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 4

悲慾(비욕) - 5

5. 권력다툼(2) 그렇게 정신없이 오제원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새로운 용어들과 접하며 때로는 지루하게, 때로는 답답하게, 때로는 공부하며, 때로는 멍청하게 보냈다. 나이나 경력에 비해 낮은 직위로 입사했다는 것도 힘들게 했지만, 더 힘든 것은 시스템이나 조직자체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으로 방향 자체를 쉽게 그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은행에서는 주로 중소규모의 기업만 상대하였지만, 그 범주를 벗어난 덩치가 큰 기업에서 근무한다는 새로움과 근무 환경이 좋은 회사로 출근한다는 장점이 없었다면, 답답한 마음을 견디지 못해 일찍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우선 허방진 회장의 수차레에 걸친 요청으로 입사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둔다면 허 회장의 체면에 손상이 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깔려 있기에 좀 ..

장편소설 2023.04.30

悲慾(비욕) - 4

4. 권력다툼(1) 입사 첫날의 언짢은 기분을 가라앉히며 하루를 정신없이 보낸 다음 날이다. 무엇보다 회사현황과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첫날과 비슷하게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출근하였다. 어제 구이재 구매부장이 준 최근의 구매현황과 자재 재고 현황 및 현안문제들을 대학노트에 메모하다 보니 숫자의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사실 메모하는 이유는 자신의 글씨체가 눈에 더 잘 들어오면서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오랜 은행생활에서 몸에 밴 것이다.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거나 새로운 지점에 발령받으면 언제나 직접 노트에 주요 사항들을 기재하며 파악하곤 했던 습관을 살려 이 회사의 구매와 관련된 현황을 직접 작성하며 머리에 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선 연결된 자료들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숫자들이 너무 ..

장편소설 2023.04.14

갑자기 온 손님

이렇게 11년 만에 이 손님이 다시 찾아올 줄 몰랐다. 봄과 함께 찾아오는 꽃 향기도 아니면서, 11년 전 봄에 왔던 것처럼 느닷없이 이렇게 찾아올 줄 전혀 예상을 못했다. 물론 어느 정도 징조는 있었다. 일교차가 심한 날이 계속되면서 간혹 머리가 아프고, 이명현상이 심해졌으며, 시력 저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제일 불편한 눈 검사를 위해 안과를 먼저 가볼까, 아니면 이비인후과부터 가볼까를 고만하던 중이었다. 사실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의식이 혼미해지는 것을 최근 몇 차례 경험했다. 그럴 때마다 혹시 뇌졸중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면서 인터넷 정보로 누가 알려 준 STR을 해 보았다. 웃어보는 Smile, 말을 해보는 Talk, 두 팔을 올려보는 Raise를 해보니 안 되는 것은 ..

나의 이야기 2023.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