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버킷리스트 추가

헤스톤 2022. 12. 14. 18:00

 

제일 마지막 달에서 거리를 보니 낙엽들이 열한 달을 쓸어버리고 사라진 풍경이다. 나무에 어린잎으로 매달려 초록으로 살다가 대부분 고운 빛깔을 보인 후 뒤처리를 남긴 채 가버린다. 잎 하나 남지 않은 앙상한 가지가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나무와 나뭇잎은 한동안 붙어살다 이렇게 헤어졌다.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정이란 무엇이고 인연의 끝에는 무엇이 남는 것일까?

찬 바람이 얼굴을 스치니 그 냉기가 뼛속으로 스미며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하루라도 안 보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붙어 다녔었는데, 성년이 된 이후 점점 소원해지더니 연락도 끊고 산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친구의 모습이 앙상한 가지 사이로 들락거린다. 겨울로 접어들면 지난 간 모든 것들이 그저 오랜 이야기가 되고 시가 된다.

 

 

인연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것일까? 유통기한이 지나면 영영 다시 이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소용없는 것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 가벼운 인연은 마른풀 태우듯 타오르다 재만 남는다. 그런 인연들은 대개 그것으로 끝이 난다.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 엄청나게 끈끈했던 인연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지금도 계속 만남을 가지거나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심드렁해진 지 오래되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오래된 인연만 계속 붙잡고 사는 사람은 없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새로운 인연을 계속 맺으며 살게 된다. 살면서 무수한 인연을 맺고 산다. 물론 좋은 인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악연이라는 것도 있고, 피하고 싶은 인연도 있다. 알고 지낸 지 오래되었어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 인구수가 약 80억 명, 우리나라 인구수가 약  52백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인생에서 접하면서 살게 될까? 서로 잘 아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어떤 이를 안다고 해도 그가 나를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한 드물겠지만, 내가 모르는 어떤 사람이 나를 아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서로 말이나 글을 주고받는 사이라면 그 자체 만으로도 일단 대단한 인연이라고 본다.

 

(2022년 10월에 J가 보낸 물품 박스)

 

이 대단한 인연 중에서 수년 전부터 특별한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언론 계통에서 일하는 J라는 사람으로 지금까지 얼굴을 본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우선 그로부터 계속 무엇을 받기만 했다는 것이 미안하다는 감정을 앞서게 한다. 좋은 관계란 진심이나 인정을 바탕으로 서로 오고 가는 것이어야 하는데, 나는 J로부터 거의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다 보니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지만, 약  8년 전부터 블로그 친구로 지내면서 교분을 쌓았다. 블로그에 올리는 J의 글에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 심적으로 가깝게 지냈다. 글을 읽으며 모르고 지내던 일반 상식을 알게 된 경우도 많고, 가치나 보람을 느끼게도 하였으며, 깊은 울림과 즐거움을 맛보게도 하였다. 내가 주로 소통하였던 다음(daum)이라는 곳이 일방적으로 블로그를 폐쇄하기 전까지, J는 수년 동안 나의 사이트에 내가 글을 올리기만 하면 제일 먼저 달려와 댓글을 매달았다. 정성스러운 고운 흔적이 나를 기쁘게 하였다. 댓글만 주고받은 것은 아니다. 전화 통화도 몇 번 있었다. 그것도 J가 먼저 손을 내밀어 반가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2022. 10월에 받은 TEA)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나의 졸저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져 주었다. 자신이 속한 언론에 나의 책이 나올 때마다 짧지만, 강하게 한국어, 영어, 일어로 좋은 평과 함께 기사를 실었다. 정성이 듬뿍 담긴 선물도 보냈다. 장시간 비행기 혹은 배를 타고 왔을 그 물건들 속에서 진한 정을 느꼈다. 그런데 솔직히 그런 선물을 받고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도 보답 차원에서 무엇을 보낼까 하다가 왠지 철저하게 주고받는 듯한 상업적 냄새를 풍길 것 같아 그만두었다. 정말 J를 생각하면 고마운 인연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J는 내가 만난 사람중 손가락으로 꼽히는 특별한 인연이다. 살면서 정말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살지만, 그는 감사의 대상으로 고마운 분이다. 그 사람을 알고 지낸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매우 큰 행운이고 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19년 2월에 일본에서 보낸 물품)

 

J는 모 언론의 도쿄 특파원이다. 하지만 J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최근엔 거주도 아일랜드에서 하였고, 최근 또 '몰타'라고 하는 곳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여성의 몸으로 이렇게 오랜 기간 집을 떠나 해외에서 생활한다는것도 대단하다고 본다. 내가 아는 J의 주소는 일본 도쿄로 국적도 일본으로 알고 있다. J의 기사는 대부분 영어, 일어, 한국어의 3개 언어로 쓰이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3개 언어에 매우 능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맺으며 산다. 쉽게 만났다가 쉽게 헤어지는 인연도 수두룩하지만, J는 좀 특이하다. 아마 평생 좋은 관계가 이어질 것 같다. 다만, 세상 떠날 때까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상태로 헤어진다면 너무 서럽고 억울할 것 같다. 그런 탓으로 지금 나는 나의 버킷리스트에 하나를 추가한다. "J와 만나 식사 한번 하기"를 추가한다. 만나면 너무 정겹고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다. 정말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인무원려난성대업"이라는 나의 글씨로 동지까지 연습할 글씨- 사람은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룰수 없다는 말로 원래 공자 말씀이나, 조금 변형시커 안중근 의사가 기개와 혼을 담아 써서 유명해진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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