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조부는 금사(錦士) 박항래(朴恒來) 이다.
나보다 약 100여 년 전에 태어나 만 80년을 살다 돌아가셨다.
일반인들은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동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하지만, 역사를 통하여서도 그 이름이 생소하다.
여러 기록을 찾아보면 나라와 백성을 위해 큰 일을 한 것은 확실하지만,
이 충무공이나 세종대왕과 같은 위인이 아니면 세월과 함께 잊혀진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이 아니듯이, 반짝이지 않는다고 다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천 황현 선생에 대하여는 잘 안다. 역사책을 통하여서도 그를 잘 알고 있다.
고조부는 구례군수 시절 황현 선생과 자주 어울렸던 것 같다.
나이도 비슷하여 문우로 각별하게 지낸 것 같다.
무엇보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비슷했다고 본다.
매천집에 나오는 내용중 고조부와 관련된 시(詩) 3편을 복사해왔다.
솔직히 나의 모자란 머리로는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한글로 해석된 부분이 있어 잠시 매천 선생의 시심에 머물러 볼 따름이다.
* 참고로 어렵다고 느끼시는 분은 그냥 지나쳐 주시기 바란다.
한시(漢詩)라는 것이 이 부분에서는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왜 이런 글자를 사용했는지...
그런 것들을 알려면 그 글자에 대한 역사를 다 알아야 하기에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1)
성주인 박금사 항래를 모시고 당시운을 뽑아 시를 짓는데, 해학과 후춘이 자리를 함께하였다
〔陪城主朴錦士恒來拈唐詩韻海鶴厚春幷在座〕
원님 술은 바다 같아 손이 돌아갈 줄 모르네 / 官樽如海客忘歸
양원의 백설 아랜 타관 벼슬이 막 싫증 났고 / 梁園白雪遊初倦
구루의 선약 만들 계획은 어긋나지 않았네 / 句漏丹砂計未違
백성은 전쟁 안 겪어 성곽 나무는 늙었고 / 民不見兵城樹老
관리가 농사 권장하니 못 기러기 드물구려 / 吏能耕野澤鴻稀
난 어버이 삼부 봉양해 본 게 평생 한이더니 / 及親三釜平生恨
금당에서 아직 채의 입은 게 정말 부럽네 / 却羨琴堂尙綵衣
- [주-C001] 무술고(戊戌稿) :
- 1898년(광무2), 매천의 나이 44세 때 지은 시고이다.
- [주-D001] 박금사 항래(朴錦士恒來) :
- 금사는 박항래의 호이다. 박항래는 전북 금산(錦山) 출신으로 구례 군수(求禮郡守), 자성 부사(慈城府使) 등을 역임하였고,
- 매천과 시문(詩文)으로 사귀었다.
- [주-D002] 해학(海鶴) :
- 애국지사(愛國志士) 이기(李沂, 1848~1909)의 호이다. 그는 실학을 연구하여 유형원(柳馨遠), 정약용(丁若鏞) 등의
- 학통을 계승했다. 1894년(고종31) 동학혁명(東學革命)이 일어났을 때는 이에 적극 가담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고 일본과 러시아가 강화조약(講和條約)을 체결할 때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천황(天皇)과
- 정계 요인(政界要人)들에게 일본의 한국 침략을 규탄하는 서면 항의(書面抗議)를 했고, 이해 을사조약(乙巳條約)이
- 체결되자, 귀국하여 장지연(張志淵), 윤효정(尹孝定) 등과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를 조직해서 민중 계몽과 항일운동에
- 진력하였다. 1907년에는 동지(同志) 10여 명과 함께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여 을사오적신(乙巳五賊臣)의 암살을
- 결행했으나 실패하여 7년의 유배형을 받고 진도(珍島)로 유배되었다. 저서에 《해학유서(海鶴遺書)》가 있다.
- [주-D003] 양원(梁園)의 …… 났고 :
- 양원은 한(漢)나라 때 양 효왕(梁孝王)의 원유(園囿)인 토원(兎園)을 가리킨다. 타관 벼슬에 싫증 났다는 것은 곧
- 《사기(史記)》 권117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에 “장경은 본디 타관에서 벼슬하는 것에 싫증이 났다.
- 〔長卿故倦遊〕”라고 하였다. 장경(長卿)은 사마상여의 자이다. 남조 송(宋)의 문학가인 사혜련(謝惠連)의 〈설부(雪賦)〉
- 에 의하면, 양 효왕이 일찍이 토원에서 연회를 베풀고 당대 제일가는 문장가인 사마상여, 추양(鄒陽), 매승(枚乘) 등을
- 초대하여 상좌(上座)에 앉히고 노는데, 이윽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자, 효왕이 이에 위시(衛詩)의 〈북풍(北風)〉을
- 노래하고는 사마상여에게 간찰(簡札)을 내리면서 이르기를 “그대의 비장해 둔 재주를 다 풀어내고, 그대의 아름다운
- 문사를 다 구사하여 경색을 아주 핍진하게 형용하고 묘사해서 과인을 위하여 한 편의 〈설부〉를 지어 달라.
- 〔抽子祕思 騁子姸辭 侔色揣稱 爲寡人賦之〕”라고 하니, 사마상여가 이에 일어나서 읍(揖)하고 나서 운운했다는 데서
- 온 말이다. 《文選 卷13》 전하여 여기서는 곧 좌중(座中)에 있는 어떤 이를 사마상여의 문장에 빗대서 한 말이다.
- [주-D004] 구루(句漏)의 …… 않았네 :
- 구루는 산명(山名)이다. 진(晉)나라 때 선인(仙人) 갈홍(葛洪)이 본래부터 신선도양술(神仙導養術)을 좋아하여,
- 조정의 부름을 고사하고, 교지(交趾)에서 선약(仙藥)의 재료인 단사(丹砂)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는 그곳의
- 구루산(句漏山)에 은거하면서 연단술(鍊丹術), 즉 선약 만드는 법을 통하여 선인이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 [주-D005] 백성은 …… 늙었고 :
- 오랜 세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세상이 평온했음을 의미한다.
- [주-D006] 관리(官吏)가 …… 드물구려 :
- 여기서 기러기는 곧 유랑하는 백성을 가리킨 것으로, 즉 관리가 백성들을 안집(安集)시키고 농사를 권장하여 잘 살게
- 함으로써 유랑하는 백성이 드물어졌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이는 본디 《시경》 〈홍안(鴻雁)〉에서 온 말인데,
- 그 내용은 곧 주실(周室)이 아주 쇠미해진 때에 주 선왕(周宣王)이 유랑하는 백성들을 안집시켜서 모두 제 살 곳을
- 얻게 해 준 데 대하여 백성들이 기쁘게 여겨 노래한 것이라 한다.
- [주-D007] 삼부(三釜) 봉양 :
- 부(釜)는 6말 4되들이의 용량을 말하는바, 삼부는 보통 사람이 겨우 한 달을 먹을 수 있는 양으로, 전하여 박봉(薄俸)에
- 비유한다. 《장자》 〈우언(寓言)〉에 “증자가 두 번 벼슬을 했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변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어버이
- 생존시에 벼슬할 적에는 삼부의 녹봉만 받아도 즐거웠는데, 뒤에는 벼슬하여 삼천 종의 녹봉을 받았지만, 어버이를 봉양할
- 수 없어 내 마음이 슬펐다.’ 했다.〔曾子再仕 而心再化 曰吾及親仕 三釜而心樂 後仕三千鍾 不曁 吾心悲〕”라고 한 데서 온
- 말이다.
- [주-D008] 금당(琴堂)에서 …… 게 :
- 공자의 제자 복자천(宓子賤)이 성품이 매우 인애(仁愛)하여 일찍이 선보(單父)를 다스릴 적에 항상 거문고만 타고 앉아서
- 당(堂) 아래를 내려가지 않았으나 선보가 잘 다스려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呂覽 察賢》 전하여 금당은 주(州),
- 부(府), 현(縣) 등의 관서(官署)를 가리킨 말이다. 채의(綵衣)는 곧 색동옷을 말한 것으로,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효자로
- 명성이 높았던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70에 어린애처럼 색동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새 새끼를 가지고 장난을 하여 부모를
- 즐겁게 했던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뜻한다.
- 여기서는 바로 성주(城主) 박항래(朴恒來)가 아직껏 어버이를 모시고 있음을 의미한다.
(2)
자성으로 임소를 옮겨 부임하는 금사 명부를 전송하다〔送錦士明府移任慈城〕
아득한 천년 세월에 순리 만날 길이 없네 / 悵望千載何由見
어린 이 백성은 본래 삼대의 백성이니 / 蚩蚩故是三代民
총명과 기호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네 / 聰明嗜好毫無變
저 이는 어떤 사람이기에 갓을 쓴 호랑이처럼 / 彼何人者虎而冠
이빨 드러내고 날개 세워 물고 치고 하는가 / 狺牙厲翼噬且搏
열에 아홉 떠나가니 북과 바디 텅 비었고 / 十室九徙杼柚空
구렁에 뒹구는 건 울부짖는 고아들뿐이었지 / 溝中纍纍啼單寒
금사의 문장은 울연히 비단 같으니 / 錦士文章蔚雲錦
하찮은 녹봉에 고개 숙일 자 아니라네 / 不是低首戀殘廩
가슴속의 큰 재능을 시험 한번 해 보았더니 / 要試胸中星斗奇
소칼 솜씨 살짝 드러나 서슬이 푸르렀지 / 牛刀微露神鋩凜
노인들은 칭송하네 자애가 위엄을 넘는다고 / 翁嫗呢呢慈過威
운근지족이라 하더라도 그 기롱 달게 받으리 / 雲根地足寧甘譏
형벌을 두려워 아니하고 염치를 두려워하니 / 刀鋸不畏廉反畏
누각에 높이 누웠어도 맑은 서리 날리는 듯 / 閣中高臥淸霜飛
삼 년 동안 치적이 하루같이 선정이고 / 三載政成類一日
온 군민이 집집마다 부처처럼 받들었네 / 千家各有一家佛
부처는 본래 연연하는 마음 없는 건데 / 佛家本無係戀相
뽕나무 아래서 눈 깜짝할 새 사흘을 묵었구나 / 桑下轉眼三宿畢
청천강 한 굽이는 강물이 은빛이고 / 淸川一曲江如銀
묘향산 수많은 봉우리는 늘어선 옥 같으리 / 妙香千疊玉嶙岣
관서의 산수 풍광은 천하에 짝이 없으니 / 關西山水天下無
음악 소리 들리는 누각에는 천신이 있을 거야 / 絲管樓閣疑天神
그대 이제 수레 몰아 이곳 향해 떠나가니 / 君今膏秣向此去
사방 향한 큰 꿈을 조금은 펼 수 있으리라 / 四方桑蓬粗可伸
그런데 어찌하여 득의가 실의로 바뀌어서 / 如何得意翻失意
이별 술잔을 움켜잡고 맑은 눈물 떨구는가 / 强把離樽落淸淚
병주 쪽을 바라보건대 구름이 실낱같으니 / 回首幷州雲似縷
판여는 이 이천 리 길을 행차하기 어려우리 / 板輿難行二千里
들으니 중서성에는 인재가 많다고 하는데 / 聞道中書多夔龍
누가 배 진공처럼 식견이 많아서 / 達識誰如裴晉公
파주 험한 곳과 몽득의 노모를 걱정해 / 播州崎嶇夢得老
효의 이치로 군주를 깨우쳐 줄 수 있으려나 / 庶以孝理開宸聰
갈 길이 정해졌으니 늦추어선 안 되는데 / 行程有期不可緩
조장에 모인 사람들 길을 메워 강성이 짧구나 / 祖帳蔽路江城短
초가을 비 그치고 버들가지 듬성듬성한데 / 新秋雨霽楊柳疎
한두 마리 매미 소리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네 / 一兩蟬啼斷不斷
그대는 못 보았나 / 君不見
구절판 서쪽으로 마부를 다그치던 사람이 / 九折坂西叱馭人
효자와 충신을 둘 다 공안을 삼았던 것을 / 孝子忠臣各公案
- [주-C001] 기해고(己亥稿) :
- 기해년(1899, 광무3)에 쓴 시의 모음이다. 기해년은 매천이 45세 때이다.
- [주-D001] 자성(慈城)으로 …… 전송하다 :
- 금사 명부는 박항래(朴恒來, 1853~1933)를 가리킨다. 금사는 그의 호이다. 《승정원일기》 고종 36년(1899) 6월 25일
- 기사에 의하면, 박항래는 6월 25일에 자성 군수(慈城郡守)에 임명되었다. 명부(明府)는 지방 수령을 가리키는 말이다.
- [주-D002] 순리전(循吏傳) :
- 《사기》, 《한서》, 《후한서》 등의 열전(列傳)의 한가지이다. 법을 잘 지키면서 백성을 잘 다스린 지방관을 소개한
- 열전이다.
- [주-D003] 삼대(三代)의 백성 :
-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내가 사람들에 대해서, 누구를 헐뜯겠으며 누구를 칭찬하겠는가. 만약 칭찬하는 자가
- 있다면 시험한 바가 있어서인 것이다. 이 백성은 삼대 때에 도를 정직하게 시행했던 대상들이었다.” 하였다. 태평성대로
- 일컬어졌던 중국 고대의 하(夏), 은(殷), 주(周) 시대에 정직하게 통치했던 백성과 동일한 백성이라는 뜻이다.
- [주-D004] 갓을 쓴 호랑이 :
- 의관을 차려 입었지만 품성은 흉포한 호랑이와 같은 탐관오리를 가리킨다.
- [주-D005] 북과 …… 비었고 :
- 《시경》 〈대동(大東)〉에 “소동이나 대동이나 북과 바디가 텅 비었네.〔小東大東 杼柚其空〕” 하였다. 동방에 있는
- 크고 작은 나라들이 베를 짤 수도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는 뜻인데, 가난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 [주-D006] 소칼 …… 푸르렀지 :
- 《논어》 〈양화〉에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칼을 쓰느냐.”라는 말이 있다. 박항래의 전임 직책이 구례 군수였는데,
- 그가 그 직책을 잘 수행했음을 비유하는 말로 쓴 것이다.
- [주-D007] 운근지족(雲根地足) :
- 형벌이 매우 관대한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세설신어》 〈정사(政事)〉에 나온다. 중국 진(晉)나라 환온(桓溫)이
-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에 정치를 관대하게 하여, 위엄으로 사람들을 겁주는 것을 수치로 여겼으므로 백성들이
- 편안하였다. 하급 관리인 영사(令史)가 장형(杖刑)을 받을 때에 곤장이 주의(朱衣) 위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 환온의
- 아들 환식(桓式)이 어릴 때에 밖에서 들어와 말하기를, “아까 관소 옆을 지나가다가 영사가 곤장을 맞는 것을 보았습니다.
- 그런데 위로는 곤장이 구름을 스쳤고 아래로는 곤장이 땅을 스쳤습니다.〔上捎雲根 下拂地足〕” 하였다. 곤장이 몸에 닿지
- 않는 것을 기롱하는 말이었다. 환온이 말하기를, “나는 그래도 무거울까 염려된다.” 하였다.
- [주-D008] 뽕나무 …… 묵었구나 :
- 《후한서》 권30 〈양해열전(襄楷列傳)〉에, “부처는 뽕나무 아래에서 사흘을 이어서 묵지 않았습니다. 오래 있다가
- 애착의 마음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아니한 것이니 지극한 정진(精進)입니다.〔浮屠不三宿桑下 不欲久生恩愛 精之至也〕”
- 하였다. 여기서는 임기 3년이 금방 지나갔음을 비유한 말인 듯하다.
- [주-D009] 수레 몰아 :
- 한유(韓愈)의 〈송이원귀반곡(送李愿歸盤谷)〉에 “내 수레에 기름 치고 나의 말에 꼴을 먹여.〔膏吾車兮 秣吾馬〕”라는
- 구절이 있다. 이후 고말(膏秣)은 길을 떠날 차비를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 [주-D010] 사방 …… 꿈 :
- 《예기》 〈내칙〉에 의하면, 옛날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쑥대로 화살을 만들어 천지 사방에 대고
- 쏘았는데, 원대한 뜻을 품고 큰일을 성취하라고 기원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 [주-D011] 병주(幷州) …… 실낱같으니 :
- 《신당서》 권115 〈적인걸열전(狄仁傑列傳)〉에 “당나라 적인걸이 병주 법조참군(法曹參軍)으로 있을 때에 그 어버이는
- 하양(河陽)에 떨어져 있었는데, 적인걸이 태항산(太行山)에 올라가 한 덩이 흰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 말하기를, ‘나의 어버이께서 저 아래에 살고 계신다.’ 하고,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다가 구름이 멀리 흘러간 뒤에 그 자리를
- 떴다.” 하였다.
- [주-D012] 판여(板輿) :
- 가마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모친을 모시고 갈 가마라는 뜻이다.
- [주-D013] 중서성(中書省) :
- 조선 시대의 의정부(議政府)를 가리키는 말이다.
- [주-D014] 인재(人才) :
- 《서경》 〈순전(舜典)〉에 “백(伯)이 절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기용(夔龍)에게 사양하니……” 하였는데, 그 주석에
- “기(夔)와 용(龍)은 순 임금의 두 신하의 이름이다.” 하였다. 기는 악관(樂官)이고 용은 간관(諫官)이었다고 한다. 후세에
- 기용은 훌륭한 신하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 [주-D015] 배 진공(裴晉公) :
- 당나라 명재상이었던 배도(裴度)를 말한다.
- [주-D016] 파주(播州) …… 있으려나 :
- 몽득(夢得)은 당나라 유우석(劉禹錫)의 자이다. 《구당서(舊唐書)》 권160 〈유우석열전(劉禹錫列傳)〉에, “원화(元和)
- 10년(815)에 유우석이 좌천되어 파주 자사(播州刺史)로 가게 되자 어사중승(御史中丞) 배도(裴度)가 상주(上奏)하기를,
- ‘유우석은 노모가 80여 세이고 파주는 서남쪽 극변이어서 인적도 드문 곳입니다. 유우석이 비록 벌을 받아야 마땅하나,
- 노모가 필시 함께 가지 못할 것이니, 이리되면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신은 폐하의 효도를 장려하는 다스림에 손상이
- 갈까 염려스럽습니다. 정상을 참작하여 조금 가까운 곳으로 보내기를 청합니다.’ 하여, 마침내 연주(連州)로 보냈다.”
- 하였다. 《유하동집(柳河東集)》 부록(附錄)에는, “유종원이 주문(奏文)을 올려, 유우석을 유주(柳州)로 보내고 자신을
- 대신 파주로 가게 해 달라고 청하였는데, 마침 배도도 그 일을 아뢰어, 유우석이 마침내 연주로 가게 되었다.” 하였다.
- [주-D017] 조장(祖帳) :
- 먼 길 떠나는 사람을 전송할 때에 전별연을 베풀기 위해 설치하는 장막이다.
- [주-D018] 斷 :
- 대본에는 ‘聲’으로 되어 있으나 〈매천집정오〉에 의거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 [주-D019] 효자와 …… 것을 :
- 《한서》 권76 〈왕존전(王尊傳)〉에 나온다. 한나라 왕존(王尊)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어 험난하기로 유명한
- 공래산(卭郲山) 구절판(九折阪)이라는 고개를 넘게 되었다. 이전에 익주 자사에 임명되었던 왕양(王陽)이 이곳을 넘으
- 면서 “어버이가 물려주신 이 몸을 이끌고 어찌 이렇게 험난한 곳을 자주 넘어 다닐 수 있겠는가.” 하고는 병을 핑계 대고
- 벼슬을 버리고 가 버렸다. 왕존이 이 구절판에 이르러 관리에게 묻기를, “여기가 왕양이 겁을 냈었다는 그 길인가?” 하니,
- 관리가 “그렇습니다.” 하자, 왕존이 마부에게 말하기를, “바삐 몰아라. 왕양은 효자이고 왕존은 충신이다.” 하면서 고개를
- 넘어갔다.
(3)
자성 임소에 있는 금사에게 부치다〔柬錦士慈城任所〕
변방 성문 밤중에도 빗장 걸지 않았으리 / 塞上孤城夜不扃
뒷날 내가 미워할 건 그대의 노안 자랑 / 他日憎君誇老眼
강 건너 중국 산천 실컷 구경 했을 테지 / 中州山色隔江靑
음산 문득 검어지며 큰 바람이 불어오리 / 陰山忽黝大風來
장군이 좋은 활을 다시 잡고 나선다면 / 將軍更把琱弓出
그래도 당년에는 돌 범을 쏜 재주였지 / 猶有當年射虎才
큰 사슴 녹용 잘 말라 핏빛이 선명하네 / 大鹿茸乾血色鮮
친구에게 토산품을 함부로 보내지 마소 / 莫遣親朋詢土産
명주와 무소뿔이라고 마문연을 얽어맸다오 / 珠犀枉累馬文淵
봄바람에 기러기는 남쪽으로 날지 않네 / 春風無復雁南飛
관산이 겹겹이라 꿈에도 넘기 어려우니 / 關山萬疊難爲夢
새벽 베갯머리에서 가다 말고 돌아오네 / 曉枕多從半道歸
- [주-C001] 경자고(庚子稿) :
- 매천이 46세 때인 경자년(1900, 광무4)에 지은 시이다.
- [주-D001] 仗 :
- 대본에는 ‘伏’으로 되어 있으나 〈매천집정오〉에 의거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 [주-D002] 밤중에도 …… 않았으리 :
- 밤에도 성문을 닫지 않았다는 것은 수령이 정치를 잘하여 단속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치안이 훌륭하다는 뜻이다.
- [주-D003] 사냥 :
- 원문의 교렵(校獵)은 사냥 대회로, 짐승을 일정한 곳에 몰아 놓고 무기를 사용하여 사냥을 하는 군사 훈련의 일종이다.
- [주-D004] 돌 …… 재주 :
- 한나라 때의 장군 이광(李廣)을 석호장군(射虎將軍)이라 하였는데, 《사기》 권109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 의하면,
- 이광이 사냥을 나갔을 때에 풀숲에 있는 바위를 호랑이로 오인하여 활을 쏘았는데 화살이 바위에 박혔다고 한다.
- 금사 박항래의 무예를 이광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 [주-D005] 명주(明珠)와 …… 얽어맸다오 :
- 후한(後漢)의 명장(名將)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교지(交趾)에 있다가 돌아올 때에 율무〔薏苡〕를 수레에
- 가득 싣고 왔는데, 마원이 죽은 뒤에 어떤 이가 이것을 명주와 무소뿔〔文犀〕을 싣고 온 것이라고 참소하였다. 이 내용은
- 《후한서》 권24 〈마원열전(馬援列傳)〉에 나온다. 문연(文淵)은 마원의 자이다.
- [주-D006] 매화가 …… 보이고 :
- 남북조 시대의 육개(陸凱)와 범엽(范曄)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태평어람》 권19 〈시서부(時序部) 춘중(春中)〉에
- “육개가 강남(江南)에 있을 때에 역졸을 시켜 매화 한 가지를 장안(長安)에 있는 벗 범엽에게 보내면서 시를 함께 부쳤는데,
- 그 시에, ‘매화를 꺾다 역졸을 만나, 농산(隴山)의 벗에게 부쳐 보내노라. 강남엔 별로 보낼 것이 없어, 그저 봄 실은 가지
- 하나 보내는 것이네.〔折花逢驛使 寄與隴頭人 江南無所有 聊贈一枝春〕’ 하였다.” 하였다. 이 내용은 같은 책 권409
- 〈인사부(人事部) 교우(交友)〉와 권970 〈과부(果部) 매(梅)〉에도 실려 있으며, 《고금사문유취》, 《연감유함》
- 등에도 나온다. 매천이 소식을 전하고 싶어도 인편이 없어서 전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말한 것인 듯하다.
- [주-D007] 봄바람에 …… 않네 :
- 기러기는 주로 가을에 남쪽으로 날아왔다가 봄에는 북쪽으로 날아간다. 현재의 시절이 봄이기 때문에 기러기가 남쪽으로
- 날지 않는 것이니, 자성 부사로 있는 박항래의 서신이 오지 아니함을 비유한 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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