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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냉전중

아직도 냉전 중 내가 결혼한 지 어느덧 39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나의 결혼 39주년 기념일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나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날로 화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시작은 결혼기념일을 4쌍의 부부들이 모이는 ME( marriage encounter, 성당 관련 부부모임) 일자로 잡은 것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이왕 모이기로 약속한 날이기에 모임 장소인 '삼각지역'으로 갔다. 예전에 한 번이라도 지나친 적은 있었겠지만, 주변 풍경으로 볼 때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당초 목적지로 삼았던 "용리단길"은 MZ 세대들에겐 인기가 있는 곳인지 몰라도, 나 자신이 젊지 못한 탓인지 눈여겨 볼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일단 점심시간이 되어 근처 삼계탕 집에서 닭볶음..

나의 이야기 2024.03.14

悲慾(비욕) - 21

21. 서러운 날 오 이사가 입사한 지 3년이 지나면서부터는 회사의 지금 사정이 더 악화되었다. 납품대금을 3개월 이상 받지 못하고 있는 업체는 커넥트를 납품하는 P사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 2~3 개월의 대금을 연체하게 되었다. 주요 원자재 업체로 도체를 공급하고 있는 (주)보우도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거의 5개월 이상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다 보니 (주)보우도의 김경문 회장은 대금결제를 독촉하려고 하나케이시(주)로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구매부문 직원들은 대부분의 협력업체들의 아우성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상황이 되었다. 일부 부재재 공급업체와 판지 등 소모품을 납품하는 영세업체 몇 곳은 거의 부도 상태였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매일 찾아와 결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구매부문의 업무가 제..

장편소설 2024.03.11

오늘도 늙는다

1년 중 맑은 날은 얼마나 될까? 아침에 떠오르는 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은 얼마나 될까? 정확하게 헤아려보지 않아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많지는 않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동, 호수는 북한산 중턱 높이에 남동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날씨만 맑다면 집에서 매일 해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해 뜨는 광경을 보는 날이 많지는 않다. 우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은 물론이고, 날씨가 흐리거나 안개가 낀 날엔 볼 수 없다. 무엇보다 날씨와 관계없이 기상 시간이 일출 시간보다 늦는 날들이 많기 때문에 年中(연중) 해 뜨는 광경을 실제로 보는 날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연중 해 뜨는 광경을 보는 날이 1/3 이하라는 것은 어쩜 평범한 날이..

나의 이야기 2024.03.02

悲慾(비욕) - 20

20. 헝클어진 머리 오 이사는 회사의 앞날을 그려보며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회의 때마다 주장하는 것 중의 하나는 "get back to the basics"이었다. 현재의 상태로 가면 회사가 얼마 못 가 망하는 것은 뻔하기 때문에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하였다. 그렇지 못하면 남아있는 자들도 결국 모두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자고 임원 회의 때마다 말하곤 하였다. 우선 오 이사는 자신이 맡고 있는 구매부문부터 자세를 바르게 하도록 하였다. 약 80여 개에 이르는 자재공급 업체들에 대하여 오 이사는 원가분석을 하였다. 그러한 원가절감 노력과 부하 직원들의 헌신으로 구매부문은 그해 약 120억원의 원가절감을 할 수 있었다. 이에 따..

장편소설 2024.02.24

리더라는 마음으로

내가 사는 아파트에 상가가 있는데, 그 상가는 4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그 상가를 자주 이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상가의 엘리베이터는 자주 이용한다. 아파트 자체가 지대가 높은 곳에 지어진 탓으로 아파트 각 동의 1층이 대개 상가의 꼭대기 층에 해당하고, 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에서 지상 4층까지 운행한다. 따라서 대중교통 이용 시 그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좀 더 편리하게 전철역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자주 이용하게 된다. 많은 아파트 주민들이 나와 비슷하다. 따라서 출근 시에는 그 엘리베이터의 4층에서 타고 1층에서 내려 지하철로 가고, 퇴근 시는 반대로 1층에서 타고 4층에서 내려 집으로 향한다. 이 경우 그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목격하는 것이지만, 먼저 타고서도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들을 본다...

나의 이야기 2024.02.11

悲慾(비욕) - 19

19. 골프장 바위 오제원 이사는 거의 주말마다 이들과 골프를 치러 다녔다. 휴일마다 골프를 치게 된 이유는 허 회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허 회장의 제일 큰 취미가 골프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잘하는 것을 자신의 취미로 삼는다. 허 회장의 골프 실력은 싱글 수준이었기 때문에 일반 주말 골퍼 수준이 아니었다. 직장인 기준으로 보면 상위 중에서도 상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탓으로 그와 담화를 나누다 보면 골프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평일에는 회사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골프 치러 가지 않지만, 휴일엔 어김없이 함께 어울려 골프를 치러 다녔다. 당연히 허 회장의 비서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골프 예약이었다. 거의 매주 주말은 물론이고, 연휴시에는 제주도나 강원도 등으로 ..

장편소설 2024.01.26

서예 초대작가

2024. 1. 20.(토)은 나의 인생사에서 어쩌면 특별한 날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약 10년전(2013. 12. 14) 시(詩)부문으로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한 날처럼 말이다. '한국서예`미술 진흥협회'로부터 "초대작가인정장(招待作家認定狀)"을 받았다. 동 협회가 주최하는 공모전에 3년간 작품을 출품한 결과 소정 점수(초대작가 12점)를 초과하였다. 첫해(2021년)에 특선과 입선으로 3점, 두번째해(2022년)엔 삼체장으로 5점(특선 포함), 세번째해(2023년)도 삼체장으로 6점(장려상 포함)을 취득하여 14점으로 초대작가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서예가 아니라도 나는 이미 시, 수필, 소설 등으로 작가라고 불리고 있는데, 타이틀 하나를 더 받은 셈이다. 사실 이런 타이틀이 무슨 소용있느냐는 생각도 들..

나의 이야기 2024.01.21

겨울 단상

겨울은 춥다. 춥기 때문에 겨울이다. 낮엔 기온이 올라간다고 해도 아침 기온이 영하가 아니라면 겨울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올 겨울은 눈도 제법 내렸다. 겨울 하면 우선 눈부터 생각나는 것은 다른 계절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눈으로 인해 고생하는 사람도 많지만, 눈꽃의 풍경을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 이는 없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겨울은 확실히 아름다운 계절이다. 하지만, 없는 자에겐 매우 힘든 계절이다. 춥고 배고프던 어린 시절, 동네 어른한테 들은 얘기 중 하나는 "여름에 더워서 죽는 사람은 없어도 겨울에 얼어 죽는 사람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이젠 여름에 전력소모량이 더 많은 세상이 되었지만, 대개 시골에서 더우면 그늘에서 쉰다거나 다리 밑의 바람 부는 곳으로 가서 더위를 ..

나의 이야기 2024.01.13

悲慾(비욕) - 18

18. 계속 부는 바람 박호진 상무는 천태운의 전무 승진 소식을 접하고 허방진 회장실로 갔다. 박 상무는 그동안 허 회장과의 관계를 그려보며, 자신이 실질적으로 이 회사의 2인자라고 여겨왔던 것을 확인해보고자 하였다. 우울해진 기분을 최대한 숨기고, 얼굴에 특유의 미소를 띠며 말했다. "회장님! 천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키셨더군요. 잘하셨습니다. 공석인 자리를 빨리 채운 것은 매우 잘하신 일이라고 봅니다. 저도 천 전무와 더불어 좀 더 큰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저의 친정 업체인 S전자가 저를 바라보는 눈도 있고 하니 저에게도 적절한 명함이 있었으면 합니다." 한마디로 자신도 승진을 시켜달라는 말로 천태운을 전무로 승진시켰으니 자신도 최소 전무는 시켜달라는 말이었다. 더 나아가 비어있는 사장 자리에 탐을 ..

장편소설 2024.01.04

어디로 갔을까?

없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濟男學校(제남학교) 인장이 안 보인다. 그 인장은 언제나 책장 아래에 붙어있는 서랍에 놓아두었었다. 그런데 그곳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없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올 때 매우 중요한 귀중품이라고 종이에 잘 싸서 별도의 서류 가방에 따로 담아 놓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서류 가방들을 모두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찾을 수가 없다. 잘 보관한다고 별도로 취급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아무리 온 집안을 뒤져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누가 종이뭉치 쓰레기라고 버렸는지 모른다. 내가 지금 무슨 착각 속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잘못이다. 나의 큰 잘못이다. 이 도장은 어차피 내가 주인도 아니기 때문..

나의 이야기 2023.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