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서예 횡설수설(5)

헤스톤 2022. 11. 13. 18:00

(국립현충원에서 순국선열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방명록을 쓰고 있는 나)

 

4. 서예와 나

 

좋은 글씨를 쓰려면 많이 써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서예의 대가로 알려진 사람치고 엄청나게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서예와 관련 없는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왕희지나 추사, 한석봉 같은 인물들이 얼마나 글씨에 매진하였는지는 각종 기록에서 알 수 있다. 한 예로 추사 선생은 벼루 10개를 구멍냈고, 붓 천 자루를 몽당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엄청난 노력없이 좋은 글씨를 쓸 수는 없다고 본다.

다음으로 많이 읽어야 한다. 서예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 발전에 한계가 있다. 그 외 많이 보아야 한다. 다행인지 우리나라엔 서예와 관련하여 각종 전시회가 있다. 그런 곳에 가서 많이 보아야 한다. 서울에서는 인사동에 가면 거의 매일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많은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나는 종종 인사동 필방에 들려 화선지를 비롯한 서예 용품도 사고, 각종 작품을 구경하며 보내고 있다.

 

(작년 나의 자작시로 쓴 예서 작품)

 

서예에 대한 사유와 독자성을 탐구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찾으려는 노력은 서예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통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인간 됨됨이를 비롯한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 중 아들 상우에게 보낸 글에 "모름지기 가슴속에 먼저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갖추는 것이 예법의 근본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문자향이란 말 그대로 글자에서 나오는 향기를 말하고, 서권기란 책에서 나오는 기운을 이른다. 문자향과 서권기는 분명 향기와 기운을 이르지만 냄새로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최소 만 권의 독서량이 있어야 문자향이 피어나고 서권기가 느껴진다고 하는데, 무조건 많이 읽는다고 문자향과 서권기가 배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에게서 문자향과 서권기가 배어나려면 먼저 그 사람됨이 바탕에서 우러나야 할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가을을 바라보며)

 

예술은 가슴속에 감동의 파장이 일 때 온다고 한다. 시를 지을 때도 종종 그렇지만, 가만히 사물을 관찰하여 그 사물로부터 어떤 감흥이 일어날 때, 그때가 붓을 들 때라는 말이다. 솔직히 나는 아직 필력도 부족하고 아직 멀었다는 것을 잘 안다. 내가 쓴 작품을 보며 만족스러워한 적이 아직 없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정진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붓을 들곤 한다. 먹을 갈고(최근엔 먹 가는 기계로 갈지만) 또 갈고, 화선지 위에 쓰고 또 쓰면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싫증이 나기도 하지만, 서예의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을 생각하며 거의 매일 붓을 잡는다. 

 

촉촉하게 내리는 꽃비에 옷이 젖고
촉촉하게 내리는 그리움에 마음이 젖으니
내리는 비 사이로 글씨들이 어른거린다
채워야 할 여백이 붓질을 기다리고 있다

 

이상 5회에 걸쳐 쓴 "서예 횡설수설"을 마칩니다.

 

(며칠 전 주산지에서 나의 앞날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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