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겨울 단상

헤스톤 2024. 1. 13. 08:41

 

 

겨울은 춥다. 춥기 때문에 겨울이다. 낮엔 기온이 올라간다고 해도 아침 기온이 영하가 아니라면 겨울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올 겨울은 눈도 제법 내렸다. 겨울 하면 우선 눈부터 생각나는 것은 다른 계절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눈으로 인해 고생하는 사람도 많지만, 눈꽃의 풍경을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 이는 없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겨울은 확실히 아름다운 계절이다.  

 

하지만, 없는 자에겐 매우 힘든 계절이다. 춥고 배고프던 어린 시절, 동네 어른한테 들은 얘기 중 하나는 "여름에 더워서 죽는 사람은 없어도 겨울에 얼어 죽는 사람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이젠 여름에 전력소모량이 더 많은 세상이 되었지만, 대개 시골에서 더우면 그늘에서 쉰다거나 다리 밑의 바람 부는 곳으로 가서 더위를 피하면 되었다. 하지만 추위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떤 육체적 노동이나 돈이 들어갔다. 아궁이에 불이라도 지피려면 땔감이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부잣집들은 장작더미를 산처럼 쌓아놓고 겨울을 대비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이 생활하는데, 기본이 되는 의, 식, 주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힘들게 겨울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런 탓인지 월동준비라는 말은 있어도 월하준비라는 말은 없다. 여하튼 겨울은 가난한 이들에겐 매우 힘든 계절이다.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한 어른들의 걱정과 달리 어린이들은 겨울을 즐겼다. 지금 생각하니 그땐 몸에 열도 많은 탓이었는지 아무리 영하의 날씨라도 추운 줄도 모르고 밖으로 뛰어다녔다. 무엇보다 개울이나 연못 혹은 논 바닥에 얼음이 얼면 썰매를 타곤 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그것이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썰매를 타고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할아버지기 만들어 주신 썰매를 타고 놀았다. 매우 튼튼하게 잘 만들어서 어느 한해를 잘 갖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연 날리기도 재미있었다. 솔직히 나는 재주가 없는 탓으로 내 연은 그리 잘 날지 못했다. 그냥 실에 매달아서 갖고 뛰어다니기 바빴다. 바람을 이용하여 높이 날리는 동네의 형이나 누나들이 부러웠다. 

 

겨울 놀이로 생각나는 것 중의 하나는 '제기차기'이다. 나는 운동을 잘 못하는 편이었지만, 제기차기만큼은 소질이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대개 5개를 넘기지 못하는 애들에 비해 나는 100개를 넘게도 찼다. 나중엔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발이 올라가지 않을 때까지 찼는데, 당시 최고 기록은 140개 정도 되는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제기를 찰 때는 여러 사람들이 구경을 하곤 했다. 동네 형들과 시합을 해서도 나는 언제나 승자였다. 당시 '제기차기'라는 것이 있어서 겨울이 행복하였다. 

 

 

 

밥상엔 거의 매일 시래깃국이 올라왔다. 어머니는 집 뒷쪽 담에 걸어놓은 시래기를 빼서 국을 끓이곤 했다. 당시는 그게 그렇게 몸에 좋은 것인지 몰랐다. 겨울 내내 거의 매일 먹다 보니 그저 그랬다. 나는 언제나 할아버지와 겸상을 하였다. 식구는 많은데, 모든 사람의 밥과 국그릇을 놓을 만한 상이 없기도 하였지만, 제일 큰 어른인 할아버지와 한 밥상을 마주하는 것이 껄끄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예순일곱의 나이로 돌아가셨으니 지금의 내 나이도 되지 않는다. 할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다. 조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왜 이 겨울에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자주 가시던 양조장도 생각나다. 할아버지는 근처에서 놀고 있는 나를 불러 고두밥을 뭉쳐서 주곤 했다.  

 

여름엔 물놀이 사고가 많았지만, 겨울엔 불과 관련된 사고가 많았다. 산불도 심심찮게 일어났고, 동네의 어느 집이 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시기를 거쳐서 중, 고교 시절엔 연탄가스 사고도 많았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일가족이 사망했다는 기사도 종종 있었다. 누나와 동생, 그리고 나도 연탄가스 경험을 하였는데, 지금은 그 집이 어디쯤 인지도 기억에 없다. 여하튼 겨울은 다른 계절에 비해 지내기가 녹록하지 않았다.

 

대개 삶이 힘든 상황을 말할 때 "춥고 배고프다"는 말을 하곤 한다. 덥다는 말이 힘든 상황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그런 탓인지 구세군 자선냄비도 겨울에만 볼 수 있고, 아파트의 통장이나 반장이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걷는 것도 겨울에만 있다. 겨울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나눔의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몸은 차갑지만, 마음은 따뜻할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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