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썩어도 준치다

헤스톤 2020. 5. 20. 08:56

 

 

썩어도 준치다

 

벌써 몇 번의 시행착오를 하였는지 모른다. 이 방향으로 가면 좀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라고 내비

게이션도 무시하고 달려 보았지만,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며칠 전에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외곽도로를 타면 좀 더 빨리 갈 것이라고 여긴 내가 잘못이다.

동부간선도로가 워낙 막히니 생각해낸 것인데, 거리도 약 9Km나 멀었고, 시간은 거의 1시간 가까이 더

걸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누구의 말을 듣거나 예상을 해서 맞은 적이 별로 없음에도 또 다른 길을 물색

하였다.

그래서 구리-포천 고속도로의 일부를 타기로 작정했다. 좀 돌아가도 이 길이 빠를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출근 시 이곳은 고속도로가 아니었다. 완전히 저속도로이었고, 문제는 고속도로가

끝나고 나서도 완전 거북이가 따로 없다. 첫날 갔던 간선도로보다 약 30분 정도 더 걸렸다.

다시 다른 길을 모색했다. 또 다른 누구의 의견을 참조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동부

간선도로를 타고 가되, 한강을 건너는 다리를 바꿔 보았다. 역시 아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방향보다

못하다.  

이상은 지난해 봄 불암산 근처의 집에서 선정릉역 근처의 회사로 자동차 출근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의 

내용들이다. 확실히 그렇다. 썩어도 준치다. 그리고 여자 말이나 내비게이션의 말은 잘 듣는 것이 낫다는

것을 다시 알았다는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명절 때 고향에 갈 때도 마찬가지다. 고향에 갈 때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했는지 모른다. 고속도로가 막힌

다고 여기저기의 지방도로를 택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여러 번 있다. 시행착오를 몇 번 거친 후 언제나

고속도로를 택하였다. 지방에 갈 때 막혀도 고속도로가 제일 나았기 때문이다. 역시 썩어도 준치다.

 

지난 토요일 어머니 생신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대전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아무래도 평일이나 일요일

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일찍 집을 나섰다. 운전대는 아들이 잡았다. 역시 예상대로 차들은

거북이걸음으로 고속도로를 가면서 답답하였다. 그런 와중에 내비게이션은 지방도로로 빠질 것을 안내

하고 있다. 이 말을 아들이 들은 것부터 상황은 꼬이이기 시작했다. 처음 십 여 Km는 잘 달렸지만,

꽉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고속도로는 아무리 막혀도 슬슬 굴러가기라도 하는데, 접어든 길은

거의 움직임이 없다. 약속 시간보다 약 1시간이 늦었다. 그냥 고속도로로 갔다면 일찍 나섰기 때문에

아무리 천천히 갔어도 약속시간까지는 갈 수 있었을 텐데, 기다리고 있을 형제자매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느꼈다.

역시 썩어도 준치다.

 

나는 요즘 마누라가 마음에 안들 때 이 말을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를 아무리 힘들게 해도 마누라만 한 여자는 없을 것이다. 썩어도 준치다"라고 하며 수양을 쌓는다.

원래 준치는 가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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