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출근 인생길

헤스톤 2020. 7. 29. 17:35

 

 

요즘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서울의 남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북동쪽 끝에서 그곳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아침 출근시간에 자동차로 가면 약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상습적으로 막히는 구간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지하철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지하철로 가더라도 최소 1시간 40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장, 단점을 비교해보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 19 시기에 장시간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하라거나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속 거리두기를 권장하는 사회에 부응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여하튼 지금까지의 직장생활 중 지금보다 더 먼 거리로 출근을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많은 시간을 도로에서 보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용하고 있는 출근 도로 중 이름이 잘 알려진 도로만 꼽아 보아도 동부간선도로, 북부간선도로, 내부순환로, 서부간선도로를 다 이용한다. 서울에 있는 주요 도로에서 몇 곳을 빼고는 다 이용하는 셈이다. 거리상으로도 편도로 약 38Km가 되니 짧은 거리가 아니다. 직장생활 약 38년이 된 지금 약 38Km의 거리를 출퇴근하고 있다. 정말 길에서 보내는 시간을 생각하면 비경제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매일 출근하지 않고 주 2~3회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이 나이에 "이렇게라도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라고 하면서 감사한 마음이다. 따라서 되도록이면 좀 더 여유를 갖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때는 지금 다니는 이 길이 내가 그동안 걸어온 인생길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우선 집을 나서면 약 4Km를 가다가 동부간선도로로 진입하는데,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유아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유치원이나 학교 앞에서는 녹색어머니회를 비롯하여 교통안전봉사를 하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도로에 차들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많은 신호등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동부간선도로도 그렇지만 북부간선도로로 진입할 때는 좀 더 속도가 줄어든다. 새로운 도로로 진입하는 것은 마치 학창 시절에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처럼 마디가 있다는 기분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한다거나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입학시험이라는 것을 거쳐야만 했었다. 그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좀 더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할 때는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거쳤는데, 당시 잠을 줄여가며 공부에 매달렸던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좀 더 긴장을 하면서 공부에 집중한 시기이었다.

 

 

동부간선도로에 진입하면서부터 북부간선도로를 거쳐 내부순환로를 빠져나올 때까지는 신호등이 없다. 대신 속도제한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출근시간대에는 차량이 많아 이런 속도제한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 어른이 되기 전 학창 시절에도 지켜야 할 것은 많았지만, 대부분 저절로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과 같다. 이곳에서도 때에 따라 끼어들기도 하고 양보도 해야 하지만, 대체로 그냥 길만 따라 쭉 가면 된다. 북부간선도로에서는 큰 건물들을 주로 많이 보지만, 동부간선도로에서는 중랑천의 물이나 새들도 구경한다. 5월에는 장미꽃들이 환하게 웃어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학창 시절 중에서도 좀 더 어렸을 때가 더 많이 웃었던 것 같다. 

 

동부간선도로와 북부간선도로를 각각 약 3Km씩 이용한 후, 자연스럽게 내부순환로로 이어지는데, 내부순환로가 출근 거리의 약 2/5 이상을 차지한다. 총연장이 약 3.5Km인 홍지문터널과 정릉터널도 통과한다. 이 도로는 명예퇴직할 때까지 다녔던 은행원 생활이라고 억지로 대입을 해본다. 출근길의 주도로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운데 부분을 차지하며 제일 많은 시간을 차지했다. 당연히 오랜 시간에 비례하여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주로 앞만 보고 달려야 했기 때문에 주변 풍경을 볼 여유는 없었다. 구간 속도제한이라는 것도 있지만, 별 의미가 없다. 앞으로 달리고 싶어도 많은 차량들로 제한속도를 넘어설 수가 없다. 이리저리 끼어들기를 하며 잘 빠져나가는 차들도 있지만, 나중에 보면 별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사실 내 입행 동기들도 퇴직 후 강산이 한번 변한 지금에서 보면 다 비슷하다. 사람 사는 것도 사실 거기가 거기라는 생각이다. 이러저러한 희로애락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그렇게 사회생활을 해온 것 같다.   

 

많은 시간을 보낸 내부순환로에서 성산대교 북단 방면으로 진출하여 성산대교를 넘어 서부간선도로로 진입한다. 서부간선도로는 내부순환로처럼 고가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길 양옆에 있는 이러저러한 꽃들을 구경한다. 봄에는 개나리나 벚꽃도 보고, 여름철에는 무궁화 꽃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무궁화 꽃을 보며 인생도 아마 저 꽃이 피어있는 정도의 시간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인생 별거 아니다. 당시에는 상습 정체구간인 이 도로처럼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인생에서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너무 빨리 지나갔을 뿐이다. 

 

어느덧 이제 나도 중년이라고 불리는 것이 거슬리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노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는 물론 아니다. 왜냐하면 최근 기준으로는 중년이라는 기간이 매우 길기 때문이다. 물론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저녁노을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밀려난 것도 아니다.

그냥 하는 말로 국영수가 아니라 예체능이 더 필요한 나이가 되었을 뿐이다.

사실 학교 다닐 때는 국영수이지만, 나이 들어서는 예체능이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로 인생 스킬은 예체능이다. 따라서 요즘 나는 붓을 잡고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누가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는 상관없다. 그냥 나 자신이 즐기면 되는 것이다.

 

서부간선도로를 타고난 후에는 안양천 옆의 천변도로를 따라가다가 회사가 있는 방향으로 전환하여 도착한다.

이용하는 천변도로는 길지 않다. 출근하면서 때로는 긴장하고, 때로는 지루함을 느낀 것도 같은데, 막상 도착지에 이르고 보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도착한 기분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어쩌면 세상에 기억될만한 것 하나 남겨놓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갈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좋은 사람들과 많이 소통하며 이 순간을 좀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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