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미역국

헤스톤 2020. 4. 17. 15:31



아내는 미역국을 자주 끓인다. 아마 다른 국에 비해 비교적 맛을 잘 낼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가 잘 먹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아내는 미역국을 끓였다. 그런데 오늘 나는 시험을 보러 간다. 아내는 미역국을 

끓였고, 나는 시험을 보러 간다. 사실 시험이라기 보다는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가는 날

이다.


내가 직장생활을 한지 어느덧 38년이 흘렀다. 그동안 내가 다닌 직장의 갯수도 이제 다섯 손가락으로 

모자란다. 첫 직장인 은행을 퇴직한 후 모 중견기업체에 들어가 약 6년을 근무한 이후부터는 짧은 

기간의 계약직으로 계속 근무하였기 때문이다. 즉, 재작년부터는 법정관리기업의 CRO(Chief of 

Restructuring Officer: 구조조정최고책임자)라는 것을 하고 있는데, 이 CRO의 근무기간은 길지 않다. 

길어야 8개월이다. 3개월을 근무한 기업도 있다. 따라서 그 기간이 끝나면 실업자가 되었다가, 법원

에서 연락이 오면 다시 면접을 보곤 한다.

오늘 나는 이런 면접을 보러가는 날이다. CRO로 선임되는 것은 통상 2명이 면접을 보고 그 중 한명이 

되기 때문에 선임될 확률은 50%이다. 나는 그동안 운이 좋은 탓인지 면접을 볼 때마다 선임되었다. 

솔직히 면접을 볼 때 나 나름대로 요령이 있다. 무엇보다 판사의 예상 질문이나 돌발 질문에 대한 답변

내용을 그려보고 몇 번 연습을 한다. 지금까지 예상 질문을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다. 또, 떨어진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편한 마음으로 임한다. 어느 곳에는 괜히 가서 월급도 제대로 못받고 

고생만 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면접에서 떨어진 경우가 곧바로 더 좋은 기업에 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즉, 여기서도 기회비용의 원칙이 적용된다. 사실 살다보면 이런 전화위복은 

수시로 일어난다.  


여하튼 오늘 나는 다른 날에 비해 아침밥 먹는 것을 서둘렀더니 아내는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더니 아내는 갑자기 국 그릇을 치운다. 이런 날 미역국을 먹으면 어떡하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으니 달라고 해도 주지 않는다. 솔직히 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데 말이다. 

 



아내로부터 국 그릇을 빼았기고 보니,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미역국과 관련한 어렸을 때의 일이 생각

난다. 같은 동네에 살던 이웃집의 이야기이다.  

60년대에 시골에서 자식들을 읍내의 중학교에 보내는 집은 많지 않았다. 특히 딸을 중학교에 진학

시키는 집은 그래도 좀 괜찮게 사는 집이었다. 즉, 자식이 공부를 잘해도 중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집이 

많았다. 당연히 문제는 돈 때문이었다. 자식을 진학시키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었다. 

당시 내 고향 초등학교에서 졸업생의 약 1/3정도만 중학교에 갔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들만 공부시킨 집이 많았다. 물론 중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다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입학시험에 떨어져서 보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내가 살던 시골은 면 소재지로 중학교는 

없었고, 당시 읍내에 남자 중학교는 2개, 여자 중학교는 1개가 있었다.

따라서 딸들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중학교에 보내지 않는 집들이 많았는데, 당시 내 기억에 여자라고 

안 보내준다고 울고불고하는 집들이 꽤 있었다. 즉, 대부분 중학교에 가고 싶어했다. 특히, 실력이 되는 

여학생이라면 더 진학을 간절히 원했다. 

나보다 2년 선배인 여학생이 살던 집으로 당시 집안 형편상 부모는 딸이 중학교에 가지 않기를 바라는 

집이 근처에  두 집이 있었다. 딸들에게 공부시켜봐야 소용없다고, 초등학교 졸업후에는 집안 일을 

거들거나 동생들 뒷바라지 하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많았는데, 그 집들도 그런 집들이었다.

당시 두 집에서는 딸들이 하도 졸라 어쩔 수 없이 입학원서는 쓰게 했지만, 은근히 입학시험에서 떨어

지길 원했던 것 같다. 두 집에서는 시험 날 함께 미역국을 끓여 주기로 엄마들끼리 약속한 모양이다. 

딸의 입장에서는 어떠했을까. 자식 공부를 시킬 형편이 안된다는 부모 마음을 이해했을까, 아니면 원망

했을까.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정말 자식한테 그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주 못난 엄마들이지만, 

당시 당장 입학금을 비롯하여 돈 들어가는 것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입장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

한다. 

입학시험 당일 한 학생은 국만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먹지 않고 가더란다. 그리고 또 다른 한 학생은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역국을 먹고 시험보러 갔다고 한다. 그러면 그녀들은 당시 약 4:1이 

넘는 경쟁을 뚫고 시험에 합격했을까, 아니면 떨어졌을까? 미역국을 먹은 학생이나 먹지 않은 학생

이나 모두 입학시험에서 합격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먹고 간 학생이 더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고 

한다. 그 뒤 그 집들에서 어떻게 교육을 시켰는지는 잘 모른다. 



그 후 나는 미역국에 대한 속설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미역국은 두뇌를 맑게 해주고, 초조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말을 믿는다. 따라서 오늘 아내가 미역국의 국그릇을 치우지 않았다면 나는 

맛있게 먹고 갔을 것이다. 솔직히 떨어져도 상관없는 면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또 면접에 통과했다. 만약 내가 미역국을 먹고 갔으면 면접에서 정말 미역국(?)을 먹었을까?

그나저나 경제가 좋아지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도 줄어들게 될 것이고, 자연히 CRO를 필요로

하는 기업도 줄어들텐데 걱정이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오히려 반대이다. 제발 이제는 나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 저녁엔 아침에 못 먹은 미역국이나 

먹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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