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습

북경에서의 모습

헤스톤 2015. 6. 4. 18:01

 

1990년대 IBK 기업은행 관리부에서 근무하던 직원 몇 명이 잘 어울려 다녔다. 어울려 다니다 보니 정기적인 모임

을 갖게 되었고 부부동반 모임도 하게 되었다. 모임 이름을 '관우회(管友會)'로 하였다. 관은 관리부(管理部)의 관

이고 우는 친우(親友)의 우이다. 다른 말로는 삼국지의 '관우'라는 인물이 마음에 들어 그렇게 불렀다. 그러다가

이름을 바꿨다. 지금은 '관포포럼'이라고 부른다. 관중과 포숙아의 '관포지교(管鮑之交)'에서 이름을 따 왔다. 관

포지교는 '친구를 위한 두터운 우정'을 뜻한다. 나이는 제일 위와 아래가 약 10살 차이가 난다. 이제는 나이를 먹

어 대부분 은행에서 은퇴하였고, 현직은 지점장으로 있는 2명뿐이다. 그 중의 한 명이 현재 북경지점장이다.

그래서 5월말경 북경에 다녀왔다.

이곳은 나의 개인 블로그이기 때문에 주로 나의 사진만 옮겨 놓으며 흔적을 남긴다.  

만리장성을 올라가기 전에 단체 사진을 한장 찍었다. 나중에 보니 전체가 찍은 사진은 이것 하나뿐이다. '관포

포럼' 전체 멤버는 7명이 전부다. 나이가 제일 어린 현직 지점장은 좌우의 끝에 서 있는데, 왼쪽 끝은 정낙은 지점

장이고, 오른쪽 끝은 북경지점장으로 있는 김희섭 지점장이다. 둘 다 키도 크고 미남이다. 역시 어릴수록 신체적

으로 우성인 것 같다. 왼쪽 2번째는 기업은행에서 대동은행으로 갔다가 일찍 퇴직한 후 사업을 하여 성공한 이규

명 사장이다. 어찌보면 일찍 진로를 잘 선택한 것 같다. 돈도 제일 많은 것 같고 차도 제일 큰 차를 몰고 다닌다.

왼쪽 3번째는 약 2년전 퇴직한 강전택 지점장이고, 4번째(가운데)는 은행에서 수석부행장(전무이사)을 지낸 김규

태 전무로 멤버 중 나이도 제일 많다. 한때 은행장 물망에 오르곤 하더니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는 경기대

교수로 있다. 그 다음(오른쪽에서 3번째)은 지역본부장을 지낸 최병조 본부장이고, 오른쪽 2번째는 나이다. 그러

고 보니 지점장은 일찍 됐지만 약 30년 은행생활 중 약 1/3을 지점장만 하다가 끝낸 내가 출세도 제일 못했고 인

물도 제일 아래이다.

만리장성에서 폼을 잡았다. 만리장성을 가는 길은 엄청 많은데 김 지점장은 왜 하필 이렇게 힘든 곳으로 우리를

데려왔는지 모르겠다. 완전 극기훈련중이다. 

만리장성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다. 하긴 총 길이 2,700Km 이고 지선까지 합치면 6,500Km가 된다고 하니

누구나 아주 극히 일부분만 보고 오는 것이다. 사실 길이에 대하여는 2만Km라고 하는 말도 있고 말이 많다.

 

이화원에 왔다. 위의 사진과 아래 사진은 같은 곳인데, 용과 봉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용은 황제를 뜻하고

봉황은 황후를 뜻하는데, 이곳은 서태후가 있었던 곳이기에 용보다 봉황이 더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이화원은 약 20년전에 와 보고 2번째이다. 앞으로 또 와 볼 수 있으려나. 글쎄올시다. 

 

천안문 광장이다. 무슨 행사를 한다고 못 들어오게 하는 바람에 광장에 서 보지는 못하고 주변에서 찍었다.

20년전에 본 것이나 차이가 없다. 모택동 주석의 사진도 그대로이다. 

 

자금성을 갔는데 그 날 따라 휴일이라고 못 들어갔다. 어차피 잘 됐다. 어차피 20년전에 본 것이나 비슷할 것이고

또 땡볕의 날씨인지라 극기훈련을 안해도 되어서 다행이다.

대신 자금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경산공원(景山公園)에 왔다.

 

시간이 남아서 자전거인력거를 타고 북경의 옛 모습을 보았다. 북경에 와서 별의 별 것을 다 타본다. 만리장성 갈

때는 케이블카 표를 끊는다는 것이 잘 못 끊어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봅슬레이(?) 같은 것으로

눈썰매에서 타는 것과 비슷한 것을 타고 내려왔다. 이화원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자금성 입구에 들어갔다 나오면

서는 미니차를 타고 나오더니 이제는 인력거다.

인력거꾼의 나이가 50은 넘은 것 같다. 오르막에서는 페달을 힘차게 밟아도 잘 안간다. 연신 수건으로 땀을 닦으

며 달린다.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한 가장의 모습이다. 인력거꾼도 직업 중 하나이다.

오래된 북경의 모습들이 지나간다.

예전 어느 고관대작의 집도 들어가 봤다. 그런 집마다 서열을 정해 방을 주면서 왜 그렇게 처첩은 많았는지 모르

겠다. 아마 그것도 권력의 표시이었으리라.

 

 

사실 중국엔 업무관련으로 여러 번 갔다. 북경엔 20년만에 가 보게 된 곳이지만 다니는 회사의 법인이 중국의 이

곳저곳(천진, 상숙, 혜주, 오주 등)에 있어서 참 많이도 갔던 것 같다. 업무로 가는 것은 관광과 골프로 오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이렇게 나의 인생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북경에서 며칠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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