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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관련 매천의 시

헤스톤 2018. 8. 7. 08:38



나의 고조부는 금사(錦士) 박항래(朴恒來) 이다.

나보다 약 100여 년 전에 태어나 만 80년을 살다 돌아가셨다.

일반인들은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동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하지만, 역사를 통하여서도 그 이름이 생소하다.

여러 기록을 찾아보면 나라와 백성을 위해 큰 일을 한 것은 확실하지만,

이 충무공이나 세종대왕과 같은 위인이 아니면 세월과 함께 잊혀진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이 아니듯이, 반짝이지 않는다고 다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천 황현 선생에 대하여는 잘 안다. 역사책을 통하여서도 그를 잘 알고 있다. 

고조부는 구례군수 시절 황현 선생과 자주 어울렸던 것 같다.

나이도 비슷하여 문우로 각별하게 지낸 것 같다.

무엇보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비슷했다고 본다.

 




매천집에 나오는 내용중 고조부와 관련된 시(詩) 3편을 복사해왔다.

솔직히 나의 모자란 머리로는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한글로 해석된 부분이 있어 잠시 매천 선생의 시심에 머물러 볼 따름이다.


* 참고로 어렵다고 느끼시는 분은 그냥 지나쳐 주시기 바란다.

  한시(漢詩)라는 것이 이 부분에서는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왜 이런 글자를 사용했는지...

  그런 것들을  알려면 그 글자에 대한 역사를 다 알아야 하기에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황현(黃玹) 매천집(梅泉集)


(1) 

성주인 박금사 항래를 모시고 당시운을 뽑아 시를 짓는데, 해학과 후춘이 자리를 함께하였다

〔陪城主朴錦士恒來拈唐詩韻海鶴厚春幷在座〕

 
동각의 동쪽 머리에 버들개지 날리고 / 東閣東頭柳絮飛
원님 술은 바다 같아 손이 돌아갈 줄 모르네 / 官樽如海客忘歸
양원의 백설 아랜 타관 벼슬이 막 싫증 났고 / 梁園白雪遊初倦
구루의 선약 만들 계획은 어긋나지 않았네 / 句漏丹砂計未違
백성은 전쟁 안 겪어 성곽 나무는 늙었고 / 民不見兵城樹老
관리가 농사 권장하니 못 기러기 드물구려 / 吏能耕野澤鴻稀
난 어버이 삼부 봉양해 본 게 평생 한이더니 / 及親三釜平生恨
금당에서 아직 채의 입은 게 정말 부럽네 / 却羨琴堂尙綵衣

[주-C001] 무술고(戊戌稿) : 
1898년(광무2), 매천의 나이 44세 때 지은 시고이다.
[주-D001] 박금사 항래(朴錦士恒來) : 
금사는 박항래의 호이다. 박항래는 전북 금산(錦山) 출신으로 구례 군수(求禮郡守), 자성 부사(慈城府使) 등을 역임하였고,
매천과 시문(詩文)으로 사귀었다.
[주-D002] 해학(海鶴) : 
애국지사(愛國志士) 이기(李沂, 1848~1909)의 호이다. 그는 실학을 연구하여 유형원(柳馨遠), 정약용(丁若鏞) 등의
학통을 계승했다. 1894년(고종31) 동학혁명(東學革命)이 일어났을 때는 이에 적극 가담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고 일본과 러시아가 강화조약(講和條約)을 체결할 때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천황(天皇)과
정계 요인(政界要人)들에게 일본의 한국 침략을 규탄하는 서면 항의(書面抗議)를 했고, 이해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귀국하여 장지연(張志淵), 윤효정(尹孝定) 등과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를 조직해서 민중 계몽과 항일운동에
진력하였다. 1907년에는 동지(同志) 10여 명과 함께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여 을사오적신(乙巳五賊臣)의 암살을
결행했으나 실패하여 7년의 유배형을 받고 진도(珍島)로 유배되었다. 저서에 《해학유서(海鶴遺書)》가 있다.
[주-D003] 양원(梁園)의 …… 났고 : 
양원은 한(漢)나라 때 양 효왕(梁孝王)의 원유(園囿)인 토원(兎園)을 가리킨다. 타관 벼슬에 싫증 났다는 것은 곧
《사기(史記)》 권117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에 “장경은 본디 타관에서 벼슬하는 것에 싫증이 났다.
〔長卿故倦遊〕”라고 하였다. 장경(長卿)은 사마상여의 자이다. 남조 송(宋)의 문학가인 사혜련(謝惠連)의 〈설부(雪賦)〉
에 의하면, 양 효왕이 일찍이 토원에서 연회를 베풀고 당대 제일가는 문장가인 사마상여, 추양(鄒陽), 매승(枚乘) 등을
초대하여 상좌(上座)에 앉히고 노는데, 이윽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자, 효왕이 이에 위시(衛詩)의 〈북풍(北風)〉을
노래하고는 사마상여에게 간찰(簡札)을 내리면서 이르기를 “그대의 비장해 둔 재주를 다 풀어내고, 그대의 아름다운
문사를 다 구사하여 경색을 아주 핍진하게 형용하고 묘사해서 과인을 위하여 한 편의 〈설부〉를 지어 달라.
〔抽子祕思 騁子姸辭 侔色揣稱 爲寡人賦之〕”라고 하니, 사마상여가 이에 일어나서 읍(揖)하고 나서 운운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文選 卷13》 전하여 여기서는 곧 좌중(座中)에 있는 어떤 이를 사마상여의 문장에 빗대서 한 말이다.
[주-D004] 구루(句漏)의 …… 않았네 : 
구루는 산명(山名)이다. 진(晉)나라 때 선인(仙人) 갈홍(葛洪)이 본래부터 신선도양술(神仙導養術)을 좋아하여,
조정의 부름을 고사하고, 교지(交趾)에서 선약(仙藥)의 재료인 단사(丹砂)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는 그곳의
구루산(句漏山)에 은거하면서 연단술(鍊丹術), 즉 선약 만드는 법을 통하여 선인이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5] 백성은 …… 늙었고 : 
오랜 세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세상이 평온했음을 의미한다.
[주-D006] 관리(官吏)가 …… 드물구려 : 
여기서 기러기는 곧 유랑하는 백성을 가리킨 것으로, 즉 관리가 백성들을 안집(安集)시키고 농사를 권장하여 잘 살게
함으로써 유랑하는 백성이 드물어졌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이는 본디 《시경》 〈홍안(鴻雁)〉에서 온 말인데,
그 내용은 곧 주실(周室)이 아주 쇠미해진 때에 주 선왕(周宣王)이 유랑하는 백성들을 안집시켜서 모두 제 살 곳을
얻게 해 준 데 대하여 백성들이 기쁘게 여겨 노래한 것이라 한다.
[주-D007] 삼부(三釜) 봉양 : 
부(釜)는 6말 4되들이의 용량을 말하는바, 삼부는 보통 사람이 겨우 한 달을 먹을 수 있는 양으로, 전하여 박봉(薄俸)에
비유한다. 《장자》 〈우언(寓言)〉에 “증자가 두 번 벼슬을 했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변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어버이
 생존시에 벼슬할 적에는 삼부의 녹봉만 받아도 즐거웠는데, 뒤에는 벼슬하여 삼천 종의 녹봉을 받았지만, 어버이를 봉양할
수 없어 내 마음이 슬펐다.’ 했다.〔曾子再仕 而心再化 曰吾及親仕 三釜而心樂 後仕三千鍾 不曁 吾心悲〕”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8] 금당(琴堂)에서 …… 게 : 
공자의 제자 복자천(宓子賤)이 성품이 매우 인애(仁愛)하여 일찍이 선보(單父)를 다스릴 적에 항상 거문고만 타고 앉아서
당(堂) 아래를 내려가지 않았으나 선보가 잘 다스려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呂覽 察賢》 전하여 금당은 주(州),
부(府), 현(縣) 등의 관서(官署)를 가리킨 말이다. 채의(綵衣)는 곧 색동옷을 말한 것으로,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효자로
명성이 높았던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70에 어린애처럼 색동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새 새끼를 가지고 장난을 하여 부모를
즐겁게 했던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바로 성주(城主) 박항래(朴恒來)가 아직껏 어버이를 모시고 있음을 의미한다.

(2) 

자성으로 임소를 옮겨 부임하는 금사 명부를 전송하다〔送錦士明府移任慈城〕


평소 〈순리전〉을 즐겨 읽었으나 / 平生愛讀循吏傳
아득한 천년 세월에 순리 만날 길이 없네 / 悵望千載何由見
어린 이 백성은 본래 삼대의 백성이니 / 蚩蚩故是三代民
총명과 기호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네 / 聰明嗜好毫無變
저 이는 어떤 사람이기에 갓을 쓴 호랑이처럼 / 彼何人者虎而冠
이빨 드러내고 날개 세워 물고 치고 하는가 / 狺牙厲翼噬且搏
열에 아홉 떠나가니 북과 바디 텅 비었고 / 十室九徙杼柚空
구렁에 뒹구는 건 울부짖는 고아들뿐이었지 / 溝中纍纍啼單寒
금사의 문장은 울연히 비단 같으니 / 錦士文章蔚雲錦
하찮은 녹봉에 고개 숙일 자 아니라네 / 不是低首戀殘廩
가슴속의 큰 재능을 시험 한번 해 보았더니 / 要試胸中星斗奇
소칼 솜씨 살짝 드러나 서슬이 푸르렀지 / 牛刀微露神鋩凜
노인들은 칭송하네 자애가 위엄을 넘는다고 / 翁嫗呢呢慈過威
운근지족이라 하더라도 그 기롱 달게 받으리 / 雲根地足寧甘譏
형벌을 두려워 아니하고 염치를 두려워하니 / 刀鋸不畏廉反畏
누각에 높이 누웠어도 맑은 서리 날리는 듯 / 閣中高臥淸霜飛
삼 년 동안 치적이 하루같이 선정이고 / 三載政成類一日
온 군민이 집집마다 부처처럼 받들었네 / 千家各有一家佛
부처는 본래 연연하는 마음 없는 건데 / 佛家本無係戀相
뽕나무 아래서 눈 깜짝할 새 사흘을 묵었구나 / 桑下轉眼三宿畢
청천강 한 굽이는 강물이 은빛이고 / 淸川一曲江如銀
묘향산 수많은 봉우리는 늘어선 옥 같으리 / 妙香千疊玉嶙岣
관서의 산수 풍광은 천하에 짝이 없으니 / 關西山水天下無
음악 소리 들리는 누각에는 천신이 있을 거야 / 絲管樓閣疑天神
그대 이제 수레 몰아 이곳 향해 떠나가니 / 君今膏秣向此去
사방 향한 큰 꿈을 조금은 펼 수 있으리라 / 四方桑蓬粗可伸
그런데 어찌하여 득의가 실의로 바뀌어서 / 如何得意翻失意
이별 술잔을 움켜잡고 맑은 눈물 떨구는가 / 强把離樽落淸淚
병주 쪽을 바라보건대 구름이 실낱같으니 / 回首幷州雲似縷
판여는 이 이천 리 길을 행차하기 어려우리 / 板輿難行二千里
들으니 중서성에는 인재가 많다고 하는데 / 聞道中書多夔龍
누가 배 진공처럼 식견이 많아서 / 達識誰如裴晉公
파주 험한 곳과 몽득의 노모를 걱정해 / 播州崎嶇夢得老
효의 이치로 군주를 깨우쳐 줄 수 있으려나 / 庶以孝理開宸聰
갈 길이 정해졌으니 늦추어선 안 되는데 / 行程有期不可緩
조장에 모인 사람들 길을 메워 강성이 짧구나 / 祖帳蔽路江城短
초가을 비 그치고 버들가지 듬성듬성한데 / 新秋雨霽楊柳疎
한두 마리 매미 소리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네 / 一兩蟬啼不斷
그대는 못 보았나 / 君不見
구절판 서쪽으로 마부를 다그치던 사람이 / 九折坂西叱馭人
효자와 충신을 둘 다 공안을 삼았던 것을 / 孝子忠臣各公案

 

 

[주-C001] 기해고(己亥稿) : 
기해년(1899, 광무3)에 쓴 시의 모음이다. 기해년은 매천이 45세 때이다.
[주-D001] 자성(慈城)으로 …… 전송하다 : 
금사 명부는 박항래(朴恒來, 1853~1933)를 가리킨다. 금사는 그의 호이다. 《승정원일기》 고종 36년(1899) 6월 25일
기사에 의하면, 박항래는 6월 25일에 자성 군수(慈城郡守)에 임명되었다. 명부(明府)는 지방 수령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D002] 순리전(循吏傳) : 
《사기》, 《한서》, 《후한서》 등의 열전(列傳)의 한가지이다. 법을 잘 지키면서 백성을 잘 다스린 지방관을 소개한
열전이다.
[주-D003] 삼대(三代)의 백성 :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내가 사람들에 대해서, 누구를 헐뜯겠으며 누구를 칭찬하겠는가. 만약 칭찬하는 자가
있다면 시험한 바가 있어서인 것이다. 이 백성은 삼대 때에 도를 정직하게 시행했던 대상들이었다.” 하였다. 태평성대로
일컬어졌던 중국 고대의 하(夏), 은(殷), 주(周) 시대에 정직하게 통치했던 백성과 동일한 백성이라는 뜻이다.
[주-D004] 갓을 쓴 호랑이 : 
의관을 차려 입었지만 품성은 흉포한 호랑이와 같은 탐관오리를 가리킨다.
[주-D005] 북과 …… 비었고 : 
《시경》 〈대동(大東)〉에 “소동이나 대동이나 북과 바디가 텅 비었네.〔小東大東 杼柚其空〕” 하였다. 동방에 있는
크고 작은 나라들이 베를 짤 수도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는 뜻인데, 가난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주-D006] 소칼 …… 푸르렀지 : 
《논어》 〈양화〉에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칼을 쓰느냐.”라는 말이 있다. 박항래의 전임 직책이 구례 군수였는데,
그가 그 직책을 잘 수행했음을 비유하는 말로 쓴 것이다.
[주-D007] 운근지족(雲根地足) : 
형벌이 매우 관대한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세설신어》 〈정사(政事)〉에 나온다. 중국 진(晉)나라 환온(桓溫)이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에 정치를 관대하게 하여, 위엄으로 사람들을 겁주는 것을 수치로 여겼으므로 백성들이
편안하였다. 하급 관리인 영사(令史)가 장형(杖刑)을 받을 때에 곤장이 주의(朱衣) 위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 환온의
 아들 환식(桓式)이 어릴 때에 밖에서 들어와 말하기를, “아까 관소 옆을 지나가다가 영사가 곤장을 맞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위로는 곤장이 구름을 스쳤고 아래로는 곤장이 땅을 스쳤습니다.〔上捎雲根 下拂地足〕” 하였다. 곤장이 몸에 닿지
않는 것을 기롱하는 말이었다. 환온이 말하기를, “나는 그래도 무거울까 염려된다.” 하였다.
[주-D008] 뽕나무 …… 묵었구나 : 
《후한서》 권30 〈양해열전(襄楷列傳)〉에, “부처는 뽕나무 아래에서 사흘을 이어서 묵지 않았습니다. 오래 있다가
 애착의 마음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아니한 것이니 지극한 정진(精進)입니다.〔浮屠不三宿桑下 不欲久生恩愛 精之至也〕”
하였다. 여기서는 임기 3년이 금방 지나갔음을 비유한 말인 듯하다.
[주-D009] 수레 몰아 : 
한유(韓愈)의 〈송이원귀반곡(送李愿歸盤谷)〉에 “내 수레에 기름 치고 나의 말에 꼴을 먹여.〔膏吾車兮 秣吾馬〕”라는
구절이 있다. 이후 고말(膏秣)은 길을 떠날 차비를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주-D010] 사방 …… 꿈 : 
《예기》 〈내칙〉에 의하면, 옛날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쑥대로 화살을 만들어 천지 사방에 대고
쏘았는데, 원대한 뜻을 품고 큰일을 성취하라고 기원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주-D011] 병주(幷州) …… 실낱같으니 : 
《신당서》 권115 〈적인걸열전(狄仁傑列傳)〉에 “당나라 적인걸이 병주 법조참군(法曹參軍)으로 있을 때에 그 어버이는
하양(河陽)에 떨어져 있었는데, 적인걸이 태항산(太行山)에 올라가 한 덩이 흰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어버이께서 저 아래에 살고 계신다.’ 하고,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다가 구름이 멀리 흘러간 뒤에 그 자리를
떴다.” 하였다.
[주-D012] 판여(板輿) : 
가마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모친을 모시고 갈 가마라는 뜻이다.
[주-D013] 중서성(中書省) : 
조선 시대의 의정부(議政府)를 가리키는 말이다.
[주-D014] 인재(人才) : 
《서경》 〈순전(舜典)〉에 “백(伯)이 절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기용(夔龍)에게 사양하니……” 하였는데, 그 주석에
“기(夔)와 용(龍)은 순 임금의 두 신하의 이름이다.” 하였다. 기는 악관(樂官)이고 용은 간관(諫官)이었다고 한다. 후세에
기용은 훌륭한 신하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주-D015] 배 진공(裴晉公) : 
당나라 명재상이었던 배도(裴度)를 말한다.
[주-D016] 파주(播州) …… 있으려나 : 
몽득(夢得)은 당나라 유우석(劉禹錫)의 자이다. 《구당서(舊唐書)》 권160 〈유우석열전(劉禹錫列傳)〉에, “원화(元和)
10년(815)에 유우석이 좌천되어 파주 자사(播州刺史)로 가게 되자 어사중승(御史中丞) 배도(裴度)가 상주(上奏)하기를,
‘유우석은 노모가 80여 세이고 파주는 서남쪽 극변이어서 인적도 드문 곳입니다. 유우석이 비록 벌을 받아야 마땅하나,
노모가 필시 함께 가지 못할 것이니, 이리되면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신은 폐하의 효도를 장려하는 다스림에 손상이
갈까 염려스럽습니다. 정상을 참작하여 조금 가까운 곳으로 보내기를 청합니다.’ 하여, 마침내 연주(連州)로 보냈다.”
하였다. 《유하동집(柳河東集)》 부록(附錄)에는, “유종원이 주문(奏文)을 올려, 유우석을 유주(柳州)로 보내고 자신을
대신 파주로 가게 해 달라고 청하였는데, 마침 배도도 그 일을 아뢰어, 유우석이 마침내 연주로 가게 되었다.” 하였다.
[주-D017] 조장(祖帳) : 
먼 길 떠나는 사람을 전송할 때에 전별연을 베풀기 위해 설치하는 장막이다.
[주-D018] 斷 : 
대본에는 ‘聲’으로 되어 있으나 〈매천집정오〉에 의거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주-D019] 효자와 …… 것을 : 
《한서》 권76 〈왕존전(王尊傳)〉에 나온다. 한나라 왕존(王尊)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어 험난하기로 유명한
공래산(卭郲山) 구절판(九折阪)이라는 고개를 넘게 되었다. 이전에 익주 자사에 임명되었던 왕양(王陽)이 이곳을 넘으
면서 “어버이가 물려주신 이 몸을 이끌고 어찌 이렇게 험난한 곳을 자주 넘어 다닐 수 있겠는가.” 하고는 병을 핑계 대고
벼슬을 버리고 가 버렸다. 왕존이 이 구절판에 이르러 관리에게 묻기를, “여기가 왕양이 겁을 냈었다는 그 길인가?” 하니,
관리가 “그렇습니다.” 하자, 왕존이 마부에게 말하기를, “바삐 몰아라. 왕양은 효자이고 왕존은 충신이다.” 하면서 고개를
넘어갔다.

(3) 

자성 임소에 있는 금사에게 부치다〔柬錦士慈城任所〕

 
야윈 말에 채찍 들고 왕명을 등에 업고 / 羸駒尺箠王靈
변방 성문 밤중에도 빗장 걸지 않았으리 / 塞上孤城夜不扃
뒷날 내가 미워할 건 그대의 노안 자랑 / 他日憎君誇老眼
강 건너 중국 산천 실컷 구경 했을 테지 / 中州山色隔江靑

석양에 격구장에서 사냥하고 돌아오면 / 落日毬場校獵回
음산 문득 검어지며 큰 바람이 불어오리 / 陰山忽黝大風來
장군이 좋은 활을 다시 잡고 나선다면 / 將軍更把琱弓出
그래도 당년에는 돌 범을 쏜 재주였지 / 猶有當年射虎才

오래 자란 인삼은 부처 머리처럼 둥글고 / 神蔘老作佛頭圓
큰 사슴 녹용 잘 말라 핏빛이 선명하네 / 大鹿茸乾血色鮮
친구에게 토산품을 함부로 보내지 마소 / 莫遣親朋詢土産
명주와 무소뿔이라고 마문연을 얽어맸다오 / 珠犀枉累馬文淵

매화가 다 지도록 역졸도 안 보이고 / 落盡梅花驛使稀
봄바람에 기러기는 남쪽으로 날지 않네 / 春風無復雁南飛
관산이 겹겹이라 꿈에도 넘기 어려우니 / 關山萬疊難爲夢
새벽 베갯머리에서 가다 말고 돌아오네 / 曉枕多從半道歸


 

[주-C001] 경자고(庚子稿) : 
매천이 46세 때인 경자년(1900, 광무4)에 지은 시이다.
[주-D001] 仗 : 
대본에는 ‘伏’으로 되어 있으나 〈매천집정오〉에 의거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주-D002] 밤중에도 …… 않았으리 : 
밤에도 성문을 닫지 않았다는 것은 수령이 정치를 잘하여 단속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치안이 훌륭하다는 뜻이다.
[주-D003] 사냥 : 
원문의 교렵(校獵)은 사냥 대회로, 짐승을 일정한 곳에 몰아 놓고 무기를 사용하여 사냥을 하는 군사 훈련의 일종이다.
[주-D004] 돌 …… 재주 : 
한나라 때의 장군 이광(李廣)을 석호장군(射虎將軍)이라 하였는데, 《사기》 권109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 의하면,
이광이 사냥을 나갔을 때에 풀숲에 있는 바위를 호랑이로 오인하여 활을 쏘았는데 화살이 바위에 박혔다고 한다.
금사 박항래의 무예를 이광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주-D005] 명주(明珠)와 …… 얽어맸다오 : 
후한(後漢)의 명장(名將)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교지(交趾)에 있다가 돌아올 때에 율무〔薏苡〕를 수레에
가득 싣고 왔는데, 마원이 죽은 뒤에 어떤 이가 이것을 명주와 무소뿔〔文犀〕을 싣고 온 것이라고 참소하였다. 이 내용은
《후한서》 권24 〈마원열전(馬援列傳)〉에 나온다. 문연(文淵)은 마원의 자이다.
[주-D006] 매화가 …… 보이고 : 
남북조 시대의 육개(陸凱)와 범엽(范曄)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태평어람》 권19 〈시서부(時序部) 춘중(春中)〉에
“육개가 강남(江南)에 있을 때에 역졸을 시켜 매화 한 가지를 장안(長安)에 있는 벗 범엽에게 보내면서 시를 함께 부쳤는데,
그 시에, ‘매화를 꺾다 역졸을 만나, 농산(隴山)의 벗에게 부쳐 보내노라. 강남엔 별로 보낼 것이 없어, 그저 봄 실은 가지
하나 보내는 것이네.〔折花逢驛使 寄與隴頭人 江南無所有 聊贈一枝春〕’ 하였다.” 하였다. 이 내용은 같은 책 권409
〈인사부(人事部) 교우(交友)〉와 권970 〈과부(果部) 매(梅)〉에도 실려 있으며, 《고금사문유취》, 《연감유함》
등에도 나온다. 매천이 소식을 전하고 싶어도 인편이 없어서 전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말한 것인 듯하다.
[주-D007] 봄바람에 …… 않네 : 
기러기는 주로 가을에 남쪽으로 날아왔다가 봄에는 북쪽으로 날아간다. 현재의 시절이 봄이기 때문에 기러기가 남쪽으로
날지 않는 것이니, 자성 부사로 있는 박항래의 서신이 오지 아니함을 비유한 말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