어~ 그럼 이제 되는 거야?"

화장실에 가보니 마개 줄이 고쳐져 있는 있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리 보아도 모르겠던데, 집사람이 이렇게 간단하게 고칠 줄 몰랐다. 갑자기 아내가 다시 보인다.  

 

집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는 재주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런 재주가 있는 줄 몰랐다.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집사람의 흉을 한 가지 본다면, 집사람은 간혹 밥을 밥 같지 않게 하는 희한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같은 밥솥에 밥을 해도 집사람이 하면 이상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어쩌다 밥이 잘되면 '밥 잘됐다'라고 호들갑을 떤다. 우습기 그지없다. 내가 밥을 하면 그런 일이 없는데 말이다. 약 35년을 살면서 지금도 '밥 잘됐지'라며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듯한 그 말이 나를 우습게 한다. 

 

 

그런데 오늘의 일은 아내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약 한 달 전 베란다에 전기시설과 관련하여 미관상 붙여놓은 장식이 바닥에 떨어져 있기에 당시 나는 임시방편으로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하여 붙여 놓았었다. 그런데 그것이 지난달 테이프의 힘이 다한 것인지 다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혼자 투덜거리며 또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하려고 했더니 마침 집사람이 이 모습을 보고 답답하다는 듯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당신은 왜 거기에 테이프를 붙여?"

"지난달 이것이 떨어져서 테이프로 붙였는데, 또 떨어졌네."

"그렇다고 거기에 테이프를 붙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당신은 어쩜 그렇게 시설의 원리를 몰라."

집사람은 드라이버를 가져와서 안에 있는 것을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덮개 장식을 완전하게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약 한 달 전에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하여 덮개를 붙여놓은데 대하여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또다시 시설과 관련한 일인데, 지난달 수돗물에서 유충이 나온다는 뉴스를 보며 집사람은 무엇을 교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귀담아듣지 않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 후 언젠가 퇴근해서 보니 욕조와 싱크대의 수도꼭지가 다 바뀌어 있길래 집사람이 업체를 불러서 교체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정수와 관련하여 배관자재를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자신이 모두 작업을 했다고 한다. 아마 나였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어떻게 교체하는 것인지 모른다.

 

 

간혹 나는 친구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너는 못하는 것이 뭐야?"

"시도 쓰지, 수필도 쓰지, 서예도 잘하지, 그림도 잘 그리지, 도대체 너는 못하는 것이 뭐야?"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실생활에 쓸모 있는 것을 잘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서예나 그림도 그냥 조금씩 흉내를 내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지, 주옥같은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쪽 방면에서 구슬 같은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못하는 것들만 수두룩하게 떠오른다.

우선 집사람과 비교해볼 때 동네 골프연습장에서 집사람은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고, 나는 골프를 잘 못 치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약 2개월마다 열리는 시합에서 최근 약 3년 동안 나는 한 번도 결승에 올라가 본 적이 없는 반면, 집사람은 한 번도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적이 없다. 그렇다 보니 동네 골프장에서 나는 아내를 따라다니는 시다바리(?)에 불과하다.

그런 와중에 최근 시설과 관련한 일을 겪고 보니 집사람이 맹탕이 아니라 내가 맹탕이라는 생각으로 기분이 저하된다.

 

 

그래도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왠지 헛헛하다. 내가 잘하는 것이 8이라면, 집사람은 2에 불과하다.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다만, 내가 조금 우위에 있다고 하는 것들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거나 별 쓸모가 없는 것들이고, 집사람이 잘하는 2는 다른 이들한테 인정받거나 실생활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이다. 

 

여하튼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의 차이가 있고,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시설과 관련된 것은 나보다 집사람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와 더불어 세상 어떤 사람이라도 비교우위에 있는 1~2개쯤의 재능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와 나  (0) 2020.09.17
시서화(詩書畵)  (0) 2020.08.28
출근 인생길  (0) 2020.07.29
불안한 연상 릴레이  (0) 2020.06.24
둘레길을 걸으며  (0) 202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