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서예와 나
좋은 글씨를 쓰려면 많이 써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서예의 대가로 알려진 사람치고 엄청나게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서예와 관련 없는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왕희지나 추사, 한석봉 같은 인물들이 얼마나 글씨에 매진하였는지는 각종 기록에서 알 수 있다. 한 예로 추사 선생은 벼루 10개를 구멍냈고, 붓 천 자루를 몽당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엄청난 노력없이 좋은 글씨를 쓸 수는 없다고 본다.
다음으로 많이 읽어야 한다. 서예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 발전에 한계가 있다. 그 외 많이 보아야 한다. 다행인지 우리나라엔 서예와 관련하여 각종 전시회가 있다. 그런 곳에 가서 많이 보아야 한다. 서울에서는 인사동에 가면 거의 매일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많은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나는 종종 인사동 필방에 들려 화선지를 비롯한 서예 용품도 사고, 각종 작품을 구경하며 보내고 있다.
서예에 대한 사유와 독자성을 탐구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찾으려는 노력은 서예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통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인간 됨됨이를 비롯한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 중 아들 상우에게 보낸 글에 "모름지기 가슴속에 먼저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갖추는 것이 예법의 근본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문자향이란 말 그대로 글자에서 나오는 향기를 말하고, 서권기란 책에서 나오는 기운을 이른다. 문자향과 서권기는 분명 향기와 기운을 이르지만 냄새로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최소 만 권의 독서량이 있어야 문자향이 피어나고 서권기가 느껴진다고 하는데, 무조건 많이 읽는다고 문자향과 서권기가 배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에게서 문자향과 서권기가 배어나려면 먼저 그 사람됨이 바탕에서 우러나야 할 것이다.
예술은 가슴속에 감동의 파장이 일 때 온다고 한다. 시를 지을 때도 종종 그렇지만, 가만히 사물을 관찰하여 그 사물로부터 어떤 감흥이 일어날 때, 그때가 붓을 들 때라는 말이다. 솔직히 나는 아직 필력도 부족하고 아직 멀었다는 것을 잘 안다. 내가 쓴 작품을 보며 만족스러워한 적이 아직 없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정진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붓을 들곤 한다. 먹을 갈고(최근엔 먹 가는 기계로 갈지만) 또 갈고, 화선지 위에 쓰고 또 쓰면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싫증이 나기도 하지만, 서예의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을 생각하며 거의 매일 붓을 잡는다.
촉촉하게 내리는 꽃비에 옷이 젖고
촉촉하게 내리는 그리움에 마음이 젖으니
내리는 비 사이로 글씨들이 어른거린다
채워야 할 여백이 붓질을 기다리고 있다
이상 5회에 걸쳐 쓴 "서예 횡설수설"을 마칩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로에 대한 추억 (27) | 2022.12.26 |
---|---|
버킷리스트 추가 (20) | 2022.12.14 |
서예 횡설수설(4) (29) | 2022.10.30 |
서예 횡설수설(3) (2) | 2022.10.23 |
입꼬리를 올리며 (2) | 2022.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