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悲慾(비욕) - 23

헤스톤 2024. 5. 1. 07:09

 

23. 모욕감 

 

 

심규리가 유흥주점에 발을 디디게 된 원인은 대부분의 도우미들이 그렇듯이 경제적인 이유였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그렇게 부족하지 않은 집에서 자랐지만, 부모의 극심한 불화가 그녀를 평범하게 놔두지 않았다. 그녀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부모는 결국 이혼을 하였고, 그녀는 아버지와 살았다. 하지만 곧바로 아버지가 새 가정을 꾸리면서 갈등을 겪게 되었다. 결국 새엄마가 데리고 온 자식들과의 다툼으로 집을 뛰쳐나오게 되었고, 그 후 평범하지 못한 인생이 시작된 것이었다. 부모 통제에서 벗어난 이후 어린 학생의 신분으로 혼자 산다는 것은 이 사회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친엄마에게 갔다가 실망만 안고 돌아온 이후는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그렇지만 어렵게 입학한 대학교 생활도 계속하고 싶었던 그녀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유흥주점을 스스로 찾아간 것이다. 다행으로 타고난 미모를 비롯한 신체적인 조건은 '텐프로'라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그녀가 경제적인 방법을 해결할 있는 방법으로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었다. 그보다 더 쉬운 방법도 없었다.

 

심규리가 비록 경제적인 문제로 술집에 나오게 되었지만, 그녀는 어린 나이임에도 나름 자기 관리를 하면서 지냈다. 즉, 그곳에 나오는 다른 도우미들과는 좀 다르게 생활하였다. 대부분의 도우미들은 그런 곳에 발을 디디면 단기간에 돈을 많이 벌어서 그런지 씀씀이가 헤퍼지곤 했다. 쉽게 돈을 번 탓으로 도박에 빠지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호스트바에 출입하면서 돈을 탕진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도우미를 관리하는 팀장이나 매니저가 자꾸 그들에게 성형수술을 요구하거나 비싼 옷을 사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옷이나 액세서리로 소위 명품을 두르지 않고 고객들 시중을 드는 도우미들은 자기 술집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면박을 주기도 하고, 아예 출근을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연히 도우미들은 씀씀이가 커지면서 악순환으로 그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버는 것 이상으로 쓰면서 계속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규리는 이들과 좀 달랐다. 타고난 얼굴과 몸매는 비싼 옷이나 화장품을 두르지 않아도 수준이 높아 보였기 때문에 나름 저축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텐프로 생활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규설 회장이라는 거부를 스폰서로 두게 된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이규설 회장이라는 대단한 물주를 잡았기 때문에 옷값은 물론이고, 학비를 걱정할 필요도 없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이규설 회장이 심규리의 후원을 자청하고 나서게 된 것은 심규리가 워낙 야무지게 이 회장의 몸과 마음을 녹여준 것이 큰 이유이었지만, 이름의 가운데 글자가 둘 다 揆(규)가 있다는 것에 호감을 갖게 된 것도 한 이유이다. 사람사이의 인연이라는 것은 사소한 것에 동질을 느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물질적인 풍요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더구나 나이 차가 40살 이상 나는 커플을 정상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떻게 보면 심규리는 첩 같은 것도 아니고, 밤낮으로 몸도 주면서 수발드는 여종과 같은 생활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마음 한구석이 언제나 텅 비곤하였다.

그런 와중에 이 회장 곁을 맴돌며 자주 얼굴을 비친 신대홍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이 회장에 비해 나이도 젊고, 키도 크고, 얼굴도 미남인 신대홍을 마음에 두게 되었다. 신대홍도 심규리를 보는 눈이 끈적거리면서 둘은 결국 비밀리에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이 둘의 관계를 이 회장이 알게 되었다. 당시 이 회장은 사고사 등으로 위장하여 신대홍을 죽이려고 까지 했다. 그는 자기의 여자를 부하 직원이 건드렸다는 사실에 모멸감을 느껴 크게 분노하였다.

"신대홍이~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회장님, 죄송합니다. 이성적으론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도 끌리는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했습니다.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너를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는 중이다. 내 눈앞에서 꺼지거라. 다시는 나타나지 말거라."

 

 

 

 

원테크(주)에서 잘 나가던 신대홍은 결국 이 회장의 여자를 건드린 죄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술집 여자 하나 때문에 그동안 회사에 크게 기여한 신대홍 COO(최고운영관리임원)를 자르면 안 된다는 말도 많았지만, 이 회장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신대홍이 불미스런 일로 회사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하버드 대학교 출신을 비롯한 그의 화려한 이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원테크(주)의 이익에 크게 기여한 실적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그를 스커우트 하려는 기업은 많았다. 그의 탁월한 능력을 이용하려는 많은 기업들이 그에게 접근하곤 했다.  

 

이런 이력의 소유자인 신대홍을 허방진이 스카우트하여 왔다는 것은 하나케이시(주)로써도 엄청 대단한 일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선 하나케이시(주)가 원테크(주)처럼 대규모의 회사는 아니지만, 당시 고속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간판과 능력의 소유자를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에서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하나케이시(주)가 중견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중소기업 규모의 회사에서 그를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허 회장의 인재 스카우트 노력도 있었지만, 신 대홍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아파트나 차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급여도 원테크(주)에서 받던 것의 약 2배 지급, 직함은 "사장"을 주고, 회사의 경영을 맡게 하였다. 자연스럽게 허방진은 회장님으로만 불리게 되었으며, 경영은 신대홍에게 맡기고 회사 업무와는 거리를 두면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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