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베로에 대한 추억

헤스톤 2022. 12. 26. 23:00

 

 

"우리도 강아지 한 마리 키워볼까?"

집사람이 은근히 나의 의중을 떠본다. "NO"라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면서 동물과 관련된 TV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엔 한 번씩 툭툭 던진다. 언제부터인지 TV를 켜면 동물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무척 많다. "TV 동물농장", "개는 훌륭하다"를 비롯하여 반려동물 관련 프로그램이 많은 탓인지 동물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다.

불과 10여 년 전과 비교해 볼 때 엄청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제는 동물을 함께 지내며 돌봐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음은 물론이고, 동물을 마치 자식처럼 보살피는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마치 자기 아들이나 딸 혹은 동생으로 여기는 것을 보며 이렇게까지 세상이 변했다는 것에 거부감도 든다. 어느 경우는 부모보다 더 아끼면서 돌보는 것을 보며 마음이 껄끄러워지기도 한다. 부모로부터 일찍 버림받아 얻어먹는 것으로 남의 눈치보기 바쁜 애들보다는 차라리 개로 태어나는 것이 축복일 정도이다. 

 

물론 반려견이 주는 긍정적인 면은 엄청 많다. 우선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의 공통의견이 강아지로 인해 힐링이 많이 되고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TV 프로그램 등에서 가장이 저녁에 귀가할 때 배우자나 자식보다도 개가 제일 먼저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모습을 보면, 보는 사람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견을 키우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크게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누구는 강아지로 인해 혈압도 잡았고, 산책으로 체력도 좋아졌으며, 우울증도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학술지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의하면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들은 기르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행복(wellbeing)함을 느낀다고 한다. "British Psychological Society"의 연구에 의하면 애완견과 함께 지내는 사람들은 치료효과나 심리적으로 생활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정말 수 년 전과 비교해 볼 때 동물을 대하는 면에 있어서 너무 많은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와는 아예 비교할 수도 없다. 당시 시골에선 아무리 작은 강아지라도 개를 방에 들여놓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당이나 대문 근처에 매달아 놓거나 그냥 풀어놓고 길렀다. 그리고 대부분은 일명  "똥개"라고 하는 것들이고, 어느 정도 크면 잡아먹는 집도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다 보니 나와 가깝게 지내다가 하늘로 간 "베로"라는 개가 떠오른다. 

 

 

내 기억으로 우리 집은 이상하게 개를 잘 기르지 못했다. 누가 강아지를 많이 낳았다고 한 마리를 선물로 주면 오래 키우질 못했다. 몇 개월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시름시름 앓거나 쥐약을 먹곤 하였다. 한마디로 1년은커녕 반년을 넘기는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 아버지는 "우리 집과 개는 맞질 않는 모양"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비교적 오랜 시간 함께한 개가 있었다. 이름은 "베로"라고 아버지가 지어 주었는데, 왜 그렇게 지었는지는 모른다. 베로는 똥개가 아니고 진돗개와 잡종이었다. 그런 탓으로 시골에서 기르는 일반 개들에 비하여 암컷인 탓도 있어서 크기가 상당히 작았다. 순수 혈통의 진돗개는 아니지만, 동네 사람들이 알아줄 정도로 영리한 개였다. 당시 "앉아, 일어서"라는 말을 알아듣는 것도 아니었기에 지금 기준으로 보면 너무 시시하다고 하겠지만, 내가 대문안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알아채고 꼬리를 흔들었다. 이웃에 살고 있는 초등 동창은 "우리 집 앞을 지날 때 아무리 조용히 걸으며 지나가려 해도 귀신같이 알고 짖는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다른 집 개들보다 귀가 밝았다는 것이다.

 

솔직히 요즘 훈련받은 개들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겠지만, 당시 도둑이 오면 벌벌 떨다가 밤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을 보고 짖는 동네의 일반 똥개들과는 달랐다. 또 베로는 나쁜 인간이라고 생각되면 짖지도 않고 있다가 발목 뒤를 물어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엔 도둑도 들지 않았다. 정말 당시엔 도둑들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모른다. 그런 탓인지 시골에서는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베로는 다른 집 개들과 비교 시 많이 영리하였다. 자꾸만 영리하다는 것을 반복해서 쓰다 보니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누구에게 들은 유머가 생각난다. 아줌마 둘이서 자기 집 개가 똑똑하다고 자랑하는 대화인데, 한 아줌마가  "우리 집 개는 얼마나 똑똑한지 아침마다 제과점에 가서 빵을 사 와요."라고 하니까, 다른 아줌마가 한다는 말이 "알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먼저 말을 한 아줌마가 의아해하며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하니까. 다른 ​아줌마가 "우리 집 개가 빵을 팔거든요."라고 했다는 우스개 소리이다.

 

 

여하튼 내 판단으로 영리한 베로는 우리 집의 경계병 역할을 충실히 하며 나이를 먹었다. 특히 내가 뒷산으로 산책시 데리고 다녔기 때문에 나를 유독 잘 따랐다. 하지만 당시 나는 대전에서 학교를 다닐 때로 주로 방학의 경우에만 함께 지낼 수 있었고, 방학이 아닌 경우는 약 2개월마다 보는 정도이었다. 약 1~2개월 지나고 봐도 베로는 귀신같이 나를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다. 내 기억으로 아마 대학교 2학년때로 기억된다. 나는 어려운 가정형편상 여고생을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다 보니 집에 한참 동안 내려오지 못했다.

 

계절이 두 번 이상 바뀐 다음에 집에 왔던 것 같다. 시골집에 들어서니 대문은 살짝 열려 있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다. 베로가 짖기 시작한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베로"라고 크게 부르면서 다가가는데, 앙칼지게 짖는 것이았다. 계속 짖는다. 내 뒤꿈치를 물려고 달려든다. 야속한 기분도 들고  "똑똑하다는 네가 주인도 못 알아보느냐?"는 기분이 되어 달려드는 베로를 향해 발길질을 하였다. 그랬더니 깨갱거리며 마루 밑으로 들어간다. 나는 신발을 벗고 마루를 건너 안방으로 들어갔더니 베로는 마루 밑에서 나와 계속 짖는다. 방에 있으려니 시끄럽기도 하여 밖으로 나오니 베로는 다시 마루밑으로 기어들어가 짖어댄다. 내가 너무 당당하게 나오니 겁을 먹은 듯하였다. 나는 "베로~ 베로~"라고 말하며 이리 오라고 계속 손짓을 했다. 겁먹은 베로는 한참을 마루밑에서 컹컹거리더니 갑자기 기억이 돌아왔던 모양이다.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며 나에게 안기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었고, 베로는 배를 하늘로 향했다가 안겼다가 난리를 쳤다. 

 

의 기억력은 얼마나 될까? 아이큐는 얼마나 될까? 사람마다 차이가 있듯이 아마 개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그 뒤로 베로가 죽을 때까지 나를 못 알아본 경우는 없지만, 우리 집이 돈과 인연이 멀듯이 개와 인연이 깊지 못한 탓으로 베로도 그렇게 오래 살지는 못했다. 내 기억으로 5년을 넘기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런 기억 등으로 나는 집사람이 애완견 한 마리 키워보자는 물음에 "NO"라고 말하다가 요즘엔 아예 대꾸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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